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이 알려준 기후위기 적응의 길

아무리 정밀한 예측도 완벽할 수 없다, 하늘을 탓하기보다 지역의 맷집을 키우자

등록 2025.10.19 14:24수정 2025.10.2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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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2일 저수율이 11.5%까지 떨어져 맨바닥을 드러냈던 강원 강릉시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가 14일 오후 4시 저수율 87.8%를 기록한 가운데 지난 7일 이후 방류가 계속되고 있다. 2025.10.14
지난 9월 12일 저수율이 11.5%까지 떨어져 맨바닥을 드러냈던 강원 강릉시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가 14일 오후 4시 저수율 87.8%를 기록한 가운데 지난 7일 이후 방류가 계속되고 있다. 2025.10.14 연합뉴스

"이제 비 좀 그만 왔으면 좋겠어요."

가뭄이 끝나자 폭우가 덮쳤다. 강릉 구정면의 한 농민 김모(78)씨의 한숨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논바닥이 갈라져 씨를 뿌리지 못했는데, 이번엔 한 달 넘게 내린 비로 벼가 물에 잠겨 썩어가고 있다. 가뭄과 폭우, 이 두 얼굴의 기후가 같은 해 안에서 오락가락하며 농민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상황이 '예측 실패'로만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기상청장은 "강릉 가뭄 예측 실패를 인정한다"라고 말했다.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했지만, 폭염으로 인해 토양 속 수분이 빠르게 마르는 '돌발가뭄'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예측 그 자체일까? 훌륭한 학자들이 밤낮없이 데이터를 분석해도 자연은 그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예측이 틀리면 걱정이고, 맞아도 걱정이다.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위기의 핵심은 예측의 정확도가 아니라 '맷집의 부족'이다. 강릉의 사례는 또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어느 전문가도 자신 있게 기후를 예측을 할 수 없으니, 언론이나 시민들이 그런 답을 요구하고 믿는 것은 삼가야 한다. 예측은 참고일 뿐, 진짜 대응은 준비에 달려 있다.

초보자, 중급자, 그리고 고수의 물관리

기후위기 대응은 무예와 닮아 있다.


초보자는 배에 힘을 주고 맞는다. 상대가 배를 칠 것이라 예상하고 배에만 힘을 주지만, 주먹이 턱으로 날아오면 그대로 당한다. 기후위기 대응도 마찬가지다. "10년 빈도", "20년 빈도"로 계산해 하수관거를 키우는 방식은 예측된 방향만 대비한 초보자의 자세다. 막대한 돈을 들여도, 예상보다 큰 폭우나 다른 형태의 재난이 오면 속수무책이다.

중급자는 과도하게 방어한다. 언제 어디를 칠지 몰라 온몸에 방어구를 두르고 움츠린다. 홍수펌프장, 저류조, 대심도 터널을 무조건 늘리는 방식이 그렇다. 모든 곳을 방어하려다 비용은 폭등하고, 그 시설들은 일 년 중 며칠만 작동하는 비싼 콘크리트 구조물로 남는다. 필요 이상으로 방비에 치중해도, 본질적인 회복력은 생기지 않는다.


고수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한다. 홍수로 쏟아지는 빗물을 피해로만 보지 않고, 다음 가뭄의 자원으로 바꾼다. '엎어치기 기술'처럼 자연의 힘을 받아내며 활용하는 것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산 중턱의 '물모이', 논의 '둠벙', 지붕의 '빗물저금통'이 바로 그 해법이다. 이렇게 모아둔 빗물은 땅속을 적시고, 숲을 살리며, 가뭄에도 버티는 기후 맷집을 만들어준다.

예측보다 준비, 데이터보다 현장

기상청이 토양수분 예측 모델을 내년에야 시범 운영한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예측보다 현장 준비력'을 키우는 일이다. 폭염이 와도, 폭우가 쏟아져도 버틸 수 있는 로컬 물그릇을 만드는 것이 진짜 대응이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홍수나 가뭄에 대비하는 길은, 각 지역이 스스로의 특성에 맞게 빗물을 모아두는 것이다. 산에는 물모이, 논과 밭에는 둠벙, 지붕에는 빗물저금통. 이런 물그릇이 많을수록 지역의 회복력은 커진다.

기상청장을 다그치기보다, 각 지자체의 장에게 "당신 지역의 맷집은 충분한가?"를 물어야 한다.
고수의 기후위기 대응법은 중앙의 예측보다 지역의 준비에 있다.

하늘을 탓하지 말고, 땅의 맷집을 키우자

강릉의 가을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라 지금 이 땅 위의 현실이다. 가뭄에도, 폭우에도 견디는 힘은 예측이 아니라 준비에서 나온다. 하늘은 변덕스럽지만,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하늘이 아니라 땅이다.

산과 논, 마을 곳곳에 작은 물그릇을 두는 것— 그것이 '모든 물을, 모두가, 모두를 위해 관리하는' 모모모(MoMoMo) 물관리의 길이다. 예측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이제는 맷집 있는 사회, 회복력 있는 지역,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다.

국회의원이 물어야 할 질문

강릉의 교훈은 단순한 기상 문제를 넘어, 정책과 제도의 근본을 되돌아보게 한다.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를 질의해야 한다. "다음엔 또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상청의 예측 정확도만 따질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이 스스로의 기후 맷집을 키울 수 있도록 제도와 예산을 설계해야 한다. 산에는 물모이, 논과 밭에는 둠벙, 지붕에는 빗물저금통—이러한 '로컬 물그릇'이야말로 진짜 방재 인프라다.

기후 맷집을 키우면 국가도 안전해지고, 국민도 편안해지며, 정치인 자신도 비판 대신 신뢰를 얻게 된다. 국회의 질의가 향해야 할 곳은 "누가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음엔 버틸 수 있는가"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국정감사,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한 정치의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카드뉴스로도 볼수 있습니다: https://link24.kr/6Bxgzxr
#기후위기 #고수의물관리 #기상청의기후예측실패 #국회질의 #모모모물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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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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