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명시 철산리 주공 아파트에서 살 때, 뒷산에서 찍은 남편 김병곤과 두 딸 희진, 은희. 두 딸이 아빠와 찍은 사진 중 유일하게 남은 사진이다.
민청련동지회
화장으로 감추고 건강한듯 연출
2011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념사업국장을 마지막으로 문숙은 기념사업회를 퇴직했다. 희진이도 대학원을 마치고 직장을 가졌고, 대학 마치고 무대디자인을 전공하겠다고 일본 유학을 택한 은희도 얼추 공부가 끝날 즈음이었다.
그랬는데 2012년 유방암이 재발했다. 그 사이에 얼마나 진행이 됐던지 암 덩이가 겉으로 만져질 정도였다. 주변 모르게 수술을 받고 치료는 방사선은 거부하고 항암제 투약만 선택했다.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은희가 있는 오사카로 가 모처럼 행복한 일본 여행을 즐겼다.
암 환자의 치료기간은 지난하다. 반강제로 휴식을 하게 된 문숙은 아이들과 제주 여행도 하고 하루 이틀 시간을 내 강원도, 전라도 숲속 길을 걷기도 하며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원래 산을 좋아하던 문숙이었다. 암 환자라고 그 성질이 어디 가겠나. 민간요법을 연구하는 틈틈이 파주 집에 온갖 열매로 효소를 담아 진열장을 빼곡이 채웠다.
2013년 9월 은희가 다시 귀국했을 때 문숙의 상태는 더 나빠 보였다.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가 다시 삐죽이 올라오고 있어 민청련 창립 30주년 기념식도 못 갔다. 11월에 은희가 다시 귀국해서 보니 9월에 볼 때랑은 상태가 완전히 달라져 말이 아니었다.
강남세브란스 병원 차트를 들고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진료기록을 훑어보던 의사가 면전에 대고 앞으로 3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벼락을 맞고 다시 강남세브란스로 돌아왔다. 도쿄에서 취업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던 은희도 모든 것을 접고 짐을 챙겨 들어왔다.
그해 12월 6일 나는 김병곤 기일에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서 문숙이를 만났다. 한 팔에 붕대를 맸는데, 그냥 팔을 조금 다쳤다고 말했다. 곱게 화장하고 가발을 쓴 덕분에 환자라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사람들과 평소처럼 웃고 농담하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사람들이 성한 문숙이를 본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연락 차단하고 홀로 임종
수술 후에도 통증은 심하고, 피부 밖으로 튀어나온 암 덩어리를 제거한 상처는 아물지를 않고. 세브란스 병원에선 늦었지만 최선을 다해보자고 하루씩 입원해 방사선치료를 시작했다. 그래도 문숙은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가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희진과 은희도 엄마가 죽을 것이란 건 상상도 안 했다.
조금 쉬고 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문숙은 필요한 곳만 연락하고 나머지는 차단했다. 통원 치료를 계속했으나 상태는 더욱 악화됐고 2014년 2월에 입원했을 땐 이미 암이 전신에 퍼져 있었다. 처음엔 6인실로 들어갔는데 편안히 눕지도 못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한쪽 절제한 곳도 아물지 않았는데 다른 쪽 피부도 안 좋아지면서 엄청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수시로 마약성 진통제를 맞았지만 통증은 덜어지지 않았다.
통증 때문에 눕지도 못하고 자세가 앞으로 쏟아져 편하게 앉아 있지도 못하고. 너무나 상태가 나빠 2인실로 옮겨 수혈을 받으면서 비로소 문숙이는 체념을 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던 엄마가 은희한테 주사약 선택을 의논하기도 하고 누구누구한테 돈을 부치라는 심부름도 시키기 시작했다.
자신을 돌보느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침대 곁을 지키고 있는 딸아이가 가엾고 미안해 문숙은 휠체어를 타고 복도에 나가 있으면서 은희더러 침대에서 편히 자라고 야단을 했다. 휠체어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 다리고 엉덩이고 짓무르고 욕창으로 성한 곳이 없는데. 그 지경이 됐는데도 저보고 침대에서 편히 자라고 야단을 하는 엄마한테 화가 나 은희는 밖으로 뛰쳐나가 희진이한테 당장 와서 엄마 간호하라고 악을 썼다고 한다.
거의 마지막. 1인실로 옮기고 나서 문숙은 은희에게 고모들한테 연락을 하라고 했다. 죽기 하루 전. 너무 기가 막혀 정신이 나간 채로 달려온 시누들에게 들릴 듯 말 듯 너무 미안해서 알리지 못했다고, 불행하지 않았다고, 죽은 오빠한테도 고맙다고 했다.
고모들이 간 뒤 은희한테 "자자" 그리고 누워 그대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2014년 4월 1일 만우절 밤이었다.
"아빠 때문에 주변에 너무 신세 져 자기까지는 그럴 수 없다고. 아마 엄마는 그래서 철저하게 숨겼을 거예요. 지금도 아빠 후원금 명단, 조의금 봉투까지 간직하고 있어요."

▲ 박문숙 추모일에 김병곤과 합장한 묘소를 다듬고 있는 민청련 동지들.
민청련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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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의 폭압에 저항하기 위해 1983년에 창립하여(초대 의장 김근태) 6월항쟁에 기여하고 1992년까지 활동한 민주화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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