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증명'... 그가 해남에서 북을 잡은 이유

박준호 고수의 세 번째 고법 발표회 속 남은 메시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이 있길"

등록 2025.10.21 14:52수정 2025.10.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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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판소리고법 발표회 찬조출연 북평국악동호회 합북단 어르신들이 고수 박준호와 합을 맞추며 단가 '사철가'를 공연하고 있는 장면이다
▲박준호 판소리고법 발표회 찬조출연 북평국악동호회 합북단 어르신들이 고수 박준호와 합을 맞추며 단가 '사철가'를 공연하고 있는 장면이다 김성훈

고수 박준호(41)는 올해도 북채를 쥐었다. 지난 17일 오후 4시, 해남문화원 2층 공연장에서 열린 '해남 고수의 맥을 잇다 3' 판소리고법 발표회는 그가 2023년부터 매년 이어온 해남북 전승 무대의 세 번째 여정이었다. 그는 1993년 열 살 무렵 해남문화원 지역문화학교 제1기생으로 처음 북을 잡았다. 그를 제자로 삼은 사람은 전라남도무형문화재 고 추정남 선생이었다.

"나는 선생님 외에 다른 고수를 찾아간 적이 없다. 스승 곁에서만 배웠고, 그 원형 그대로를 지켜왔다."


그 말처럼 그는 30년 동안 오직 한 스승의 북가락을 이어왔다. 그의 인생은 소리북으로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음악의 길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이어졌다. 20대 시절 그는 전국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으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았고,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상임 및 수석단원으로 12년을 보냈다. 현재는 광주예술고 국악과 교사로 후배를 길러내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해남에 있다.

"솔직히 광주나 서울에서 활동하면 훨씬 편하다. 하지만 해남에서 이걸 지키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 발표회가 있어야 기록되고 전승이 된다."

지역과 예인이 잇는 시간

올해 발표회는 특히 상징적이었다. 해남문화원이 리모델링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이다.

"문화원 무대가 바뀌기 전에 어르신들과 마지막으로 함께하고 싶었다."


그날 해남은 크고 작은 축제가 겹쳐 분주했지만, 문화원 공연장은 자리를 지킨 이들로 가득 찼다. 박준호는 어르신들과 함께 <사철가>로 무대를 열었다. 박귀희제 가야금 병창, 서용석류 대금 산조와 동편 김세종제와 서편 정정렬제 <춘향가> 눈대목으로 이어지며 전통의 호흡이 쌓였다. 사회자는 "요즘은 동편제와 서편제를 지역이 아니라 스승의 계보로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무대는 단순한 예술 행위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 지역과 예인이 시간을 이어가는 의식이었다.

소리에 맞춰 북을 치는 박준호 고수 공연중 소리에 맞춰 북을 치는 박준호 고수
▲소리에 맞춰 북을 치는 박준호 고수 공연중 소리에 맞춰 북을 치는 박준호 고수 김성훈

박준호 고수의 북은 음악이 아니라 관계의 언어였다. 그는 해남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해남이 그를 통해 전통의 현재형을 배웠다.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단순히 옛 기술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스승과 지역을 잇는 살아 있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오래 전 <해남우리신문> 해남논단에 쓴 글 '고수가 되어갑니다'에서도 드러난다.

"책상이 있는 거실은 내 마음속 여러 생각과 질문을 하는 공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해남논단 원고를 썼다. 맞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썼다."

그는 글 속에서 국악, 교육, 가정, 지역문화를 오가며 '고수'라는 단어의 삶의 의미를 되물었다.

"소리꾼이 소리를 잘 할 수 있게 돕는 고수의 역할처럼 우리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살펴보고, 서로 긴 호흡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해보자."

그에게 전통이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고, 전승이란 반복이 아니라 관계인 것이다.

이날 공연은 지역의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한국 문화 현장의 축소판이기도 했다. 중앙의 예술은 쉽게 기록되지만, 지방의 전승은 '공연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속에 있다. 지역 예인들은 한 해의 공연이 곧 생존의 증명이 된다.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곧, 잊히지 않기 위한 몸의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그는 "영동, 보성, 진도에는 군립국악단이 있다. 해남은 인구도 더 많고 전통도 깊다. 군립국악단이 생기면 출향 국악인들이 돌아오고 젊은 전공자들이 해남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해남에는 아직 무형유산 전수관이 없다.

"무형유산 전수관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해남의 전통이 보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실천'으로 남을 수 있다."

해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동군은 '국악의 고장'을 선언하고 군립국악단을 창단했으며, 보성은 전통차문화와 국악 교육을 결합한 프로그램으로 청년 예인을 육성 중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전국적으로 고르게 확산되지는 못했다. 많은 지역의 예인들이 여전히 "공모 사업의 운"에 기대 다음 해의 무대를 준비한다. 문화는 지역에서 태어나지만, 중앙의 제도 속에서 사라진다. 박준호의 발표회는 그 구조적 단절에 맞서는 하나의 문화 자치 선언문이었다.

그는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감각으로 전통을 새롭게 숨 쉬게 하는 교사다. 진도와 광주, 해남을 오가며 수업을 하는 그는 제자들에게 "북을 치는 건 옛날 방식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숨을 듣는 법"이라고 말한다. 전통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 세대가 자신을 찾는 언어라는 것이다.

공연 인사를 나누는 박준호 고수 공연 시작 전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박준호 고수
▲공연 인사를 나누는 박준호 고수 공연 시작 전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박준호 고수 김성훈

박준호에게 '지역에서 산다'는 것은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는 해남의 마을길과 아이들의 웃음, 어르신들의 박수 속에서 삶의 리듬을 찾는다. 제자들의 첫 북소리, 수업에서 북채를 처음 잡은 아이들의 얼굴이 그의 일기이자 기록이다. 그는 말한다.

"삶과 죽음, 그리고 가족이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되짚었다. 함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우리 대문 밖에서, 우리 마을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이 있기를 희망한다."

리모델링을 앞둔 해남문화원 무대 위에서 그의 북은 다시 울렸다. 그 소리는 스승이 남긴 시간의 울림이자, 제자가 이어가는 책임의 소리였다.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오래된 것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게 붙드는 일이다.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중앙의 조명을 외면하는 대신, 자신이 태어난 땅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도록 소리를 내는 일이다.

이날 해남의 한 고수가 울린 북소리는, 전국의 수많은 지방 예인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 전통이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속하려는 의지의 이름이다. 북소리로 시작된 그 의지가 오늘도 전국의 작은 마을 길을 돌아, 사라지지 않으려는 문화의 숨결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박준호 #판소리고법발표회 #해남군 #오마이뉴스 #김성훈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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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수료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소설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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