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버리고, 가뭄 나면 퍼 오자고요?"

담수화·지하댐보다 싸고 똑똑한 해법 ? 물그릇을 만들자

등록 2025.10.13 17:24수정 2025.10.1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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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 가뭄으로 재난사태까지 선포됐던 강원 강릉지역 생활용수 87%를 공급하는 상수원 오봉저수지의 9월 23일 오전 상류까지 물이 차오른 모습이다.
최악 가뭄으로 재난사태까지 선포됐던 강원 강릉지역 생활용수 87%를 공급하는 상수원 오봉저수지의 9월 23일 오전 상류까지 물이 차오른 모습이다. 연합뉴스

며칠 전까지 바닥을 드러냈던 강릉 오봉저수지의 수위가 단숨에 회복됐다. 불과 20일 만에 저수율이 11%에서 90%로 치솟았다고 한다. 가뭄으로 재난사태가 선포됐던 도시가, 이제는 폭우로 넘치는 도시가 된 것이다. 비가 오면 버리고, 가뭄 나면 다른 데서 퍼 오는 이 이상한 나라의 물 관리, 이제는 바꿔야 한다.

물은 넘치는데 담을 그릇이 없다

하늘은 매년 같은 양의 비를 준다. 그런데 우리는 그 비를 담을 곳이 없어 홍수라 부르고, 없다고 퍼 오며 가뭄이라 부른다. 비가 너무 와도 문제, 너무 안 와도 문제인 이유는 결국 물을 머금고 저장할 그릇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비를 더 바라기보다, 비가 머물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해수담수화, 지하댐… 돈은 쓰는데 논리는 없다

지난 가뭄 때 정부는 물 부족에 쫓겨 해수담수화와 지하댐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 방식들의 공통된 문제는 "돈과 에너지가 새는 구조"라는 점이다. 해수담수화는 1톤의 물을 만드는 데 약 3kWh 이상의 전기가 든다. 강릉처럼 비가 많은 지역에서 이를 돌리겠다는 건 비 오는 날 제습기를 켜는 일과 같다. 지하댐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하수를 막아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유지·관리비용이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이런 대책은 '지금 당장의 가뭄'을 막는 단기 처방에 불과하며, 단 1년 만 내다봐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비싸게 만든 물 관리 시설이 정작 홍수에는 전혀 쓸모가 없고, 산불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왕이면 가뭄에도, 홍수에도, 산불에도 쓸 수 있는 다목적 물관리가 낫지 않은가?

큰 그릇 만들 자리는 없지만, 작은 그릇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댐이나 지하댐 같은 '큰 그릇'을 만들 땅은 이제 거의 없다. 하지만 작은 물그릇은 어디서든 만들 수 있다. 지붕 위, 도로 옆, 학교 운동장 밑, 산자락 어디든 가능하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세 가지다.


1️⃣ 비용이 적게 든다: 대형댐 하나 대신, 수천 개의 작은 빗물그릇을 만들 수 있다.
2️⃣ 운반비가 거의 없다: 물을 멀리서 끌어올 필요가 없다. 비가 오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저장된다.
3️⃣ 골든타임을 줄인다: 산불이 났을 때, 수십 킬로 떨어진 저수지보다 바로 옆 산비탈의 물모이가 훨씬 빠르다. 재난 대응의 '골든타임'을 단축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게다가 이런 작은 물그릇이 곳곳에 늘어나면 보이지 않게 도시의 지하수위가 서서히 올라간다.
지하수가 차오르면 강은 마르지 않고, 도시는 식는다. 결국 '물그릇 하나'가 가뭄·홍수·산불을 함께 줄이는 기후적응 인프라가 된다.

진짜 해법은 '물그릇 하나 더 만들기'

해수담수화 플랜트 하나에 수천억 원, 그 돈이면 학교와 마을마다 빗물통을 수십만 개 만들 수 있다. 비가 오면 모으고, 하늘이 마르면 꺼내 쓰는, 전기도, 펌프도 거의 필요 없는 물그릇. 작은 물그릇이 많을수록 홍수 때는 완충하고, 가뭄 때는 버팀목이 된다. 기술이 아니라 상식의 문제, 돈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결론 – "물이 아니라, 물그릇이 문제다"

가뭄과 홍수는 서로 다른 재난이 아니다. 물을 담을 그릇이 없기 때문에 생긴 쌍둥이 재난이다.
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비가 머물 자리가 없기 때문에 생긴다. 이제는 비를 더 바라기보다, 비가 머물 곳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기후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물순환의 복원, 생태의 회복, 그리고 인간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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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가뭄이 지나면 사람들은 “이제 괜찮다”고 안도하지만, 비가 온다고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다. 비가 오면 넘치고, 비가 멈추면 바닥나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다음 재난은 또 같은 자리에서 반복된다. 홍수를 막는 것도, 가뭄을 막는 것도 결국은 물이 머물 수 있는 그릇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큰 댐은 만들 땅이 없지만, 작은 물그릇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집 앞 화단, 골목길 빗물받이, 학교 운동장, 산비탈 어디든 가능하다. 그 작은 물그릇 하나가 모이면, 도시의 지하수위가 올라가고, 산불의 불씨가 잡히며, 마른 강이 다시 흐른다.

기후위기는 거대한 기술이 아니라 작은 상식과 시민의 실천으로 이길 수 있다.
비가 올 때마다 흘려보내지 말고, 하늘의 물을 조금씩 머물게 하는 마음 —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가장 현명한 유산이다.
#강릉물부족 #강릉홍수 #물그릇만들기 #물모이 #빗물저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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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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