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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0.13 14:43수정 2025.10.13 14:43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하고 33년이 지나고서야 남편과 함께 제주에 갔다. 아이들이 결혼기념일이라고 미리 항공권을 예매하고 서두른 덕분이다.
자영업 18년차이다 보니 그동안 편하게 시간을 내지 못했다. 결혼기념일이 있는 10월은 평범한 직장인들한테는 황금 연휴가 있는 달이지만 동네 도시락 가게를 하는 우리에겐 매년 불안한 휴일이었다. 자리를 잡지 못했던 자영업 초반엔 휴일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특히 올해는 연초부터 열흘 연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왠지 좀 씁쓸했다. 내가 제주에 있으리란 생각은 조금도 못했다.
고맙게도 두 아이들이 이제 제 밥벌이를 하니 반강제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통보했다. 못 이기는척하며 남편과 단둘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동안은 아이들 스케줄에 우리 몸을 맞추는 삶만 살았는데 왠지 어색한 며칠을 둘이서만 살았다.

▲ 황금연휴라 공항에 여행가는 사람이 많다
임경화
남편도 나도 부대끼는 삶을 사느라 자유롭게 여행하는 법이 몸에 배지 않아 뭐든 어색하고 껄끄러웠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것도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 멍하게 있는 걸 보니 웃음이 나왔다.
갈아입을 몇 가지와 약을 먼저 챙겼다. 제주에 살고 있는 조카 내외가 있어 덕을 좀 보았다. 20년만에 제주에 간다니 숙소와 차를 준비해 주었다. 여행 일정도 현지에 있는 두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그렇게 도착한 제주 숙소에 짐을 풀고 제주 음식부터 먹어보기로 했다. 제주 은갈치 정식이란다. 무 너덧 개 위에 갈치 몇 점을 올려 조림으로 나왔는데, 또 직업병이 발발해서 '이 정도면 원가는 얼마쯤 되겠다' '마늘을 좀 더 넣고 청양고추를 넣었다면 더 맛있었겠다'는 등 쓸데없는 생각들이 올라왔다.
아이들이 뭐든 맛있게 먹으라고 용돈도 따로 챙겨 주었건만 어쩌면 좋단 말인가? 네 사람 점심값으로 10만 원 가까이하는 돈을 계산하려니 아랫배가 아픈(?)느낌이었다. 도시락을 수십 개를 팔아야 남는 돈이다.

▲ 제주식당에서 은갈치 조림을 먹었다.사르르 녹는 맛있는 맛이었지만 좀 비싼듯하다
임경화
제일 먼저 제주의 푸른 바다를 보고 싶어 산방산 근처로 차를 몰았다. 열대 식물 가로수부터 제주 느낌이 물씬 풍겼다. 짙푸른 하늘과 깨끗한 흰구름이 도시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청량했다. 가슴 속까지 시원했다. 제주의 바다색은 또 얼마나 짙고 깊은 푸른 빛인지 하얀 윤슬이 보석처럼 눈부셨다. 지금까지 나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일상의 분주함과 복잡함이 한순간에 포맷되는 느낌이었다.
들고 나는 파도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바람마저 싱그럽다. 순간 내가 이런 시간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렇게 오면 되는데 그동안은 왜 그토록 떠나지 못했는지 남편을 바라보았다.

▲ 제주의 바다 색깔은 정말 예쁘다
임경화
어느새 결혼하고 33년이 지난 지금에야 단둘이 온 여행지에서 남편이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자영업을 시작하고 새벽부터 종일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남편은 잘 놀지 못한다. 그런 남편이 가끔은 야속했다.
여행 첫날을 아침 첫 비행기로 시작하다 보니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졌다. 제주 조카의 조언대로 갈치 조림도 먹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도 가고 산방산도 오르고 사람 많은 사계 해변도 걸었다. 저녁도 나름 심사숙고해서 제주 흑돼지 두루치기를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기까진 꽤 순조로웠다.
문제는 촌스런 나의 잠 투정이었다. 나는 딱딱한 침대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껏 푹신한 이불을 몇 겹 깔고 생활했는데 숙소에는 달랑 이불이 하나뿐인(?) 침대였다. 남편은 열이 많은 편이고 나는 추위를 많이 타다 보니 우리는 각자 덮을 이불이 필요한데 여유 이불이 없었다. 베개도 나는 다리에 하나 더 장착을 해야 잠이 오는데 딱 두 개뿐이다.
어찌어찌해서 침대에 누웠지만 도저히 잠에 들지 못했다. 모든 것이 불편했다. 피곤한 남편은 쌔근거리듯 얕은 코를 골며 잠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니 새벽 두 시쯤 되었을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어떡해 나 도저히 잠을 못 자겠어."
남편이 놀라서 깼다. 그리곤 의외의 제안을 했다.
"그러면 우리 지금 바다에 별 보러 가자."
낮에 들렀던 사계해변이 차로 30분 거리인데 밤에는 별이 많이 보이는 곳이란다. 평소 별을 좋아하는 나 때문에 검색을 했었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도 없는 제주 밤바다에 도착했다. 추석이 지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아 달이 여전히 밝았다. 큼직하게 반짝이는 별들도 보았다. 은하수나 별똥별은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바다와 바다 위의 별이라니 !
남편의 최고 여행 코스였다.

▲ 제주의 한밤 중에 바라본 바다위 별
임경화
지금은 집에 돌아와 낯익은 나의 잠자리에 고단한 나의 몸을 누이고 지난 여행을 돌아보는 중이다. 오늘은 모든 것이 잠들기에 충분한데 왜 잠이 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짧았지만 인상 깊었던 우리 둘만의 여행이 앞으로 두고두고 생각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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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노래를 좋아하는 곧60의 아줌마.
부천에서 행복한만찬이라는 도시락가게를 운영중이다.남은 인생의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잘 살았다고 소문날지를 고민하는 중이며 이왕이면 많은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행복한 미소를 글과 밥상으로 보여주고 싶어 쓰는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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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만의 첫 부부여행... 첫날밤 남편의 제안 자꾸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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