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논이 아니라 묏자리 됐다" 서산 농심의 깊은 한숨

벼·마늘, 기후위기에 잇단 피해... 선제 대응 없이는 내년 농사도 장담 못해

등록 2025.10.15 18:08수정 2025.10.15 18:08
6
원고료로 응원
 서산 일부 지역에서는 벼에 ‘깨씨무늬병’이 번지고, 잦은 비로 마늘 파종이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수발아 현상까지 겹치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서산 일부 지역에서는 벼에 ‘깨씨무늬병’이 번지고, 잦은 비로 마늘 파종이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수발아 현상까지 겹치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김선영

벼 수확 시기가 다가왔지만, 서산 일부 지역에서는 벼에 '깨씨무늬병'이 번지고 잦은 비로 마늘 파종이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수발아 현상(수확 앞둔 곡식 이삭에서 낟알이 싹트는 것)까지 겹치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수확의 계절을 맞아 황금빛으로 물들어야 할 가을 들녘. 하지만 색을 잘못 칠한 듯, 짙은 갈색으로 변한 논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가까이 다가가면 벼 잎마다 깨씨처럼 검은 반점이 퍼져 있고, 낱알은 말라 붙었다. 벼 수확량을 크게 줄이고 품질도 떨어뜨리는 깨씨무늬병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한 농가는 1만4천 평의 논이 쓰러졌다며 "논이 아니라 묘자리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농민들은 올해 피해의 원인을 한결같이 기후위기로 꼽았다. 유독 더운 날씨와 잦은 비가 반복되며 작물 생육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것이다. 비가 잦아 땅이 질척거려 마늘 파종을 미루는 농가도 적지 않다.

"벼는 병들고, 밭은 질어 마늘도 못 심는다"며 한숨을 내쉬는 농민의 말 속에는 '기후가 아니라 생계가 변했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벼 수확 시기가 다가왔지만, 서산 일부 지역에서는 벼에 ‘깨씨무늬병’이 번지고, 잦은 비로 마늘 파종이 지연되고 있다.
벼 수확 시기가 다가왔지만, 서산 일부 지역에서는 벼에 ‘깨씨무늬병’이 번지고, 잦은 비로 마늘 파종이 지연되고 있다. 이지환

"7∼8월 침수피해 1만3천 건"

서산시 관계자는 "7∼8월 집중호우로 1만3천여 건의 침수피해가 접수됐으며, 재해보상은 이미 지급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는 깨씨무늬병과 도복, 수발아 피해 민원이 일부 접수되고 있지만 아직은 심각한 단계로 보긴 어렵다"며 "추후 피해가 확대될 경우 재해 인정 여부에 따라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 규모에 비해 조사가 늦고, 행정 대응이 여전히 사후 보상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다.


농민들은 "재해 인정 기준이 까다롭고 조사 시점이 늦어 정작 실질적인 보상을 받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에 서산시는 "수확을 서두르도록 권고하고, 민원이 발생한 지역은 방문해 지도점검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벼 수확 시기가 다가왔지만, 서산 일부 지역에서는 벼에 ‘깨씨무늬병’이 번지고, 잦은 비로 마늘 파종이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수발아 현상까지 겹치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벼 수확 시기가 다가왔지만, 서산 일부 지역에서는 벼에 ‘깨씨무늬병’이 번지고, 잦은 비로 마늘 파종이 지연되고 있다. 여기에 수발아 현상까지 겹치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시민제보

장승재 전 충남도의원은 "고온다습한 기후로 올해는 특히 피해가 심했다"며 "이제는 아열대 기후에 맞는 대체작물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늘과 양파 파종이 늦어지면 내년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우려를 전했다.


25년째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고품종 벼일수록 비료를 과하게 주면 도복이 잘 된다"며 "비료보다 중요한 건 땅심 관리"라고 강조했다. 즉, 단순한 품종 전환보다 토양 생태 회복이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농업은 이미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며 "복구 중심의 행정으로는 매년 반복되는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기상 변화는 이미 예보 가능한 수준을 넘어 지역별 미세기후로 확산되고 있지만, 행정은 여전히 '평년 기준'에 맞춰 예산과 정책을 짜고 있다는 것이다.

토양 배수로와 관개시설 정비, 병해충 예찰시스템 구축, 내열·내습 품종 연구개발 등 기후 적응형 농업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예방보다 복구에 치우친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병숙 소비자기후행동 중부 활동가는 "기후위기 시대의 해법은 효율과 기술 중심의 대응을 넘어, 자연의 시간에 맞추는 농사와 생명의 속도에 귀 기울이는 생태순환 농업의 회복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민 보호를 위한 경제적·사회적·제도적 처우가 절실하며, 생산·유통·소비를 순환 구조로 묶어 '생산이 곧 기후행동'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소비자는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 기후위기에 맞선 사회적 연대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며 "진정한 해법은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기후위기 #자연과인간의관계회복 #대체작물개발 #‘깨씨무늬병’ #수발아현상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1000만원 학비' 사립초인데 기초수급자 자녀가 41명 [단독] '1000만원 학비' 사립초인데 기초수급자 자녀가 41명
  2. 2 [단독] 이재명 엮으러 바꿨나... '정영학 녹취' 검찰의 조작 정황 나왔다 [단독] 이재명 엮으러 바꿨나... '정영학 녹취' 검찰의 조작 정황 나왔다
  3. 3 [단독] 정영학 진술 번복 뒤 검사 문자 "제가 특수에서 쫓겨났다고 잊었나요?" [단독] 정영학 진술 번복 뒤 검사 문자 "제가 특수에서 쫓겨났다고 잊었나요?"
  4. 4 [단독] 조작 정황 정영학 녹취록, 법정 제출 검사는 '쿠팡 불기소' 엄희준 [단독] 조작 정황 정영학 녹취록,  법정 제출 검사는 '쿠팡 불기소' 엄희준
  5. 5 윤석열 "홍장원 메모는 지렁이 글씨", 지귀연 "왜 이렇게 흥분하나" 윤석열 "홍장원 메모는 지렁이 글씨", 지귀연 "왜 이렇게 흥분하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