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비엔티안 COPE 센터 불발탄 피해자들이 재활훈련을 거쳐 의족을 착용하기까지의 단계별 제작 방식이 소개돼 있다. 각 전시물에는 코이카(KOICA) 라오스 사무소와 봉사단이 공동으로 번역한 한글 안내판이 함께 설치돼 있다
코이카 라오스사무소
라오스 비엔티안의 COPE 센터 전시물에 한글 안내판이 설치됐다. 불발탄 피해자들의 삶과 재활 과정을 소개하는 이 안내문은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라오스 사무소 직원들과 YP 인턴, 봉사단이 두 달 동안 손수 번역하고 다듬은 결과물이다. 예산은 없었지만, 마음이 있었다. 번역 프로그램과 챗지피티가 넘어서지 못한 것은 단어가 아니라 '사람의 진심'이었다.
AI로는 번역할 수 없는 마음
시작은 단순했다. "COPE 센터에 한글 안내판이 있으면 좋겠다." 번역 프로그램과 챗지피티를 활용하면 쉽게 끝날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벽에 부딪혔다. 단순히 기술 용어를 옮기는 게 아니라, 일반 방문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야 했다.
예를 들어 'Not Just Legs!'라는 안내자료 제목은 처음엔 '다리만이 아니야!'라고 옮겼지만 너무 직설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작지만 큰 변화'로 바꿨다. 불발탄 피해자들이 의수·의족을 통해 다시 걸어가게 된다는 상징을 담았다. 또 Higher and Higher는 단순히 '더 높이'가 아니라 '더 높은 목표를 향해'로 번역해, 현지 인력 역량 강화를 표현했다.
단어 하나에도 사람의 삶과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번역보다 전달이 더 중요했다. 기계는 단어를 옮겼지만, 맥락과 감정을 번역하진 못했다. 퇴근 후 노트북 불빛 아래에서 원문을 함께 띄워놓고 문장을 다듬는 날이 이어졌다. 공병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코디, 보건 전공 코디, 한국어 전공 단원, YP 인턴들이 모여 단어 하나하나를 검토했다. 불발탄, 재활, 라오스 전통문화까지 아우르는 주제를 다루다 보니 용어 선택 하나에도 신중했다. 총 140여 개 설명문을 다듬는 동안, 다섯 차례 검수와 토론이 이어졌다.
"이해가 잘 되는가", "단어가 너무 딱딱하지 않은가"를 서로 확인하며 스크린 앞에서 밤늦게까지 의견을 나눴다. 잘못된 정보를 주는 건 설치하지 않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그 말이 이들의 원칙이 됐다.
이은진 YP는 "밤늦게까지 번역하고 교정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한국어로 설명된 안내문을 처음 봤을 때 뭉클했다"며 "우리의 작은 노력이 한국과 라오스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16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COPE 센터에서 열린 ‘K+HOPE’ 캠페인 현장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 직원과 봉사자, 참가자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코이카 라오스사무소
불발탄의 땅, 그 위에 피어난 한글
라오스는 세계에서 불발탄(UXO)이 가장 많이 남은 나라다. 베트남전 당시 투하된 2억7천만 발의 폭탄 중 8천만 발이 여전히 땅속에 묻혀 있다. 불발탄은 아이들의 발밑에서, 농부의 밭고랑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한다.
이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한국의 협력 성과를 전하기 위해 코이카는 16일(현지시간) COPE 센터에서 'K+HOPE' 캠페인을 열었다. 한글 안내판은 이날 처음 공개됐다. COPE는 불발탄 피해자의 재활을 지원하고 의수·의족 제작과 물리치료를 제공하는 전시·재활 복합기관이다(관련 기사 :
COPE가 지켜본 라오스의 현실… 불발탄은 지금도 터진다).
COPE 센터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인 방문객은 3만2천여 명, 2025년 8월까지 이미 1만6천여 명이 다녀갔다. 새로 설치된 한글 안내판은 한국인 방문객에게 라오스 불발탄 피해자의 현실과 한국의 협력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할 것이다.

▲16일 라오스에서 열린 ‘K+HOPE’ 캠페인 코이카는 2014년부터 2026년까지 약 1977만 달러(한화 약 270억 원)를 불발탄 제거와 피해자 지원에 투입하고 있다. 이는 UNDP 불발탄 분야 신탁기금 기준, 단일 공여국 중 최대 규모다. 또 2025년부터 2029년까지 ‘라오스 북부지역 불발탄 피해자 및 장애인을 위한 모바일 재활서비스 지원 사업’에 6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왼쪽부터 오성수 코이카 라오스 사무소장, 정영수 주라오스 대한민국 대사, 마르틴 테헤흐 UNDP 라오스 사무소장, 메타 티파웡 COPE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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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티파웡 COPE 센터장은 "우리는 여러 나라와 협력하지만, COPE 센터에 영어가 아닌 자국어 안내판을 설치한 건 한국이 처음이다"며 "한국인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한글 안내판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공감형 ODA'라는 의미를 지닌다. ODA 사업에는 큰 돈이 투입되지만, 때로는 숫자보다 마음이 더 큰 변화를 만든다.
이 사업을 이끈 장소명 코이카 라오스사무소 부소장은 "COPE를 찾는 한국인 방문객들이 이번 안내문을 통해 불발탄 피해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길 바란다"며 "이건 우리 모두의 마음이 담긴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COPE 센터와 코이카의 협력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어진 협력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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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불발탄 피해자들의 삶을 한글로... 예산 없이 만들어낸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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