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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세트장, 난 바리스타 연기자" 8년간 살아남은 이 카페의 비결

[청년이 지역에서 산다는 것: 공주편②] 100년 가게 꿈꾸는 황순형 충남 공주시 '반죽동247' 사장

등록 2025.11.08 19:37수정 2025.12.1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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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우연히 발견한 페이스북 포스팅 하나가 기자의 발걸음을 충남 공주로 향하게 했다. '제민컴퍼니즈 시즌5'라는 마을의 작은 포럼 소식이었는데 "보조사업과 지원사업 없이 자발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이루어집니다"라는 문구가 마음을 강하게 울렸다.

지역의 토론회 대부분이 정부 기관, 중간지원조직 주도, 혹은 지원사업인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자발적이고 내발적인 움직임이라니. 수년간 찾아 헤매던 '지역에서 창업자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공주 원도심 창업자들의 서사는 독특하고 재미있다. 이미 4년 반 전에 인터뷰 기획을 시도했으나 복잡한 서사를 쉽게 풀어낼 수 없어 수년간 만남과 인연을 이어오기만 했다. 이번 연재에서는 공주 원도심에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와 삶을 꾸려가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펼쳐내려고 한다.[기자말]
모두가 서울로 향할 때, 자신의 고향 충남 공주로 돌아온 청년이 있었다. 원도심 한가운데 터를 잡고, 커피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을 시작했다.

진한 커피 향 가득한 작은 공간. 한쪽에는 노트북을 켠 학생이 있고, 다른 쪽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담소를 나눈다. 관공서나 작은 사무실에서 나온 사람들은 열띤 회의 중이다. 이들은 카페를 드나들며 스스럼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작당 모의로 하나가 된다.

'반죽동247'이라는 카페 이름은 행정구역상의 주소를 표방하면서, 동시에 '24시간 × 7일 = 항상'이라는 은유를 담아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지속 가능한 관계를 뜻한다. 카페란 무엇일까. 단순히 커피를 마시고 파는 공간일까. 황순형 사장의 해답을 들어보았다.

영화 만들고 싶어 글만 쓰던 소년

반죽동247 황순형 사장 반죽동247 황순형 사장 인터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여러 차례, 오랜 시간에 걸쳐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가며 정리했다. 뻔한 듯한 카페창업이지만 일반적인 카페와 다른 부분이 많았다. 쇠퇴한 원도심, 줄어드는 인구구조 속에서 유동인구, 고객의 성격이 달랐고, 이에 따라 카페가 존재하는 목적,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노력 등은 짧고 간편한 이야기로 풀어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리된 인터뷰가 귀촌창업과 원도심에서의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 말고도, 편의점 숫자보다 더 많은 카페 포화상태 속에서 카페 창업을 고려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반죽동247 황순형 사장 반죽동247 황순형 사장 인터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여러 차례, 오랜 시간에 걸쳐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가며 정리했다. 뻔한 듯한 카페창업이지만 일반적인 카페와 다른 부분이 많았다. 쇠퇴한 원도심, 줄어드는 인구구조 속에서 유동인구, 고객의 성격이 달랐고, 이에 따라 카페가 존재하는 목적,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노력 등은 짧고 간편한 이야기로 풀어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리된 인터뷰가 귀촌창업과 원도심에서의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 말고도, 편의점 숫자보다 더 많은 카페 포화상태 속에서 카페 창업을 고려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매거진S

중학생 시절, 그는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방법을 몰라 글만 열심히 썼다.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꼭 참가했고, 심지어 공주교대 국어과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 자신의 글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때 쓴 문집은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말,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드라마 제작을 바로 전공하기보다는 기초가 될 영화학의 길을 찾고 싶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는 공주 출신 선배의 연락처를 알아냈고, 진로 상담을 위해 알지도 못하는 선배를 찾아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선배와의 만남 후, 결심이 선 그는 매주 서울을 오가며 영화 입시학원을 다녔다. 토요일 2교시를 마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 두 타임 수업을 듣고 숙소에서 잠을 잔 뒤, 일요일 두 타임 듣고 공주로 내려오는 생활을 1년 동안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이 넓음을 깨달았다. 보수적인 도시인 공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을 받고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대학에 들어간 그는 나름 '꽤 잘하는 학생'이었다. 학교 워크숍 작품, 선배들의 졸업 작품, 각종 독립 영화들에 스태프로 참여하며 20대 초반을 보냈다. 하지만 군대에 다녀온 후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열심히 알려주고 도와주던 후배들이 저보다 더 많이 성장해 있는 걸 느꼈어요. 엄밀히 말해 그때 깨달은 것은 영화 현장에서의 제 위치였죠. 봉준호나 박찬욱 같은 이들만 예술을 하고, 저 같은 스태프들은 노동을 하는 셈이었죠."


그에게 영화는 '약속'이었다. 약속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약속된 콘티를 짜서, 약속된 장소에서, 약속된 사람들이, 약속된 시간에 만나서, 약속된 것들을 주고받는 행위였다. 완벽한 컷을 추구했다가 망친 경험도 있었다.

"어떤 신(scene)을 준비해 촬영하는데, 갑자기 너무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한 컷 정도만 원래 콘티와 다르게 더 예쁘게 만들자고 고집을 부린 적이 있어요. 근데 그 샷만 예쁘게 나오고, 그 샷 하나 때문에 앞뒤가 엉망진창이 된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1천만 원으로 시작한 무모한 실험

반죽동247 황순형 사장 겉보기보다 협소한 공간에서 로스팅과 커피 판매를 하고 있다. 카페 내부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은 3개뿐이다. 단골이 되어버린 고객들 스스로 알아서 합석을 하거나 공간을 쪼개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네 소식을 주고받거나 협업의 포인트를 찾거나 하는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카페가 '마을회관'이 되는 순간이다.
▲반죽동247 황순형 사장 겉보기보다 협소한 공간에서 로스팅과 커피 판매를 하고 있다. 카페 내부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은 3개뿐이다. 단골이 되어버린 고객들 스스로 알아서 합석을 하거나 공간을 쪼개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네 소식을 주고받거나 협업의 포인트를 찾거나 하는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카페가 '마을회관'이 되는 순간이다. 매거진S

영화에만 빠져 살던 그가 카페를 하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계기는 어머니였다. 2015년 지금의 '반죽동247'의 전신인 '반죽동 커피공방'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는 공주에서 30년간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수강생이 점점 줄자 미술학원을 갤러리로 바꾸는 업종 전환을 결심했다. 갤러리에 오는 손님들에게 좋은 커피를 대접하고자 했는데, 그 마음을 아들인 황순형 사장이 알아봤다.

그는 커피 머신을 설치하러 온 기사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다가, 그 기사가 "마침 저도 내일 학원에 등록하러 가려는데 같이 가볼래요?"라고 제안했다. 그 한마디가 지금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원래는 바리스타 과정을 통해 커피의 세계에 입문할 생각이었지만, 그는 로스팅에 눈이 꽂혔다. 문득 영화학과에 진학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기본기를 더 깊게 다지기 위해 영화부터 배웠던 것처럼, 바리스타 과정보다 커피의 기본에 더 가까운 로스팅을 배우기로 했다. 이후 6개월 동안 '몰입의 기쁨'을 경험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너무 즐거웠어요. 로스팅 장비가 없어서 지인들의 장비를 이용해야 했는데, 그들의 매장이 있는 대전을 매일 오가는 길이 번거롭지 않게 느껴졌어요."

그로부터 1년 반 후인 2017년 10월 말, 그는 공주시 반죽동에 '반죽동247'을 열었다. 창업 당시를 돌아보며 황 사장은 "지금으로선 감히 할 수 없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당시 공주에 있는 친구들 90%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다들 서울 노량진이나 대전 학원가에서 공부하고 있었죠. 막연하지만, 부모님께 용돈 받으면서 공부하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돈 벌면서 공부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초기 자본은 어머니에게 빌린 1천만 원이었다. 수익 목표는 하루 5만 원 버는 걸로 했다. 이 정도면 월 70만 원은 남길 수 있겠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70만 원으로 잡은 건, 당시 학자금 대출 상환에 매달 70만 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맞닥뜨린 현실은 가혹했다. 하루 30잔도 못 팔았고, 월 매출은 300만 원을 밑돌았다. 원가를 제하면 남는 게 없었다. 하지만 잃을 게 없었기에 버텼고, 카페를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 갈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영화를 전공한 그답게, 창업 과정을 한 편의 영화 제작으로 간주했다.

"개념을 바꾸면 카페라는 영화 세트장을 만드는 거예요. 저는 그 세트장에서 바리스타 연기를 하는 거죠. '메타인지를 가진 또 다른 나'는 감독이 되어 장면을 진행시킨다 생각했어요. 잠재의식 속에서 카페를 배경으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첫 번째 씬을 위해 세트를 어떻게 구성할지, 바리스타가 어디에서 어떻게 등장할지... 자, 액션! 손님이 들어온다. 첫 번째 대사, '어서 오세요!'"

세밀한 고객 관찰과 승부수

반죽동247 황순형 사장 로스팅 공간 안에서
▲반죽동247 황순형 사장 로스팅 공간 안에서 매거진S

그가 창업할 당시, 반죽동 골목에는 카페가 많지 않았다. 지금도 유명한 바흐와 눈썹달 정도만 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황순형 사장은 창업 전부터 치밀한 상권분석을 했다. 그의 분석은 경쟁업체 수를 세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었다.

"오피스 상권에서는 로스팅이 강한 커피를 팔아야 합니다. 그곳에서 '커피로 맛의 예술을 하겠다'며 산미 있는 커피를 고집부리면 큰일 나요. 그곳의 고객들이 원하는 건 스트레스 해소예요. '빡!' 하고 오는 강한 카페인의 느낌이죠."

반죽동의 상황은 달랐다. 근처 카페들과 다른 커피 맛의 변별력이 필요했다. 주로 고소하게 로스팅한 커피들이 많았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찾았다. 커피 교육을 받을 당시 "경기도 이남에서 카페를 차릴 거면 '신 커피 팔지 마라', '우유 좋은 거 쓰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자신만의 분석을 믿고 산미 있는 커피로 승부를 걸었다.

"카페를 찾는 고객층을 보니 여성분들이 많았어요. 여성 고객들은 보통 복합적인 맛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산미 있는 커피를 고집해서 몇 번 성공시켰어요. 그게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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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거진S

초창기에는 하루 30잔도 못 팔았지만, 지금은 이 작은 카페에서 300잔을 판매한다. 날씨 좋은 날엔 하루 100만 원 매출을 기록한다. 지금까지 기록한 최고 매출은 180만 원에 달한다. 역설적인 것은 지금의 공주를 '카페 도시'라 해도 될 만큼, 인구 수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카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제가 시작할 때 카페가 500곳 정도였는데, 지금은 2천 곳이 넘을 거예요. '카페가 이렇게 많이 생기는데 괜찮으신가요?'라고 물어보시는데, 당연히 괜찮지 않아요."

이런 이유로 8년간의 운영 끝에 그가 터득한 전략은 '작고 뾰족하게 만들기'다. 그는 핵심 메뉴 하나 하나에 집중해 품질과 맛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커피를 낼 수 있을까만 고민했어요. 다른 카페들은 이렇게 하지 않아요. 따라서 저희의 포지셔닝은 확고해요. 저희의 위치는 '동떨어져 있는 어나더'예요."

커피 근본주의자의 철학

"카페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뭘까요? 저는 호스피탈리티보다 직업윤리라고 생각해요. 그게 처음이자 끝이에요."

8년째 카페를 운영해 온 황순형 대표와 '작고 뾰족하게'라는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화제는 뜻밖에도 직업윤리로 옮겨갔다. 선뜻 그 말의 의미가 쉽게 와닿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페를 찾을 때 머무르고 싶은 예쁜 공간, 친절하고 푸근한 응대를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질문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해 카페에 오시는 손님들이 커피의 맛을 어느 정도나 인식할까요? 몰라요. 그냥 '여기 맛있다' 정도가 대부분이에요. 그렇다면 카페는 뭘 고민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카페는 이기적입니다. 손님들이 여기서 뭘 얻어갈지에 대한 고민은 안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 자기가 만들고 싶고 방식의 커피만 생각해요."

그의 말은 카페 창업자들이 손님보다 자신의 취향을 우선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커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비즈니스적인 접근을 제대로 못 해요.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컵 사이즈예요. 이것부터 정해야 원가 구조가 결정되고, 판매 단가를 따져볼 수 있는데, 그걸 안 하죠. 이걸 고객과의 약속으로 두고 철저히 지켜나가는 게 직업윤리예요.

스타벅스가 이런 것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잖아요. 어디를 가도 같은 맛과 서비스의 형태로 나타나는 거예요. 반죽동247은 명확해요. 첫째는 카페인 공급소, 둘째는 마을회관이에요. 그 두 가지 역할에 맞게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는 거죠. 그 결과, 면적당 집객 수로만 보면 저희가 공주 내에서 1등이지 않을까 싶어요."

반죽동247 '반죽동247'이라는 가게 이름은 옛 지번주소에서 따왔다. '247'이라는 숫자는 '24시간+7일=항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언제나 반죽동 원도심의 카페인 공급소이자 마을회관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도 담았다고나 할까.
▲반죽동247 '반죽동247'이라는 가게 이름은 옛 지번주소에서 따왔다. '247'이라는 숫자는 '24시간+7일=항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언제나 반죽동 원도심의 카페인 공급소이자 마을회관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도 담았다고나 할까. 매거진S

이에 따라 반죽동247의 에스프레소는 세 가지 버전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에스프레소 자체를 즐기는 고객을 위한 버전, 두 번째는 아메리카노에 적합한 버전, 세 번째는 카페라떼처럼 우유를 베이스로 하거나 다른 창작 메뉴에 활용할 수 있는 버전이다. 이 세 가지가 각자의 목적에 맞게 충실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로스팅하고 블렌딩한다. 황 사장은 이런 자신을 '커피 근본주의자'라고 칭한다.

그렇게 카페로서 하나씩 자리매김해 가던 2018년 여름, 반죽동247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현재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로컬크리에이터 권오상 '퍼즐랩' 대표다.

"첫 번째 역할인 '원도심 카페인 공급소' 역할을 어느 정도 달성했기 때문에 두 번째 역할인 '마을회관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거죠. 지금 와서 보면 감히 '빅뱅의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도심에 불어온 창업의 바람

"당시 대전 교통방송국에 다니시는 분이 동네에 계셨는데, 한가한 이 동네에서 뭔가를 해보려는 분이셨어요. 마침 공주로 귀촌한 권오상 대표와 친하게 지내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그 분이 '권 사장님, 여기 청년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는데 맛있어요' 하시며 함께 오신 거예요."

그 만남을 계기로 이 조용한 동네에 '창업 씬'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황 사장과 권오상 대표는 독서모임을 통해 구체적인 인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임을 중심으로 작은 변화들이 차근차근 일어나기 시작했다.

권오상 대표는 귀촌 전, 이미 수도권에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동료였던 서동민 대표 부부가 공주로 이주해 '가가책방'을 열었고, 또 다른 동료인 이병성 대표가 서울시가 주관하는 '넥스트 로컬' 프로그램으로 합류했다. 어찌 보면 작은 변화지만, 조용했던 동네 입장에선 창업 붐이 일어난 셈이다. 황 사장이 '빅뱅'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 때문이다.

2019년 2월 <한겨레> 신문에 권오상 대표가 운영하는 한옥스테이 '봉황재'를 중심으로 공주 원도심이 '마을 호텔'로 변신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어 '퍼즐랩'은 같은 해 10월 서울 성수에서 열린 '2019 로컬크리에이터 페스타'에 참여했고, 11월 제주에서 열린 'J-Connect Day 2019'에도 지역혁신가로 초청됐다. 그때부터 공주 원도심의 로컬 창업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지며 '마을스테이 제민천'이라는 브랜딩이 성공했고, '제민천'이라는 지명은 점차 대중에게 친숙해졌다. 일부에서는 이런 흐름을 두고 '로컬의 실리콘밸리, 제민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8년간 이런 광경을 목격해 온 황순형 사장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포장된 모습만 보고 바깥 사람들이 '제민천 밸리'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와서 구경만 하지, 실제 속사정은 보려 하지 않아요."

황 사장은 냉정한 시각을 보였다.

"로컬크리에이터 지원 사업 등으로 포장된 성공 스토리에 끌려서 그런 모습만 보고 싶은 거예요. 실제로 이곳 봉황동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오히려 창업자 입장에서 이 지역을 돌아보면 '여긴 뭔데, 카페가 이렇게 많아?'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인구나 면적에 비해 이렇게 카페가 많고 배후 시장이 좁은 곳에서 어떻게 생존하는지를 궁금해 하고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가 창업 붐 이후 목격한 것은 '일시적 창업자'들의 행태였다. 황 사장은 진짜 이주민과 일시적 창업 체험자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그었다.

"이주를 한 적이 없는데 왜 이주민이에요? 오히려 이들을 '유목민'이라 불러야 해요. 원래 살던 대도시에 비해 공주의 월세가 싸니까 1년 정도 버틸 돈을 가지고 와서 창업한 것처럼 해놓고, 실제로는 쉬었다 돌아가는 유목민이죠.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관찰해 보면 휴업상태나 다름없는 점포가 제법 많아요. 물론 이주해서 로컬에서의 삶을 꾸려가는 이들도 있어요. 이병성 다이얼팩토리 대표, 서동민 가가책방 대표같은 이들은 찐이죠."

황 사장은 지역 창업 붐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를 "시공간의 수율이 떨어진다"고 표현했다.

"저희 카페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하지만, 대부분의 카페는 점심 무렵 영업을 시작해 오후 5~6시면 문을 닫아요. 손님이 없기 때문이죠. 하루 24시간 중 실제로 점포가 작동하는 시간이 너무 적어요. 이건 공주뿐 아니라 다른 지방 도시도 마찬가지예요."

지역 청년 창업에 대한 현실론

제민천 거리풍경. 카페 반죽동247에서 바라본. 제민천 거리풍경.
▲제민천 거리풍경. 카페 반죽동247에서 바라본. 제민천 거리풍경. 매거진S

날카로운 지적은 지역 청년 창업에 대해서도 이어졌다. 황 사장은 '청년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비판을 던졌다. 특히 'MZ세대(1980~2010년생)'라는 말로 30년 가까운 세대 차이를 한데 묶어 청년을 규정하는 현실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숫자상 일자리 창출만 생각하며 창업으로 지역 청년을 내모는 느낌이 있어요. 그 와중에 준비 안 된 창업자들이 너무 많다는 거죠. 청년이 지역에서 창업을 하려고 하면 '힙한' 걸 해야 먹고살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는 건 세탁소, 철물점, 그런 평범한 가게들이에요.

게다가 '청년'이라는 말이 나오면, 어떤 나이대의 청년을 말하는 건지부터 고민하게 돼요. 제 생각엔 '충분히 젊어서, 무언가를 충분히 해볼 만한 존재'가 청년이에요. 철물점을 하면서 오래된 집 문을 수리해 주고, 세탁소를 하면서 드라이클리닝을 돌리면서도 청년은 꿈을 꿀 수 있거든요."

황순형 사장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공주의 옛 직조공장 전통을 되살려 '도시형 제조업'을 시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동네는 원래 직조공장이 많았어요. 6.25 동란 이후 온 선교사들이 공주 주민들의 먹고 살길을 찾아주기 위해 방직 기술을 전해준 게 시작이었죠. 제조업 전통이 있는 도시란 이야기입니다. 물론 산업 경쟁력을 잃은 직조공장을 다시 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지역의 농축산물을 이용한 F&B(음식과 음료서비스 산업) 기반 제조업은 충분히 시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전의 '성심당' 같은 지역 기반 기업이 공주에서도 탄생할 수 있다고 봐요."

사실 카페 외의 F&B 비즈니스 도전은 그에게 생소하지 않다. 2020년 제민천 골목의 작은 공간에서 돈가스 전문점 '오거리카츠'를 열었고, 2022~2023년에는 공산성 부근에서 '밤잉도넛'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도넛을 만들어 본 적도 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소시지와 전통주 제조에 도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업을 구체화하고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최근 축산학과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어디 가도 지금까지 한 만큼은 해낼 수 있어요."

8년간의 카페 운영은 그에게 확고한 자신감을 주었다. 이제 그는 반죽동247을 '100년 뒤에도 존재하는 가게'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낮부터 이어진 긴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니 밤이 깊었다. 로컬은 화려한 브랜딩이나 정부 지원사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고민하고 실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꾸는 꿈은 단순히 하루 매출이나 생존을 넘어, 100년 후에도 지속될 지역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고 황순형 사장에게 이끌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는 산등성이에 올라갔다. 백제시대의 오랜 유적지가 있는 곳이었는데, 금강이 흐르는 공주 시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 풍경을 바라보며 앞으로 공주에서 펼쳐야 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생각하곤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고 황순형 사장에게 이끌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는 산등성이에 올라갔다. 백제시대의 오랜 유적지가 있는 곳이었는데, 금강이 흐르는 공주 시내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 풍경을 바라보며 앞으로 공주에서 펼쳐야 할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생각하곤 한다고 전했다. 매거진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독립잡지 「매거진S」에도 실립니다.
#로컬노믹스 #공주 #제민천 #로컬크리에이터 #원도심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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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식객입니다. 먹고사니즘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담은 독립잡지 <매거진S>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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