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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서 본 가장 슬픈 장면... 눈에 밟힙니다

[60대는 구직중] 가족 면회로 분주했던 추석... 요양보호사들이 이맘때 꼭 하는 일

등록 2025.10.17 11:58수정 2025.10.1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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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의 추석은 언제 시작될까?

한 달 전 쯤 이다. 내가 다니는 요양원에는 이른바 희망 오프(off, 휴가) 제도가 있다. 자신이 쉬고 싶은 날을 한 달 전 쯤 미리 알리는 것이다. 10월에 앞서 9월 중순까지 요양보호사들의 희망 오프를 취합하는 식이다. 연휴가 길었던 올해 추석. 그만큼 요양보호사들의 마음 속은 복잡했다.


대부분의 주부를 자처하는 요양 보호사들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이른바 '눈치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1년 365일 단 하루 한 순간도 쉼 없이 운영되어야 하는 요양원. 누구나 다 쉬는 추석 명절에 쉬고 싶지만, 요양보호사들에게는 가장 분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재적인 혁신가 없이도 근근이 살아갈 수 있지만 성실한 메인테이너 없이는 일주일도 버틸 수 없다." - 전치형, <사람의 자리>

과학 기술 세계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선행 연구자들에 대한 경의의 의미로 등장한 용어 메인테이너. 그런데 명절 등 일상의 모든 순간을 지켜내는 모든 이를 지칭하는데 손색 없는 용어처럼 느껴진다. 아침 방송 라디오에서 이 단어를 듣는 순간 뿌듯했지만, 메인테이너의 현실은 질박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요양보호사들은 그 길고 긴 열흘의 연휴를 번갈아 가며 요양원을 지켜내야 한다. 심지어 서로 서로의 추석 명절을 품앗이 하기 위해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요양원을 지킨다.

요양원의 명절 풍경

 명절의 요양원 풍경은 면회 준비로 시작한다.
명절의 요양원 풍경은 면회 준비로 시작한다. elegeo on Unsplash

명절 답게 면회가 쏟아진다. 가족들은 추석을 기점으로 앞뒤 며칠 간 어르신들을 찾아온다. 기력이 없으셔서 침상 면회로 나가신 어르신. 그 분 주위를 온 가족이 에워싼다. 아들, 딸, 며느리, 손주들에, 심지어 강아지까지 총출동하기도 한다.

어르신들의 면회가 예정되어 있으면 요양보호사들은 분주하다.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밝게 보이실 수 있도록 가지고 있는 옷 중 화사한 옷으로 다시 갈아 입혀드린다. 늘 누워만 계셔서 눌린 머리를 빗기고, 아침에 세수를 했어도 그새 눈곱이 끼지 않았나 확인한다. 혹시 소변 냄새라도 날까 향기로운 로션도 다시 발라드린다.


남자 어르신들께 빼놓을 수 없는 건 수염이다. 누워 계신다 해도 수염은 변함없이 하루 이틀만 지나도 덥수룩해지니. 명절 빔은 아니더라도 추레한 모습으로 가족들을 만나지는 않았으면 하는 '또 다른 보호자(?)'의 심정인 것이다. 준비가 끝난 어르신들은 휠체어에 앉아서, 혹은 침상에 누워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 하신다.

가족들이 오셨다는 기별이 오면 부리나케 모시고 내려가 요즘 어르신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상태가 어떤지 등을 전해드린다. 평소에도 면회가 많은 날은 인원이 넉넉해도 힘든데, 적은 근무 인원에 면회가 쏟아지는 추석 연휴 기간은 그야말로 혼이 쏙 빠지도록 정신이 없다.


그런 가운데 눈에 밟히는 분들이 계신다. 나도 면회가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침부터 휠체어를 끌고 복도를 서성이는 분들... 아침 댓바람부터 저녁이 될 때까지 들락날락, 그러다 하루가 저물면, 일찍이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 쓰신다. 웅크려 누워 계신 그 뒷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외로워 보이신다.

명절이라고 한 쪽에서는 면회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데, 같은 방을 쓰시는 다른 분들은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묻어두었던 가족과의 적조함이 흙탕물처럼 솓구쳐 오르는 것이 명절인 것이다. 아니, 꼭 가족 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요양보호사가 아니면 거의 TV만 벗 삼아 지내는 요양원의 나날, 굳은 살처럼 무뎌졌다 여겼던 일상에서 그 누군가, 사람을 향한 아기 속살 같은 그리움이 잠시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명절 후 가장 큰 후유증, 솟구치는 그리움

 가족들이 돌아간 후, 솟구치는 감정들.
가족들이 돌아간 후, 솟구치는 감정들. m_dominguez_marketing on Unsplash

그렇게 한바탕 면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나면 명절이 끝날까? 아니, 후유증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아이고,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내 배 좀 어떻게 해봐요.'

면회를 마치고 돌아온 날 저녁, 한 어르신이 울먹이며 한 호소다. 명절이니 가족들은 저마다 추석 음식들을 준비해 와서 어르신과 나누는 경우가 많다. 평소 요양원에서 나오는 건건하고 덜 기름진 음식을 드시다가 기름진 전에 잡채에, 떡 같은 것을 듬뿍 드신 일부 어르신들은 면회가 끝나고 나서 한 차례 복통과 설사 등 통과 의례를 거치시기도 한다.

제일 심각한 후유증은 솟구쳐오르는 감정들이 아닐까. 면회를 오지 않으면 외롭지만, 가족들과 떠들썩하게 잠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어르신들의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때로는 '집에 가고 싶다'며 '집에 보내달라'며 우시기도 하고, 평소보다 더 우울해 하시곤 한다.

그렇게 전쟁처럼 요양원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요양보호사들은 마치 전우를 독려하듯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 하루를 무사히 치러냈음을 안도한다.
#60대는구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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