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두 얼굴의 도시, 저력과 불안을 동시에 만나다

세계 최고 수준 금융과 문화 도시 홍콩... 그 이면에 자리하는 제도적 경직성

등록 2025.10.20 09:24수정 2025.10.20 09:24
0
원고료로 응원
예순이라는 나이, 누군가는 그저 숫자일 뿐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나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아내와 함께 지난 세월을 기념할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중국 광둥성 선전, 홍콩, 마카오였다.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체제가 다른 세 곳을 잇는 8일 동안 여정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개혁·개방의 성과와 사회주의 중국의 또 다른 얼굴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일정 내내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역동적인 현장을 확인하는 한편, 정체성 혼란을 겪는 홍콩과 마카오의 단면을 엿보았다. 그 여정을 선전, 홍콩, 마카오로 세 차례로 나누어 정리한다.[기자말]
(이전 기사 : 인구 4만 한적한 어촌의 변신... 한국에 던진 질문 셋)

빅토리아 피크 정상에서 바라본 홍콩 전경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본 구룡반도 침사추이와 홍콩 섬 전경. 숱한 홍콩 영화의 배경이 된 홍콩 섬 일대 마천루는 세계 어느 도시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빅토리아 피크 정상에서 바라본 홍콩 전경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본 구룡반도 침사추이와 홍콩 섬 전경. 숱한 홍콩 영화의 배경이 된 홍콩 섬 일대 마천루는 세계 어느 도시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임병식

선전 푸텐(福田)역 대합실은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중국 건국절과 중추절 연휴를 맞아 홍콩을 찾는 이들이다. 공교롭게 올해 한국과 중국의 연휴 기간은 비슷했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출국 수속을 밟고 탑승했다. 기차에 몸을 싣고 채 15분이 안 돼 홍콩 구룡 서역에 닿았다.


선전과 홍콩 모두 자본주의 첨병에 서 있지만 공기는 전혀 달랐다. 선전은 화려해도 왠지 경직된 반면, 홍콩은 옷차림부터 말투까지 모든 게 자유롭다. 선전은 자본주의 물을 먹은 지 45년에 불과한 사회주의 도시인 반면, 홍콩은 100여 년 넘게 자본주의 세례를 받았다. 그럼에도 홍콩인들 또한 뒤숭숭함은 감출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전환은 심리적 불안감을 필연적으로 수반했다.

홍콩 섬 전경 구룡반도 침사추이에서 바라본 홍콩 섬 전경. 홍콩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이곳 스타의 거리에서 홍콩 섬을 바라보며 영화 속 감상에 젖는다.
▲홍콩 섬 전경 구룡반도 침사추이에서 바라본 홍콩 섬 전경. 홍콩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이곳 스타의 거리에서 홍콩 섬을 바라보며 영화 속 감상에 젖는다. 임병식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 아래 자본주의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반환 이후 28년 동안 홍콩 시민들은 불안에 시달렸다. 초조함은 2019년 민주화 시위에서 폭발했다. 범죄인 인도법안에 반대한 대규모 시위는 수백만 명을 거리로 불러냈다. 경찰과 시민이 충돌했고, 최루탄과 방패가 홍콩의 시가지를 덮었다.

2020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국가보안법을 의결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반정부 활동을 광범위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숨통을 옥죄었다. 언론·시민단체·야당 정치인들이 잇따라 해체되거나 체포됐다. 지난해 3월에는 기본법 23조를 강화해 보안 범죄 범위를 더 넓혔다. 홍콩은 더 이상 '자유 도시'로 부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홍콩

트랜스포머 촬영지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홍콩 익청빌딩 외부. 트랜스포머에서 로봇들은 아파트 외벽을 타고 다니며 전투를 벌인다.
▲트랜스포머 촬영지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홍콩 익청빌딩 외부. 트랜스포머에서 로봇들은 아파트 외벽을 타고 다니며 전투를 벌인다. 임병식

홍콩의 일상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홍콩의 명물 이층 버스와 이층 트램은 변함없이 도심을 오가고 있었다. 명품 브랜드 상점과 허름한 야시장이 공존하는 구룡반도 침사추이와 홍콩섬 센트럴 일대는 활기가 돌았다.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에 올랐다. 숱한 영화의 배경이 된 홍콩섬과 구룡반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낮임에도 스카이라인 밀도는 세계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았다. 뉴욕 맨해튼,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과는 다른 질감이다.


홍콩 지하철인 MTR과 이층 버스, 이층 트램, 페리, 택시로 연결하는 홍콩의 교통 시스템은 완벽에 가까웠다. 도시 전역을 촘촘히 연결하면서도 교통 체증을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다른 교통수단과 매끄럽게 연결하고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MTR은 인상적이다. 노선마다 다른 색을 이용해 구분했는데 지하 역사까지 같은 색을 사용해 직관적이다.

이층 버스와 이층 트램 홍콩의 명물 이층 버스와 이층 트램. 홍콩 섬 전역을 촘촘히 누비며 홍콩 시민과 여행자들의 발이 되는 익숙한 풍경은 홍콩을 상징한다.
▲이층 버스와 이층 트램 홍콩의 명물 이층 버스와 이층 트램. 홍콩 섬 전역을 촘촘히 누비며 홍콩 시민과 여행자들의 발이 되는 익숙한 풍경은 홍콩을 상징한다. 임병식

홍콩 지하철2 홍콩 지하철은 역사마다 다른 색을 칠해 직관적이다. 세련되고 편리한 홍콩 지하철은 홍콩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홍콩 지하철2 홍콩 지하철은 역사마다 다른 색을 칠해 직관적이다. 세련되고 편리한 홍콩 지하철은 홍콩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임병식

이층 버스는 쾌적하고 럭셔리한 관광버스로 착각할 정도였다. 낡은 트램이 느릿느릿 시가지를 누비는 풍광 또한 이색적이다. 우리 돈 550원이면 시내 전역을 오갈 수 있어 관광객들은 행복하다. 이층 트램에서 지갑을 주워 기사에게 건넸다. 중년 여성 기사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환하게 웃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긴장된 도시에서 만난 따뜻함이었다.


586세대에게 홍콩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세대는 주윤발과 장국영, 양조위, 성룡, 홍금보, 이연걸, 임청하, 양자경, 장만옥 등이 출연한 홍콩영화를 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영화 속 명소다.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하는 이 에스컬레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에스컬레이터 23개가 산비탈을 따라 800m가량 이어진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음에 품고 있던 경찰관 663을 훔쳐 본다. 에스컬레이터는 산비탈 높은 곳에 사는 중산층과 부유층의 출퇴근 패턴을 반영한 것이다. 달동네 서민들을 위한 게 아니다. 출근 시간대는 내려오고, 낮부터 밤까지는 올라간다.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하는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세계 최장으로 총 23개 에스컬레이터가 800m 산비탈을 따라 올라간다.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하는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세계 최장으로 총 23개 에스컬레이터가 800m 산비탈을 따라 올라간다. 임병식

두 얼굴을 가진 도시

서구룡 문화지구(WKCD)는 쇼핑 중심 홍콩이 문화 도시로 진화하고 있는 현장이다. 2012년부터 3조 원을 투입해 간척지를 메워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조성했다. 오페라 하우스와 1만 5000석 규모 아레나, M+ 미술관, 홍콩 고궁박물관이 들어섰다. M+는 개관 3년 만에 아시아 현대미술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건물 외벽을 대나무 숲처럼 디자인했는데 8000여 점의 컬렉션은 자랑이다. 명청시대 보물을 소장한 고궁 박물관도 감각적인 디자인과 뛰어난 컬렉션을 바탕으로 발길을 끌고 있다.

홍콩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함은 진행형이다. 2021년 이후 영국은 홍콩인의 이주를 돕는 BNO 비자를 발급했다. 지금까지 16만 명 이상 떠났다. 체제와 자유의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홍콩은 금융과 무역의 허브지만, 정치적 자율성이 축소된 채 국제 사회와 얼마나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홍콩 시가지 국제 무역과 금융 중심지로서 이름난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반환한 이후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
▲홍콩 시가지 국제 무역과 금융 중심지로서 이름난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반환한 이후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 임병식

여행자로서 홍콩은 두 얼굴을 가진 도시다. 교통과 관광, 문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그 이면에는 제도적 경직과 심리적 불안이 공존하고 있다. 자유와 안정 사이에서 균형은 늘 흔들리겠지만, 홍콩이 축적해온 자본과 문화적 저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관건은 정치와 제도가 시민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화려한 홍콩섬 빌딩 숲 사이에서 나는 "이념이란 무엇인지, 체제는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중국 탕산해운대학 초빙교수이자 순천향대학교 대우교수입니다.
#침사추이 #홍콩지하철 #중경삼림 #이층트램 #빅토리아피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국서 두 번째로 큰 수목원이 갑자기 폐쇄...이해가 됩니까? 전국서 두 번째로 큰  수목원이 갑자기 폐쇄...이해가 됩니까?
  2. 2 독일인들이 한국을 동경하게 만든 남자 독일인들이 한국을 동경하게 만든 남자
  3. 3 "김혜경 여사, 몽골 대통령과 악수하고 손 털었다" 거짓 "김혜경 여사, 몽골 대통령과 악수하고 손 털었다" 거짓
  4. 4 아기띠 메고 7.3km 행군, 고속 노화의 여름이었다  아기띠 메고 7.3km 행군, 고속 노화의 여름이었다
  5. 5 "민주당에 공정이 없다" 86세대 직격, 당대표 후보 김보미 누구? "민주당에 공정이 없다" 86세대 직격, 당대표 후보 김보미 누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