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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만든 군밤, 이만한 '핑거푸드' 없습니다

밤 까며 되새긴 마음...엄마 생각 물씬 나는 가을 군밤, 이렇게 만들어보세요

등록 2025.10.20 11:25수정 2025.10.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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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추석 명절이면 어김없이 할아버지 댁에 가 차례를 지냈다. 차례 후 다음 단계는 성묘였다.
조상님들 묘는 할아버지 집 뒷산에 있었고 가는 길이 꽤 험했다. 가는 길목의 평지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그 평지를 지나면 고개를 넘듯 산을 오르내려야 했다. 어린 마음에 그 길은 멀게만 느껴졌지만 또 어렸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걸었던 것 같다.

성묘를 가는 길 곳곳에 밤나무들이 많았다.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엄마는 떨어진 밤송이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지천에 널린 밤들을 엄마는 익숙한 듯 까서 어디에든 담곤 했다. 밤송이 가시는 성이 난 듯 뾰족하고 날카롭다. 그 가시에 찔려 본 사람은 가시들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거다. 눈물이 핑 도는 고통이다. 어린 나는 밤송이를 까고 싶어도 겁이 나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부드럽고 달달한 알맹이

엄마는 긴 나무 작대기 몇 개를 주워와 밤송이 까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작대기로 밤송이 가운데를 꾹 눌러 벌리고 양쪽 발을 사용해 밤송이 속 갈색 밤이 보이도록 힘을 주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도 이내 엄마처럼 밤송이를 발로 벌려 보았다. 밤송이는 가시의 위세와는 다르게 발의 힘에 쉽게 열리는 편이었다. 진한 갈색의 밤은 밤송이 안을 가득 채우며 영글어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십시일반 모아 온 밤을 집에 와 삶아 주었다. 삶아 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삶은 밤의 딱딱한 껍질을 까고 떫은 속 껍질도 깨끗하게 까 노란 밤알맹이만 접시에 담았다. 나는 접시에 수북이 쌓인 밤을 '핑거 푸드(손으로 간편히 집어 먹는 음식)' 먹듯 집어 먹었다. 엄마는 늘 그렇게 딱딱한 껍질을 먼저 맞았다. 세상의 냉기와 고단함을 손으로 벗겨내고 자식에게는 부드럽고 달달한 알맹이만 주었던 것이다.

굽기 전 밑동에 칼집 낸 밤 밤 밑동에 칼집을 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어떤 음식도 정성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굽기 전 밑동에 칼집 낸 밤 밤 밑동에 칼집을 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어떤 음식도 정성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선아

추석에 시댁에 갔다가 밤 두 봉지를 얻어 왔다. 한 소쿠리 삶아 숟가락으로 파 먹어 보니 맛이 좋았다. 하지만 귀찮아서 그런지 식구들도 그렇고 나조차도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주말에 날을 잡아 군밤을 만들기로 했다. 군밤은 까기 편하니 식구들도 먹기 편할 거라 생각했다.

먼저 밤을 깨끗이 씻고 물에 담갔다. 천일염을 살짝 뿌려 소금물을 만들면 껍질이 더 부드러워진다. 40분에서 한 시간 후 물에 떠오른 썩은 밤은 버렸다. 벌레 먹은 밤도 골라 냈다. 소금물을 헹군 다음 밤 밑동에 칼집을 내줘야 한다. 딱딱한 밤에 칼집을 내는 일은 손목이 나갈 듯 아픈 노동이었다. 엄마가 내놓은 밤 알맹이만 집어 먹던 그때가 좋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칼을 사용했지만 그것조차 힘에 부쳤다. 칼집 모양은 투박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가위를 사용했다. 칼집을 내는 도구를 인터넷 쇼핑몰에 팔던데, 그 도구를 주문 하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했다. 여차저차 제멋대로 칼집을 다 내고 15분 정도 삶아 주었다. 그다음 냄비에 넣고 수분기를 날려 준 다음 뚜껑을 덮고 구웠다. 밤 껍질이 검게 군밤 색이 날 때쯤 되면 완성된 거다. 한번 삶았기 때문에 밤들이 모두 조개처럼 입을 벌리면 색깔과 상관없이 불을 꺼도 된다.

군밤 냄비나 팬에 구워주면 저렇게 입을 벌리고 까먹기 편해 진다.
▲군밤 냄비나 팬에 구워주면 저렇게 입을 벌리고 까먹기 편해 진다. 한선아

밤을 까며 느끼는 엄마의 사랑


공을 들인 만큼 밤은 잘 까졌고 먹기도 편했다. 숟가락으로 퍼 먹는 것보다 한입에 쏙 먹을 수 있으니 훨씬 맛있었다. 하지만 나는 구운 밤을 한 김 식힌 다음 알맹이만 꺼내 접시에 담았다. 집에서 만든 군밤은 알맹이가 한 번에 빠지지 않은 것도 많았다. 칼로 껍질을 벗겨가면서 그 옛날 엄마처럼 수북이 밤을 접시에 담았다. 집에 돌아와 맛있게 밤을 먹을 아들들을 생각 했다. 오며 가며 식탁 위의 밤을 집어 먹겠지.

나는 밤을 까며 엄마의 마음을 만났다. 엄마의 손끝에는 항상 자식을 향한 마음이 있었다. 설사 그게 지천에 널린 밤이라 할 지라도 엄마 손을 거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핑거 푸드'가 되었다. 부모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는 자식의 전 생애를 지배하기도 한다. 어른이 된 후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입 속에서 부드럽게 씹히던 노란 밤 알맹이는 가시 속 냉한 껍질도, 떫은 속 껍질도 자식은 모르길 바랐을 엄마의 마음이었다.

밤알맹이 군밤에서 끝내지 않고 아들들을 위헤 알맹이만 쏙 꺼내 담았다. 핑거푸드였다.
▲밤알맹이 군밤에서 끝내지 않고 아들들을 위헤 알맹이만 쏙 꺼내 담았다. 핑거푸드였다. 한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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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엄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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