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k 우리는 여전히, 어떤 존재가 사회로부터 환영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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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주의, 가족의 재정의
한국에서 혼인 밖 출생에 대한 저항감은 종종 종교적 도덕주의와 맞물려 있다. 일부 보수적 신앙 담론은 '정상 가족'이라는 도식 아래, 생명의 탄생을 판단하고 위계를 매긴다. 하지만 생명이 어떤 경로로 태어났는지를 근거로 그 가치를 구분하는 것은, 윤리적 판단이라기보다 도덕적 권위주의 사고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는 가족의 개념을 다시 써야 한다. 가족은 혼인과 혈연이라는 형식보다, 돌봄과 책임이라는 관계적 윤리로 재정의해야 한다. 제도가 인간 존재를 분류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존재 가치가 제도보다 더 앞서야 한다. 비혼으로 태어난 아이도, 입양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도, 조손가정의 손자도 모두가 사회의 소중한 일부로 존중해야 한다. 출생의 형식이 아니라, 존재적 삶을 판단의 중심에 둘 때, 사회는 비로소 출생률이 아니라 생명력으로 충만해진다.
양육을 책임지는 사회
생명의 가치를 자격으로 매기는 사회가 아닌지, 이제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과연 공동체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새로운 생명을 단지 통계로 다루면서, 그 존재의 조건과 배경을 따지는 관습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생명도 진심으로 환영할 수 없을 것이다.
출생은 한 개인의 일이지만, 그 이후의 삶은 더 이상 가족만의 몫일 수 없다. 교육과 건강, 돌봄과 안전은 한 가정이 감당할 '사적인 의무'가 아니라, 공동체가 나누어야 할 '공적인 책임'의 구조다. 태어남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국가 시스템을 정교하게 구조화해야 할 때다. 한 생명이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오더라도, 그를 지켜줄 윤리적 책임과 양육할 과제는 국가와 사회에 있다. 출생 장려를 위한 예산을 집행하기에 앞서, 우리는 진지하게 본질적인 질문을 먼저 던져야만 한다.
'국가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누구의 아이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이 왜 소중한가를 묻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출생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야 할 때다.
'출생하는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면, 모든 논쟁은 사라진다.'

▲feet 출생하는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면, 모든 논쟁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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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중부일보 [주용수 칼럼]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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