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동녘
"아무도 역사의 '거름'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안토니오 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1:정치편>(이상훈 옮김, 1992) 103p
일부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선 신도시에서는 양육자들이 학교 학생회 선거판을 주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공약을 만들어주고, 홍 보영상도 학원이나 업체에 의뢰해 만들고, 표 조직도 엄마들의 네트워크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던 중에 들은, 나에게 흡사 도시 괴담처럼 들리는 이야기였다. '자주적 학생회 쟁취,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구호이던 과거의 역사는 온데간데 없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자신의 운동 이력을 자원으로 활용해 살아가는 기회주의자들의 세계에서, 고등학생 운동에 뛰어든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기꺼이 역사의 거름이자 배경으로 살고자 했던 이름 모를 이들을 소환한다. 책을 통해 서울고등학생연합이라는 청소년 조직이 "노태우 당선시킨 기성세대 각성, 군부독재 타도, 민주교육 쟁취"(22쪽)를 구호로 내세우며 6일간 명동성당 농성시위를 했다는 역사를 알게 되면서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격렬한 항쟁이 끝난 후 불의한 현실에 급속도로 무관심한 사회적 분위기가 지배하던 그때 그 시절, 지키고 싶은 것이 많고 피로했던 어른들에게 실망하고 좌절했을 청소년들. 항쟁이 끝나고 모두가 사적인 삶으로 후퇴하던 때,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의미와 진정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학생인권조례가 정착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사회가 합의하고 만들어낸 '학생인권'의 가치는 어째서 위협받는가. 왜 학생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만 지는가. '고등학생 운동'을 경험한 이들이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영감은 바로 이것이다. 꿈꾸는 삶이 있었다는 것. 어느 순간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나 역시 여전히 가장 바라는 가치이기도 한. 그들은 결코 스스로 무릎 꿇지 않았다. 자신이 꿈꾸는 사회와 삶을 위해 하늘 높이 종이비행기를 띄웠던 아름다운 사람들을 기억하며.
고등학생운동사 - 1980~1990년대, 불온하고 정치적인 10대들의 기록
김소연, 전성원, 김대현, 정경화, 김성윤, 이형신, 안수찬, 양민주, 김영희, 권정기, 조한진희(반다), 전누리 (지은이), 조한진희(반다) (기획),
동녘,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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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건 언행일치" 그들은 결코 스스로 무릎 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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