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이걸 어떻게 알지? 캐나다 '보물창고'에서 건진 추억

반품 매장 '1.5달러의 날'에 만난 공깃돌... 그 순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등록 2025.10.17 15:26수정 2025.10.17 15:26
1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캐나다 밴쿠버에 살다 보면 가끔 특별한 상점들을 만나게 된다.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반품된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창고형 매장들이 그중 대표적인 하나다.

지난 16일 지인을 오랜만에 만나 커피 한잔하고 있는데 갑자기 "보물을 찾으러 가자"고 했다. 지인이 자주 들린다는 매장은 반품 상품이나 재고를 값싸게 파는 곳으로, 쓸만한 물건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덕분에 처음 그 '보물 같은 매장'을 알게 되었다.


매장 안은 마치 거대한 보물 창고 같았다. 합판으로 만든 긴 진열대 위엔 나무 상자가 줄지어 있었고, 그 안엔 온갖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쇼핑몰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원하는 물건을 찾으려면 잡동사니 사이를 헤집어야 했고, 그 과정이 묘하게 재미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쌓인 상품들은 누군가에겐 쓰다 남은 물건일지 몰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보물 같았다.

'1.5달러의 날'에 만난 추억

 플라스틱 공기돌을 들고 즐거워하는 캐네디언 여성의 모습. 손짓으로 공기놀이 동작을 흉내 내며 미소 짓고 있다
플라스틱 공기돌을 들고 즐거워하는 캐네디언 여성의 모습. 손짓으로 공기놀이 동작을 흉내 내며 미소 짓고 있다 김종섭

이 매장은 요일 별로 가격이 달랐다. 금요일엔 새로운 물건이 진열되는 날이라고 한다. 상자 속 어떤 물건이든 30달러, 토요일은 5달러, 월요일 3달러, 그리고 수요일과 목요일엔 모든 품목이 단돈 1.5달러에 판매되고 있었다. 오늘은 바로 그 '1.5달러의 날'에 속하는 목요일이었다.

아내가 쓰던 아이패드 커버가 낡아 새 커버를 찾고 있었는데,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제품이 눈에 띄었다. 정말 1.5달러가 맞는지 믿기지 않아 확인 차 계산대로 가져갔더니, 영수증에는 분명히 1.5달러가 찍혀 있었다. 작은 금액이었지만, 그 순간 만큼은 뜻밖의 보물을 건진 기분이었다.

물건을 둘러보던 중, 한 30대 중후반 쯤 되어 보이는 캐나다 여성이 다가와 "혹시 한국인이냐"고 물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물건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는 "이거, 한국에서 아이들이 하는 놀이에 쓰는 거 맞죠?"라고 물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공기놀이 돌이었다.


"네, 맞아요. 공기놀이할 때 쓰는 거예요."

내 말에 그녀는 반가운 듯 손바닥 위에서 공기를 던지고 받는 시늉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작은 돌멩이를 주워 공기놀이를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공기놀이는 여자아이들이 주로 하던 놀이였지만, 우리 세대의 남자아이들도 어깨너머로 배우며 곧잘 따라하곤 했다. 축구공이 없어 지푸라기나 신문지를 돌돌 말아 공처럼 차고, 나무 토막 하나만 있어도 어디서든 놀이가 가능하던 그 시절. 땅 따먹기, 술래잡기... 놀잇감보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세대였다.


스마트폰과 게임기가 아이들의 주된 놀잇감이 된 시대에, 외국인이 오히려 한국의 전통 놀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그녀가 어떻게 공기놀이를 알게 되었는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작은 플라스틱 공깃돌 하나가 국경을 넘어 문화를 잇고 있다는 사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중고 매장에서 한국 탈 액자를 발견했을 때도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찾은 듯 기뻤는데, 오늘은 그보다 더 작은 '보물'을 다시 만난 셈이었다. 1.5달러짜리 공깃돌은 외국인에게 한국의 놀이문화를 떠올리게 한 보물이었고, 나에게는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꺼내준 보물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값비싼 명품만이 보물이 아니다. 가끔 헐값의 물건 하나가 마음속 깊은 기억을 건드리며 오래된 정서를 되살려 주기도 한다. 이날 나는 1.5달러로 그 감정을 건져 올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놀이의 힘과 추억의 가치를 다시금 느꼈다.

 창고형 할인 매장 내부 전경. 나무 박스로 구획된 진열대 위에 다양한 반품 상품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창고형 할인 매장 내부 전경. 나무 박스로 구획된 진열대 위에 다양한 반품 상품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김종섭
#밴쿠버생활 #공기놀이 #한국전통놀이 #사는이야기 #추억소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캐나다에 거주하며, 이민자의 삶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미국 산부인과 의사가 감탄한 자화상... 한국 작가 작품이라네요 미국 산부인과 의사가 감탄한 자화상... 한국 작가 작품이라네요
  2. 2 미군이 찍은 놀라운 모습...우리가 아는 한강이 아니다 미군이 찍은 놀라운 모습...우리가 아는 한강이 아니다
  3. 3 인천공항공사 노조 "보은인사 막히자 기자회견, 이학재 즉각 사퇴하라" 인천공항공사 노조 "보은인사 막히자 기자회견, 이학재 즉각 사퇴하라"
  4. 4 장동혁 단식 패싱한 신임 정무수석, 국힘 "예의 아니다" 발끈 장동혁 단식 패싱한 신임 정무수석, 국힘 "예의 아니다" 발끈
  5. 5 판교 호텔방이 동날 지경... 트럼프에 겁먹을 필요 없다 판교 호텔방이 동날 지경... 트럼프에 겁먹을 필요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