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쌓여 있는 나무 생선상자 앞을 어류 배송 오토바이가 스쳐 지나간다. 오래된 나무의 결마다 손때와 생선비늘이 스며 있고, 골목의 공기에는 여전히 노동의 냄새가 배어 있다. 도시의 중심이 변해도, 자갈치의 새벽은 이처럼 노동의 속도로 흘러간다.
정남준
부산 자갈치의 한 골목. 수백 개의 나무 생선상자가 벽처럼 쌓여 있다. 그 앞을 생선배송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간다. 생선을 실은 듯한 배달용 상자와 낡은 장비,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 짧은 순간의 장면이지만, 이 풍경은 부산의 산업 구조와 노동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자갈치는 오랜 세월 부산을 대표해온 수산업의 중심지다. 이곳에서 매일 새벽 다양한 어선들이 도착하고, 생선은 시장을 거쳐 도매상·식당·소매점으로 유통된다. 그 과정은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상자를 옮기고, 분류하고, 배달하는 수많은 이들의 노동이 시장의 하루를 완성한다.
사진 속 배경을 이루는 나무상자는 단순한 어류 운반 도구가 아니다. 바닷물의 염분과 손때가 스며든 그 표면은, 세월과 노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상자들은 일정치 않은 각도와 높이로 쌓여 있고, 그 불균형한 질서 속에서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플라스틱 상자가 보급된 오늘날에도 일부 시장에서는 여전히 나무상자가 쓰인다. 그 이유는 단순히 비용 문제가 아니라, 시장 특유의 관행과 효율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기계적 효율보다 '손의 감각으로 이어온 일의 방식', 즉 노동이 도시의 질서를 유지해온 흔적이 담겨 있다.
오토바이를 몰고 지나가는 남자는 매일 자갈치 골목을 오간다.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배달, 짧은 휴식, 다시 이어지는 이동. 그의 일은 도시의 수많은 식탁과 시장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연결'이다. 그의 표정에는 감정의 과잉이 없다. 피로와 익숙함, 그리고 반복 속에서 체득된 담담함이 얼굴에 묻어 있다. 그의 하루는 화려하지 않지만, 바로 이런 사람들의 노동이 도시를 움직인다. 자동화된 물류 시스템, 관광지로 변한 자갈치의 외피 뒤에서 여전히 사람의 노동이 이 도시의 혈류를 돌리고 있다.
오늘날 자갈치는 관광지로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자갈치 아지매' 캐릭터, 해산물 거리, 야시장 등은 도시 마케팅의 주요 이미지가 됐다. 하지만 관광의 표면 아래에는 여전히 삶의 무게가 쌓여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도시의 구조적 변화를 직접 체감하고 있다. 재개발로 인한 시장 공간 축소, 어획량 감소, 물류비 상승 등은 그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관광지로 재탄생한 자갈치의 화려한 조명 뒤에는, 묵묵히 시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어둡지만 단단한 그림자가 있다.
자갈치의 풍경은 변하고 있다. 콘크리트 건물 대신 유리 외벽이 늘었고, 시장의 골목에는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선다. 그러나 골목 한편에서는 여전히 나무상자가 쌓이고, 사람들은 그 옆을 오토바이로 오간다. 도시는 이렇게 두 얼굴을 지닌 채 살아간다. 보여지는 도시와, 작동하는 도시. 사진은 그 사이를 비춘다. 화려한 외피 대신 묵직한 현실을, 피로한 얼굴 속에서 지속의 의미를 보여준다. 자갈치의 나무상자와 그 앞을 달리는 남자, 그 둘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여전히 노동의 리듬으로 호흡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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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드러나지 않은 삶과 소외된 이들의 희망을 세상에 전하고자 합니다. 사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그 긴 여정에 함께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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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갈치의 하루, 나무생선상자로 쌓인 노동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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