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부아와 씨엥몬 형제 낮에도 불을 켜야 할 만큼 어두운 집 안에서 싸우부아(63·오른쪽)는 하루를 보낸다. 불발탄 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는 늘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뒤편에는 청력을 잃은 형 씨엥몬(65)이 누워 있다. 창문 밖의 빛은 있지만, 이 방 안에는 빛이 없다
ACN아시아콘텐츠뉴스
라오스 볼리캄사이주 락쌰오.
락쌰오는 수도 비엔티안에서 동쪽으로 약 330km, 자동차로 8시간가량 떨어진 곳으로, 베트남 국경인 남파오까지는 차로 약 30분 거리다. 지금은 국경을 잇는 물류 차량이 오가지만, 반세기 전 이 길은 폭탄이 쏟아지던 '죽음의 루트'였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은 북베트남군의 주요 보급로였던 이른바 '호치민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라오스 전역에 2억7천만 발의 폭탄을 쏟아부었다. 그중 8천만 발이 터지지 않은 채 땅속에 묻혔고, 베트남 국경과 맞닿은 락쌰오는 그 폭격의 한가운데 있었다.
취재진은 지난 9월, KOICA와 라오스 정부의 협조 아래 이곳을 직접 찾아 불발탄 피해 주민들을 만났다. 우리가 향한 곳은 락쌰오 시내에서 다시 자동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야 닿는 본딴마을이었다. 이곳은 베트남 국경과 맞닿은 산간 마을로, 지금도 불발탄의 위험이 남아 있다.
형제의 집은 마을 끝자락의 허름한 목조 건물이었다. 불빛은 희미했고, 방 안은 조용했다. 창문이 작고 전기가 약해 낮에도 방 안은 어두웠다. 싸우부아(63)는 그 어둠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1977년, 밭에서 주운 쇠공 하나가 그의 세상을 앗아갔다.
"둥근 쇠공이 보여서 만져봤어요. 그 후엔 아무 기억이 없습니다."
그것은 불발탄의 잔해였다. 사고 직후에는 약간의 시력이 남아 있었지만, 병원은 멀었고 교통수단도 없었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친 그는 끝내 두 눈의 빛을 잃었다. 그의 하루는 집 안 어둠 속에서 멈춰 있다.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다가, 잠시 나가 햇살을 느끼는 게 전부예요."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베트남 국경 인근 본딴 마을 끝자락에 자리한 싸우부아 형제의 집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형 씨엥몬(65)은 5년 전 청력을 잃었다. 동생을 돌보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거의 듣지 못하게 됐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도, 목소리도 알 수 없다.
"말을 해도 안 들리고, 손짓을 해도 안 보여요. 같은 방에 있어도 외로워요."
씨엥몬은 아주 작은 소리는 들을 수 있다. 보청기를 사용하면 동생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지만, 그것조차 이들에게는 사치다. 형제의 수입은 거의 없고, 하루 끼니를 잇는 것도 벅차다.
보청기만 있다면 다시 들을 수 있는 동생의 목소리마저, 가난이라는 벽 앞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동생의 목소리를 마음으로만 듣는다.
"돈이 없어서… 이제는 동생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어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이들의 유일한 연결고리는 씨엥몬의 아홉 살 아들이다. 소년은 두 어른의 세상 사이를 오가며 말과 손짓을 전했다. 형의 말은 아들의 입을 통해 동생에게 전해졌고, 동생의 답은 조카의 귀를 타고 다시 형에게 돌아갔다. 소년의 작은 몸은 두 어른의 눈과 귀가 되어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됐다.
본딴 마을에는 540여 가구, 900여 명이 산다. 마을 이장 캄캥 운운은 "불발탄으로 지금까지 4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불발탄 제거 작업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땅속에는 잔해가 남아 있다. 농부들은 밭을 갈 때마다 발밑이 두렵다. 전쟁은 끝났어도, 이 마을의 시간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싸우부아 형제는 오늘도 같은 방에 있다. 한 사람은 볼 수 없고, 한 사람은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서로의 곁을 떠난 적은 없다. 그들의 시간은, 여전히 전쟁의 어둠 속을 걷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에서 행복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공유하기
불발탄이 앗아간 빛, 사고가 앗아간 소리... 두 형제 이야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