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집사가 언제든 화분을 확인하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곳이다
유신준
최적의 관리 장소를 찾다
양생이 끝난 후 한달 동안 키울 장소를 찾았다. 집주인 할배네 처마 밑이 가장 좋아 보였다. 일단 자리가 명당이다. 집이 동향이라 아침 해를 듬뿍 받는 자리다. 오후에는 해가 거의 비치치 않으니 금상첨화다. 아침 햇볕이 식물에게 좋다는 건 이곳에서 상식이다. 일본의 오후 볕은 너무 강해서 식물을 상하게 한다고 들었다. 게다가 이곳은 2층 내 방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내려다 보이는 최적의 관리 장소다. 꽃 집사가 언제든 화분을 확인하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곳이다.
마트에 들렀다 왔더니 할배는 사정을 모르시고 꽃 바구니 고맙다고 하셨다. 평소에 신세를 지고 있는 이웃 병원 선생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거다. 할배는 나이가 드신 데다 몸도 약하시다. 이런저런 돌발 증상으로 구급차를 부른 적도 많다. 항상 의사 선생의 손길이 아쉬운 상황이니 그럴 수 있다. 이건 다른 곳에 쓰려고 만든 화분이니 나중에 다시 하나 만들어서 드리겠다고 했다.
내가 만든 헹잉바스켓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지. 꽃 싫어하는 사람 없다. 꽃은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고 그로 인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실기 연습을 한번 더 해볼 겸 잘됐다. 하나 더 만들면 그만큼 경험이 늘어나는 거지. 연습만이 숙달의 지름길이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헹잉 화분으로 쫒아갔다. 중요한 일과가 새로 생긴 것이다. 가만히 화분을 살펴보고 있는데 상태가 이상하다. 위쪽을 가지런히 덮어놓은 수태가 흐트러져 있고 일일초는 뿌리도 허옇게 드러나 있다. 단정하게 심어 놓았던 꽃들도 제멋대로다. 어라, 저녁에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바닥에 흩어져 있는 배양토 알갱이들을 보고 비로소 사태를 짐작했다. 할배가 호스로 사정 없이 물을 뿌린 것이다. 그는 호스 끝을 오므려 강한 물줄기로 물을 뿌리는 습관이 있었다. 화분에 물은 줘야겠고 매일 하는 일이라 귀찮긴 하고... 멀리서 대충 뿌리고 끝내신다. 전에도 그렇게 호스로 물을 뿌리는 일 때문에 몇 번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세찬 물줄기로 화분에 물을 주면 식물이 견디지 못한다고. 결국 말라 죽게 된다고.
궁여지책으로 물조리개 꼭지를 사다가 호스 끝에 부착해 봤지만 나중에 보니 그것조차 빼 버리셨다. 그렇게 물 주려면 답답하다는 거다. 평생 나무만 다루며 살아 온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이해했다. 그 뒤로 호스로 물 주는 문제는 포기했다. 그리고 할배의 화분에서 관심을 끊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이게 어디 보통 화분인가. 올해 내 실기시험 당락을 좌우할 목줄을 쥐고있는 운명의 여신이다. 이 화분이 잘못되면 나는 올해 시험을 완전히 망치게 된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복병을 만났다. 필기시험 준비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업친 데 덮쳤다. 밤새 헹잉바스켓 옆에서 불침번이라도 서야 하는 건가?
할배는 나이가 들어 귀도 어둡다. 큰소리로 말했다. 이쪽 내 화분은 물을 주지 마시라고. '이건 내가 한 달 후에 오사카 시험장에 가져가야 할 굉장히 중요한 화분이다. 잘못되면 큰일 난다'...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사 할배와의 인연
할배 성품에 대해서는 전에 연재한 '유신준의 일본정원사 입문기'(
https://omn.kr/247gv)에도 많이 썼다. 함께 일하다 보니 이것저것 눈에 띄는 게 많아서다. 그는 너그럽고 인자하다. 온유하고 조용한 성품인 데다 나에게 헌신적이기까지 하다. '나에게' 라는 조건을 붙인 건 그가 사람들과 교류가 많지 않아서다.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요양보호사를 빼면 친구 다시로씨 정도일까.
그와 함께 일하는 3년간, 그가 화 내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일로 엮인 인간관계에서 드문 일이다. 화는 커녕 목소리 한번 높힌 적 없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와 처음 정원 일을 나갔을 때를 기억한다. 철쭉 가리코미(나무를 가지런히 다듬는 것)를 잠깐 테스트 받았었다.
"네 가리코미 솜씨는 일본 제일이다"라는 말을 남긴 후 그는 내가 일하는 것에 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그 후 나는 그의 무한 신뢰와 절대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이런 인연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60년 넘게 살아보니 사는 일은 인간관계가 첫째더라. 사람은 모름지기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그 덕분에 환갑을 훌쩍 넘긴 내가 이국 땅에서 즐겁게 일하며 잘 살고 있다.
우리가 손질하는 계약정원들은 대개 먼 곳이다. 작업 트럭을 끌고 오래 운전해야 할 때가 많다. 할배가 운전을 하고 내가 조수석에 탄다. 교차로 같은 곳에서는 내가 왼쪽 안전 확인을 해준다. 트럭은 방향을 꺾을 때 주변 상황 확인이 복잡해서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역할 분담이 돼 버렸다. 내가 국제 면허를 가져갔지만 일본은 차량 진행 방향이 반대라서 위험하다며 할배는 핸들을 안 맡긴다.

▲ 들릴락 말락 희미한 곡조속에 스며있는 절절한 외로움을 나는 안다
유신준
그는 키오스크를 싫어한다. 일하는 중에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에 자주 가는데 기계가 보이면 바로 뒤돌아 나온다. 왜 이렇게 돈 들여 비싼 기계를 구입 해놓고 손님을 괴롭히는 건지 알 수 없다며 화를 낸다. 사람끼리 현금 내고 사 먹던 옛날을 그리워한다. 그는 요즘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는 쉬는 날 밖에 잘 나오지 않는다. 집안에서 미야코 하루미를 즐겨 듣는다. 그는 밖에 나오면 버릇처럼 항상 휘파람을 분다.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한번씩 알리기라도 하듯. 들릴락말락 희미한 곡조 속에 스며있는 절절한 외로움을 나는 안다.
홀로 살아온 지 수십 년. 그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다. 그의 주름 가득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짠하다. 언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일하는 방식조차 다른 사람이다. 수 많은 다른 점에도 나는 그의 삶을 존중하며 선배 정원사로서 그를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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