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을 탈 때에도 제2의 살갗이 된 몸자보와 함께한다.
넉넉
순례는 내 운명, 순례는 내 운동
청명이 살아온 발자국따라, 자연스럽게 순례 이야기로 넘어갔다. 세월호 진실을 알리는 순례가 그녀의 첫 순례였다. 인생의 두 번째 순례는 딸에게서 이어받은 거였다.
2016년, 청명의 딸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 현장에서 연대하며 탈핵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 경주 지진 같은 연이은 재난과 오랜 투쟁 현장에 몸담으며 딸이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청명은 "이제 엄마가 나갈 테니, 넌 좀 쉬어라" 하며 탈핵을 알리는 순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순례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가, 혼자서도 순례를 떠나기 시작했다. 눈뜨면 몸자보를 메고 일단 집을 나섰다. 가까운 곳을 걸어 다니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갈 때도 있었다. 거의 10년째 순례를 이어오면서 순례는 청명이 운동하는 방식이자, 일상 그 자체로 자리 잡았다. 주 4일 근무라면, 주 3일은 순례하는 식이었다.
"지난달에는 속초의 어느 홈리스 공간에 밥 봉사를 갔어요. 거기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제 몸에 붙은 몸자보를 보고 '어디쯤 걷고 있어요?', '뭐 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걸 물어보시거든요. 제가 먼저 '탈핵하세요!' 하지 않아도, 먼저 질문이 오는 게 좋더라고요."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강요하지 않아도, 예상치 못한 타인들과의 대화가 트이는 경험이 좋았다. 심지어 탈핵을 주제로 질문을 걸어오니, 청명은 "운동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나타나는 것이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보통 이런 사회운동을 하면, 그 사람들끼리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순례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스쳐 갈 수 있거든요. 어떤 현장에 가 보면, 그 주변에도 다른 이슈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속초에 갔을 때도 설악산 케이블카 문제, 홍천 양수발전소 문제, 삼척 석탄 화력 발전 문제 등등을 알게 되고, 거기에 연대를 갈 수 있죠. 조금씩이라도 그 문제에 참여할 수 있어요."
순례의 좋은 점을 줄줄 읊는 청명의 눈이 커지고, 미소도 점점 더 활짝 피었다. 사회 운동을 하다 보면 자꾸만 '반대', '철회', '규탄' 같은 부정어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지치는 어려움이 있다. 분명,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시작한 일인데 계속 싸움만 하는 것 같아 지치게 되는 순간들이. 그런데 이렇게 설레는 얼굴로, 새로운 세상을 활짝 여는 반가운 얼굴로 운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청명은 그저 여러 세계 사이, 마을 사이, 사람 사이, 인간과 동물 사이, 여러 상황과 사회문제들 사이를 미소 띤 얼굴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 또 다른 길로 향해 가는 담백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저절로 열리게 한다. 순례는 참 청명다운 방법이다.
2023년 여름에는 친구 부부와 함께 몽블랑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한국에서처럼 신문과 몸자보, 피켓을 준비해 갔다. 영어를 잘할 줄 아는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과 반드시 연결될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다. 바티칸, 몽블랑 일대 같은 상징적인 여행지에서 춤을 추고, 피켓을 들어 탈핵 메시지를 알렸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이 몸자보를 보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한국보다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많았다. 몸자보를 멘 청명을 사진 찍어가고, SNS에 공유하며 응원을 보냈다. 이 경험으로 강의 요청이 오기도 하고, 소모임이 만들어지거나 다른 단체와 연결되기도 했다.
"운동가로서 대단한 액션을 기획한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하던 것처럼 그대로 여행했을 뿐인데 큰 반향이 있었어요. 그렇게 관심받고, 탈핵 메시지도 알리니까 너무너무 신났어요."
더 많은 균열이 필요해
순례길에서도 나름의 어려움은 있지 않을까 물었다. 청명은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많은 생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로는 항상 깨끗하지만 우리가 걷는 가장자리는 온갖 쓰레기들이 바람에 쓸려와 있어요. 그중 하나가 조류예요. 특히 작은 새들이 엄청나게 죽어 있어요. 새를 묻어준 일이 많아요. 그럴 때, 미처 보지 못한 비인간들의 사회를 생각하게 돼요. 같이 운동하고 순례하는 사람 중에서도 산이 깎이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작은 새의 죽음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앞으로 운동은 인간들이 좋은 세상을 넘어서, 더욱 모든 생명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청명이 생각하는 모든 생명에게 좋은 세상이 어떤 것일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청명은 모두가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탈권력' 세상이라고 답했다.
"세상에는 원래 존재 자체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차이가 '권력적 차이'로 변질되고, 줄 세우는 거예요. 인간과 비인간, 나이나 경력도 그저 차이일 뿐인데, 사회가 거기에 권력을 부여하는 거죠. 나이를 포함해 모든 속성은 변하는데, 마치 변하지 않는 것처럼 힘을 행사해요. 운동이 이런 권력화된 사회를 해체하고, 탈권력 시스템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 짓는 울타리를 과감히 깨 나가는 연대를 하고 싶어요."

▲ 마이크를 잡고 길 위의 동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낸다.
청명 제공
비워서 더욱 충만하다
청명의 커다란 꿈과 작은 실천은 이뿐만이 아니다. 청명은 원래 자신을 '탈핵 비움 실천가'라고 소개하곤 한다. 그러니 '비움'에 대해서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덜 소유하고 덜 소비하려면 적어도 안정된 주거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밭이라도 있어야 먹거리 자급자족이 가능할 테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맞닥뜨릴 때 그것이 더 큰 소비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순례가 일상인 청명이 구상하는 '비움' 생활은 어떤 것일지 더 궁금해졌다.
"밭에서 먹거리를 키우는 것만이 자급자족은 아니에요. 이를테면 요즘은 먹을 것이 넘쳐나잖아요. 어디 가서 얻어와도 충분히 얻을 수 있어요. 저는 좀 자유롭게 생각해요. '반드시 깨끗한 옷을 입어야겠어'라든지 '내 땅에서 길러내는 걸 먹어야겠어'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거죠.
소유나 정착에 집착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내는 것이 충분히 자급자족이 될 수 있어요. 땅이나 물건을 소유하지 않아도, 마인드를 전환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이든 지금의 상황을 좀 더 스스로 윤택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차이는 엄청나죠."
청명은 줄곧 '비움'을 전파하며, 본인의 살림 역시 간소하게 줄여왔다. 냉장고도 여름 3개월간만 사용하고 있다. 언어치료사 일도 주 6일 근무에서 5일, 4일, 3일 점차 줄여 지금은 주 1일만 근무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보험도 오래 전에 해지했고, 소득도 소비도 줄여나갔다. 줄인 만큼을 청명 본인의 힘으로 채워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비운 만큼,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있는 셈이다.
"비움이라는 게 다 버리는 게 아니에요. 나를 축소하는 것도 아니고요. 내가 주도하는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걸 채우는 방식이죠. 지금 조금 있는 짐이 옛날에 가지고 있던 것들보다 훨씬 윤택해요. 가장 질 좋고, 나를 빛나게 하는 것들로 나를 채우는 거예요."
지금 청명의 짐은 36리터 배낭이 전부다. 들으면서도 쉽게 상상이 안 갔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청명의 집에 들렀을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한 평짜리 청명의 방은 마치 손님이 머문 방처럼, 아무런 가구 없이 가지런히 개어진 이불과 잘 싸놓은 배낭이 전부였다. 청명은 항상 이런 생활을 유지한다고 했다.

▲ 탈핵 '비움' 실천가 청명의 간소한 방. 주인이지만 손님처럼 매일 36리터 배낭에 모든 짐을 싼다.
자유
다가오는 10월, 비움·탈핵·연대의 삶으로
"남편과 딸도 제가 도울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알아서 살라고 했어요. 저에게 보탬이 될 필요도 없고요. 서로 곁에 꼭 머물러야 한다거나,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도 자유로워지기로 했어요. 빚도 다 갚았고, 아이도 자라서 성인이 됐어요. 이제 이 집도 남편에게 헌정하고 싶어요. 그리고 더 많은 걸 내려놓으려고 해요."
그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탈핵, 비움, 연대. 위험한 에너지에 기대는 성장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적정한 소비와 생산의 균형을 찾으며,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연대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처한 상황이나 가진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삶을 주도하겠다는 다짐은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9월 이후로는 이 세 가지에 집중하려고 해요. 진짜 너무 희망차요"라고 말하는 청명의 눈은 설렘과 환희로 가득 차 보였다. 그의 비움이나 탈핵 운동, 순례가 힘겨워 보이기보다 자연스럽고 반짝여 보이는 것은 아마 청명의 그런 눈과 밝은 웃음 때문일 거다.
"지리산이라서 더 의도하지 않아도 풍족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꼭 지리산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예요. '지금 여기'의 삶이 주는 충만함을 느끼려고 하는 거죠. 아주 오래 전부터 연습해 온 삶이에요. 자급자족하는 삶이요. 제 기준으로 그 연습을 마치는 게 이번 9월 말이에요."
그래서 청명은 다시 길을 떠난다. 또 한 번 새로운 마음으로. 더욱더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어두겠다고 선언했다. 보는 우리야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지금의 청명이 만들어지기까지 스스로 단련하는 과정이 있었으니, 앞으로는 한층 더 깊고 넓어진 내면으로 순례를 떠나게 되지 않을까. 비운 만큼 더 가볍고 맑아질 청명의 얼굴이 그려졌다.
딸은 엄마가 주목받는 행색을 한 것도,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럽고 싫어할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엄마의 삶을 적극 존중하고, 지지하는 관계가 됐다. 엄마의 '냉장고 없는 삶'을 블로그에 실어주겠다거나, 엄마 활동에 필요한 웹자보 제작을 도와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끝으로 청명은 탈핵을 이야기하지만, 탈핵만이 답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세상에 더 큰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앞으로 그 상상력을 더 키우고 발휘하는 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즐겁게 사는 길에는 수만 가지 경우의 수가 있고, 그걸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라고 했다. 청명이 말한 상상력은 평화를 바라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힘 아닐까? 우리도 청명처럼 자신을 믿고, 기쁘게 살아갈 용기를 가진다면, 그 기쁜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

▲ '지금 여기'의 삶이 주는 충만함을 누리는 청명. 지리산에 오른 모습.
넉넉
진행 자유, 글 푸른
글쓴이 :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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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아이에 '알아서 살라'... 36L 배낭 메고 그녀가 향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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