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교육 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 지음
프시케의숲
올해, 그때의 둘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와 집은 가깝고, 동네와도 친숙해 혼자 등하교를 한다. 하지만 매일 방과후, 돌봄 선생님은 전화를 하신다. "집에 잘 들어갔나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초등 1학년이 혼자 등하교를 못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그 사실이 달갑지 않음에도 "1학년이면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내 탓이 될 것 같은 두려움.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부모의 불안에 사회적 압박이 한 층 더해졌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그렇게 신경 써 주면 좋지 않아요?"라는 반문에 잠시 말문이 막힌다. 이 방향은 과연 '좋은 것'일까.
이런 사고방식은 이미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이제 아이들을 좀 더 자유롭게 키우는 부모들은 실제로 체포될 수 있는 사회에 들어섰다. <나쁜 교육> 제8장 '편집증적 양육'에는 2014년 코네티컷에서 딸을 차에 두고 약국에 들른 엄마가 경범죄 소환 명령을 받고 법정에 출두한 사례가 소개된다. 지나가던 행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확인하고, "아이가 정상적으로 반응하며 스트레스 징후도 없다"고 밝혔다. 그 아이는 미국 보도 기준 열한 살이었다. 과보호는 이미 사회의 정의가 되었다.
사회가 법을 앞세워 안전주의 편을 들면 부모는 원치 않아도 과잉보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많은 부모가 자유롭게 놀던 유년의 기억을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면서도, 이제는 아이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지 못한다. 평범한 부모가 사회적 압박과 망신, 체포의 위험까지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나쁜 교육> 10장은 관료주의가 본질적으로 안전주의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학교는 교육 기관이자 행정 기관이다. 관료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육 행정을 관장하는 교육부·교육청 부서 대부분이 행정직 출신이고, 평판과 소송에 대한 우려가 더해지며 '안전주의 행정'이 주류가 되고 있다. 여기에 시장주의가 더해져 이제 초·중등 창의적 체험활동은 '도박·마약 중독 예방'을 포함한 각종 안전 예방 교육이 공격적으로 채워지고 있다.
2025년 2월,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 중 발생한 학생 사망 사고에 대해 춘천지방법원은 담임 교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 책임을 인정해 금고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어 전국의 체험학습이 줄줄이 취소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학부모들의 반응이었다. '아이들이 단체 체험 학습의 기회를 잃었다'는 아쉬움보다 '걱정되었는데 차라리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앞선 것이다. 체험학습 취소는 큰 반향 없이 진행되었고, 그렇게 교육계는 우리 사회와 함께 안전 제일 행정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교사 임용 준비 시절, 몇 학생의 수업 시연 후 교수님의 한 마디가 인상적이었다.
"과학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인가요?"
순간 웃음이 터졌다. 모두가 말은 못했지만, 알고 있었다. 안전은 필수지만 교육의 목표, 학습의 목표는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묘하게 수업의 한 축을 장악하고 있던 '안전주의'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요즘 학교 안팎에서 안전이 성장을 앞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오른다. 안전은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가 안전 제일주의로 나아가면 아이들은 '세상은 온통 위험투성이'라는 두려움을 배운다. 두려움과 의심은 내면의 습관이 된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살만한 아름다운 곳이 아닌, 위협이 된다. 우리 사고를 경직시키고, 삶을 위축시킨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비록 안전할지라도 지혜롭지는 못한 교육 방식이다.
초등 1학년 그 아이는 2학기에 접어들자, 이제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태권도 학원에 가겠다고 했다. 끈질긴 요청에 일주일간 지켜보고 결정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함께 길을 나섰다.
나는 안전하고 따뜻한 우리 마을을 걷는 듯했지만 주변의 CCTV와 위험 요소를 살피며 아이에게 내 불안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반면 아이는 골목의 주차 상태, 개가 묶여 있는 집의 위치, 횡단보도에서의 주의 사항까지 조목조목 진심을 다해 자신이 준비되었음을 어필했다. 200m 남짓의 거리였지만 아이는 기대와 설렘과 긴장이 섞인 자전거 모험을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와 약속한 일주일이, 사실은 내가 아이를 놓아 줄 용기를 준비하는 시간임을 알았다.
아이들을 키우기 두렵게하는 뉴스가 연일 쏟아진다.
진짜 안전한 세상은, 위험이 없는 세상이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있는 세상이다.
그 믿음이, 어른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진짜 용기다.
그 용기가 우리 사회 전체에 닿기를.
그래서 세상을 향한 아이들의 걸음을 함께 응원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참고
1. 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2022). <나쁜 교육>. 프시케의 숲.
(Jonathan Haidt & Greg Lukianoff, 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
2.
NBC Connecticut. (2014, July 9). Mom Issued Misdemeanor for Leaving 11-Year-Old in Car.
3.
오마이뉴스. (2025, March 8). 체험학습 사망사고 유죄판결... 더 안타까운 건.
4.
Let Grow. (2019, December 12). I Want to Let My Son Walk to School with Friends, But There's a Problem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 (지은이), 왕수민 (옮긴이),
프시케의숲,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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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얻는 힘과 지혜를 동경하며 책 <과학샘의 그라운딩, 자연에서 춤추다>를 펴냈다. 두 아들(초1,4학년)을 키우며 늘 흔들리면서도 읽고 쓰고 나누길 멈추지 않는, 앎을 삶으로, 삶은 예술로, 좋은 건 다 하고 싶은 현실적 이상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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