보슬비가 내려 장인·장모님 산소에 가는 일을 미루었다. 연휴에 해야 할 일은 이제 거의 없다. 어제 부부 모임을 마치고, 남은 이틀은 온전히 내 시간이다. 아직 처리해야 할 일과 만남이 남은 아내와 두 딸은 집을 나섰다. 혼자다. 커피를 한 잔 내리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둔 읽다 만 책 한 권을 펼친다. 틱낫한의 <화(Anger)>다. 수많은 손때가 묻은 이 책은, 그만큼 많은 이들이 관계속의 상처를 안고 찾았던 책일 것이다.
연휴가 끝났다고 해서 관계 속의 불편한 감정이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연휴 동안 묻어두었던 직장 동료와의 갈등이 불쑥 고개를 내밀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교장이라는 자리도 수많은 관계의 총합이기에, 나 역시 그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틱낫한은 "화는 내 몸의 장기와 같아서, 떼어낼 수 없다"는 통찰을 남긴다. 장기를 떼어낼 수 없듯, 화를 억지로 제거하려 들면 관계 자체가 무너진다는 뜻이다. 이는 냉철한 현실 진단이며, 우리가 '화'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한다.
화를 무조건 억누르거나 폭발시키는 대신, 마치 자식처럼 품어 안고 돌볼 때 그 날것의 에너지가 건강한 관계로 나아가는 동력이 된다. 연휴 끝, 우리는 우리 안의 '화'라는 이름의 감정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긍정의 작물과 부정의 잡초, 공존의 밭
틱낫한은 인간의 마음을 긍정과 부정의 씨앗이 공존하는 '밭'이라 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한 밭에 두 종류의 씨앗이 있는데 어찌 씨앗을 골라 물을 줄 수 있을까 저어하기도 한다. 나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은 그래서 긍정과 부정의 씨앗에 모두 물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저어함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냉정한 현실이다. 밭에 물을 주면 풍성한 소출로 이어질 작물(긍정)과 그 영양분을 앗아갈 잡초(부정)가 함께 자랄 토대가 동시에 마련된다. 농부는 잡초를 뽑기 위해 애면글면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잡초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벼가 익어가는 10월, 멀리서 보면 황금들판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벼만 익어가는 것이 아니다. 잡초도 그 나름의 이유로 벼와 키재기를 하고 있다. 잡초 없는 완벽한 논이 아니라고 그 농부를 탓할 수 없듯이, 긍정의 씨앗에만 물을 줄 수 없는 삶의 조건 속에서 부정의 씨앗도 자랄 수밖에 없다. 결국 삶의 밭은 불완전하다. 잡초와 작물이 함께 자라야 생명이 지속된다.
이것이 '화'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가장 논리적인 이유다. 마음 밭에서 피어나는 '화'라는 잡초는 우리가 삶과 관계에 여전히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잡초 없는 밭은 생명이 멈춘 밭이고, '화'가 없는 인간은 관계를 포기한 존재일지 모른다. 연휴 끝에 되살아나는 직장이나 가족과의 갈등에서 오는 짜증과 분노는, 우리가 여전히 그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긍정의 소출을 기대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쉬운 길'의 유혹과 공동체의 배반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달콤한 유혹과 마주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자존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상처 준 이들에게 "한 톨의 에너지도 낭비하지 말라"는 조언이 넘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지쳤을 때, 그 말들이 위안을 주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학급에서 갈등을 빚는 아이를 쉽게 포기하고, 학부모의 이야기를 빠르게 교권 침해로 단정하기도 한다. '내가 상처받지 않는 길'을 현명하다고 여기며, 관계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쉬운 길'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관계를 닫는 태도다. 교사들이 이런 길을 택할 때,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평화를 주지만 결국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물론 상처로부터 거리를 두는 선택이 무책임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건강한 경계가 관계를 오래 가게 만든다. 다만 경계가 '단절'로 굳어지면 공동체는 배움을 멈춘다. 우리가 결코 피해야 할 것은 '돌봄이 없는 거리두기', 곧 책임 없는 안전이다.
학교장 역시 고민한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여기는 쉬운 길과, 어렵고 힘들지만 함께 가야 하는 교육적인 길 사이의 갈림길에서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자신을 지키는 쉬운 길을 선택하고 있지 않은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보면 이 '쉬운 길'은 개인의 생존 전략으로는 합리적일 수 있다. '화'라는 감정적 자본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선택이니까. 그러나 학교는 시장의 논리가 아닌, 공동체의 약속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잡초(화)를 피하려 물을 주지 않는 농부는 결코 좋은 소출을 얻을 수 없다.
교사나 학교장이 '쉬운 길'을 택해 관계를 차단하거나 소통을 멀리하면, 당장은 편안할지 몰라도 그 비용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성장 둔화와 교육 공동체 전체의 신뢰 붕괴로 돌아온다. 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가장 비교육적이며, 반공동체적인 선택이다.
화를 품고 성숙한 공동체를 일구는 길
이제 우리는 '쉬운 길'의 달콤한 유혹을 떨쳐내고, '화'라는 잡초를 품어 성숙한 공동체의 밑거름으로 만드는 농부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무작정 희생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냉철한 논리와 따뜻한 시선이 공존하는 '잡초 관리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학교장으로서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교사들이 '쉬운 길'을 택하도록 내모는 토양의 구조적 문제를 손보는 것이다. 교사들이 학생과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화'를 다독일 심리적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학교 행정을 줄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여유를 주고,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복무 신청의 자율을 보장해 교사의 '쉼'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교사의 마음 밭에 물을 주되, 부정의 씨앗을 비대하게 키우는 불필요한 행정이라는 잡초는 걷어내야 한다.
작게는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보고와 결재 라인을 단순화하고, 회의와 문서 작업을 줄인다. 민원과 갈등은 '사실–감정–요구'를 구분해 정리하고, 48시간 내 대면 조정을 원칙으로 삼는다. 작은 절차의 변화가 교사의 마음 밭에 물을 돌려보낸다.
행정 절차를 단순화했다면, 이제는 관계의 질을 높일 차례다. 경계 세우기와 관계 지키기는 함께 갈 수 있다. 밤늦은 연락에는 24시간 응답 유예 규칙을 두되, 중요한 사안은 정해진 창구에서 반드시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누가 잘못했나?" 대신 "무엇이 필요했나?"를 묻는다. '당장 해결'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합의와 시간표'를 제시한다. 이것이 잡초를 뽑아 내는 일이 아니라, 관리하며 밭의 생태를 건강하게 돌보는 방식이다.
결국 '화'를 다루는 능력은 리더의 중요한 자격이자, 성숙한 공동체의 척도다. 연휴 끝에 되살아난 개인의 내면 갈등이든, 학교 현장의 보이지 않는 교직원 간의 갈등이든, 우리는 그 모든 고통스러운 관계를 품고 나아가야 한다.
화를 없애려 하지 말고, 화를 품고 달래어 그 에너지를 관계를 살리는 동력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학생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삶'을 가르치는 살아있는 교육이며, 우리가 꿈꾸는 따뜻한 학교로 가는 가장 진실한 길이다.
오늘, 우리가 당장 해볼 수 있는 한 가지. 갈등이 떠오를 때 이렇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무엇에 상처를 받았고, 무엇이 필요할까?" 그리고 하루에 단 한 번, 누군가의 '화'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10분의 시간을 공동체에 선물하자. 그 10분이 밭의 물길을 바꾸고 공동체에 새로운 에너지를 흐르게 할 수 있다. 이 작은 시도가 교실의 공기와 인간 관계, 그리고 교육의 미래까지 달라지게 하는 '변화의 씨앗'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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