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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대신 음악으로 일기 쓰기", 일상 속 치유 위한 제안

[인터뷰] 음악치료사 홍정빈씨 "음악은 배경 아닌 치료 그 자체가 된다"

등록 2025.10.14 14:12수정 2025.10.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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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선생님 생일이었으면 좋겠어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음악치료 세션이었다. 초등학생 남자아이인 A는 음성과 행동에 틱을 보여서 내원한 아이였다. 치료를 시작해 보니 이 아이에겐 무엇보다 정서적인 소통이 필요해 보였다.


홍정빈 치료사와 A는 치료의 일환으로 함께 노래를 만들었고, 악기를 연주하며 마음을 주고받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A가 악기를 휘두르는 등 위협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눈빛과 몸짓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음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말했다.

"오늘이 선생님 생일이었으면 좋겠어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생일은 가장 기쁜 날이니까요. 오늘이 선생님이 가장 기쁜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A는 말을 마친 뒤, 악기를 쌓아 케이크 모양으로 만들고 치료사에게 생일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래를 마치고 A가 먼저 홍정빈 치료사의 눈을 바라봤다. 전에는 눈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아이였다.

"선생님, 아까 제가 했던 행동은 미안해요. 저는 선생님을 사랑해요."

음악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던 아이는 이제 말로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말 너머의 마음을 전하는 도구, 음악

음악엔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과 무의식이 담긴다. 음악치료는 이런 음악의 힘을 '치료의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내담자가 언어나 이성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기억·감각을 음악으로 드러내도록 돕는다.


지난 9월 14일 만난 홍정빈 치료사는 "음악은 배경이 아닌 치료 그 자체가 된다"고 말한다. 그는 검단 EM365에서 음악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음악은 사람의 다양한 내면을 다룰 수 있어요. 말로 속마음을 터놓기 어려운 내담자들에게 특히 적합하죠. 음악이라는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감정을 더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고, 그 안에서 내면의 감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홍정빈 치료사
홍정빈 치료사 홍정빈

- 어떤 계기로 음악치료를 전공하게 되셨나요?

"저는 학부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했어요. 다양한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경험을 하면서 사람의 내면을 흔드는 음악의 힘을 예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죠. 음악 치료를 하기 전에도 레슨을 하며 치료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했어요.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레슨생으로 만난 적이 있는데, 연주를 하고 노래를 만들면서 그 친구들의 생각이 정리되고 해소되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때 '음악에는 사람의 내면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 내담자 연령에 따라 치료의 특성이나 방법도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아동은 확실히 반응이 바로 와요. 감정이 음악에 즉각적으로 드러나죠. 반면 성인은 시간이 더 걸려요. 치료사와 라포형성(*치료자와 내담자가 서로 신뢰하고 마음을 여는 과정)에도 더 오랜 시간이 듭니다. 반면, 청년은 다른 연령들에 비해 더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요. 그리고 평소에 음악을 자주 들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음악적인 반응이나 창의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확실히 그런 부분에서 두각을 드러냅니다."

엄마가 아닌, 나로서 다시 노래하는 경력단절 여성들

A가 음악으로 자신을 찾아가듯, 마음을 표현할 목소리를 잃어버린, 음악이 필요한 어른들이 있다. 홍정빈 치료사는 그런 어른 중에서도 오랜 시간 자신을 잊고 살아온 경력단절 여성들과 함께 치료세션을 진행한 경험을 이야기 했다.

"제 주변에 경력단절 여성들이 좀 있었어요. 많은 사람이 이 문제로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도움이 필요한 문제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경력단절 여성은 사회 속에서 엄마, 아내의 역할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많은 거죠. 이 마음의 어려움을 돕고 싶은 마음에 치료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경력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음악 치료 교실'이 열렸다. 참여한 10명의 내담자는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치료 세션에 참여하게 되었다.

 치료가 진행된 장소
치료가 진행된 장소 홍정빈

- 치료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나요?

"이 치료는 '노래 중심'으로 진행됐어요. 그중에서도 송 커뮤니케이션으로 총 8회로 진행했고, 집단 프로그램 형식이었죠. 아이들을 학교나 유치원에 보내놓고 바로 모였어요."

- 노래 중심, 송 커뮤니케이션(song communication)이 뭔가요?

"노래를 깊게 다루는 것을 송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해요. 음악을 같이 듣고 음악 속 가사를 인용해 내담자들에게 질문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내담자들은 음악을 도구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요, 그림이나 글 같은 방법으로 본인의 마음을 표현한 뒤 다시 이걸 바탕으로 '개사활동'같은 창작 활동으로 이어져요.

이 방식을 경력단절 여성 치료세션에서는 '노래 자서전'과 '노래 만들기' 작업으로 풀어봤어요. 각자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노래를 골라 와서 듣고 불러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발견한 내면의 이야기로 가사를 바꿔보는 거죠."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3남매를 키우시는 분이 계셨어요. 이 분이 노래 자서전에 가지고 온 노래는 (이분의) 아버지가 굉장히 많이 들으셨던 노래라고 하셨어요. 이 노래를 들으면 본인은 따뜻한 기억보다는 화가 난다고 하셨어요. 이런 감정과 가사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알고 보니,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있었던 거죠. 유년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양육방식을 노래에 투영하고 계셨던 거예요. 이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많이 흘리셨어요. 그런데 이 발견이 치유의 시작이 되는 것 같아요. 어릴 적 상처를 드러내면서 오히려 회복됐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경력단절이 되기 전 회사를 다니면서 많이 들었던 노래나 좋은 추억이 있는 노래를 골라 오셨어요. 좋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고, 지금과 비교해 봤어요. 체념의 정서가 많았죠. 그런데 어떤 분은 옥상달빛의 '그대로도 아름다운 너에게'를 골라오셨어요. 이 노래가 모두에게 큰 회복이 되었던 것 같아요. 가사의 내용이 '넌 오래전부터 이미 완전한 모습이다'하는 내용인데, 많이들 감명 깊어 하시더라고요."

 노래중심 치료를 진행중인 홍정빈 치료사
노래중심 치료를 진행중인 홍정빈 치료사 홍정빈

일상의 음악이 우리를 치료할 수 있을까?

홍정빈 치료사의 경험을 통해 음악이 '치료'로서 삶을 발견하고 치료했던 사례들을 들었다. 음악은 삶의 배경음악에 그치지 않는다. 적극적인 치료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쓸 수 있는 '치료 음악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 우리가 일상에서 음악을 치료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우선 음악을 '자기 돌봄의 도구'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나만의 감정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걸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일기를 글 대신 음악으로 쓴다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하루를 마무리하며 감정에 맞는 음악을 듣고, 자신의 감정을 음악에 투영해서 정리해보는겁니다. 장소는 무조건 편안한 공간이어야 돼요.

또 표현하지 못한 말, 감정들을 뱉지 못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마음을 짧은 가사나 멜로디로 표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줄이라도 좋으니까 짧게라도 뱉어보는 게 중요합니다."

10월 10일은 정신건강의 날이다. 우리가 매일 듣는 음악 한 곡, 흥얼거리는 노래 한 줄이 스스로를 돌보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음악을 통해 마음을 돌아보는 작은 실천을 해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음악치료 #인터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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