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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좀 공유하자!"... 병간호 친구에게 가져간 밤수프

밤에 대한 추억

등록 2025.10.13 17:58수정 2025.10.1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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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밤의 계절이다. 햇밤이 밤나무에 주렁주렁 열리고, 산 곳곳에 밤송이가 무심코 떨어져 있다. 등산객들이 밤톨을 횡재하듯 하나씩 주워 담다 보면 어느새 주머니 가득이다.

추석 전주에 불암산으로 등산을 갔다. 길을 잘못 들어 등산로가 아닌 샛길로 올라가다 보니 곳곳에 밤톨이 있었다. 10톨 정도 모았을 때 정상적인 등산코스로 합류했고, 그때부터는 마음 편하게 등산을 했다. 그 10톨의 밤은 영양 만점 밤밥이 되었다.


추석 연휴에 캠핑을 갔던 지인이 밤을 한아름 건네주었다. 필자의 친정 엄마도 산밤을 좋아했다. 이맘때가 되면 산에서 주워온 작은 밤을 하나하나 깎아서 냉동해 두었다가 밤밥을 해 주곤 했다. 이 밤을 보면 좋아했을, 작고한 엄마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추석 마지막날 산소에 가서 지인이 준 밤을 소박한 제사상에 올리며 마음이 찡했다.

그리고 오늘 그 밤으로 수프를 만들어, 10여 년 동안 뇌암으로 투병 중인 엄마를 간호하는 친구에게 다녀왔다. 수프는 버터에 얇게 썬 양파를 캐러멜라이징 하듯 달달 볶아서 밤과 호두, 우유를 넣고 갈면 완성이다. 수프를 가져온 친구의 딸에게 눈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친구의 엄마 손을 잡았다. 그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내 마음도 따뜻하게 해 주었다. 돌아오는 길 그 온기는 뜨거운 눈물이 되어 내 뺨 위로 흘러내렸다. 친구가 필자에게 수고비를 보냈다. 다시 송금하며 말했다.

"엄마 좀 공유하자!"

친구는 이런 거 가지고 집에 오면 절교 하겠다고 귀엽게 투정을 부린다. 미안한 마음에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가 그리운 친구의 오지랖을 너그럽게 받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따뜻한 온기가 닮긴 밤
따뜻한 온기가 닮긴 밤 박이연

지척에 널려있는 게 밤이지만, 지인 부부가 캠핑장에서 주워온 이 밤은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사실 필자는 밤을 좋아하지 않았다. 까는 수고로움에 비해 내용물이 적기 때문이다. 친정 엄마가 살아 있을 때도, 손수 밤 껍데기를 까서 담아주면 그것을 아이처럼 숟가락을 퍼먹었다. 감사한 마음보다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제는 안다. 그 밤 안에 담겨 있는 친정 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그 옛날 친정 엄마가 그러했듯이, 필자는 오늘도 묵묵히 밤 껍데기를 까고 있다. 내 자식을 위해. 그렇게 나도 진정한 엄마가 되어가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 스토리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h20514)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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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언어재활사입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와 학교폭력, 장애인 인식 개선 관련 글을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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