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벽화를 그리는 두 사람
청년공동체 나루
그 과정은 고단했지만, 그만큼 뜻깊었습니다. 벽을 얻기 위해 건물주와 마주 앉을 때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었고, 주민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참사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한 환경미화가 아니라, '기억의 공간'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그해 우리는 네 벽에 그림을 남겼습니다. 청년과 청소년 열네 명이 함께 붓을 들었고, "봄이 오면 다시 모여 그리자"는 약속을 남기고 헤어졌습니다.
2015년 4월, 약속대로 청년들은 명주동에 모여 다섯 개 벽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후 2017년, 2018년, 그리고 2025년 11주기까지, 강릉에는 다섯 차례의 추모 벽화가 탄생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지워진 그림도 있지만, 여전히 남아 우리 곁을 지키는 벽화들도 있습니다.
<벽화에 새긴 말들>
2014년: 그럼에도 고개를 드는 희망
2015년: 잊지 않았다, 세월호 인양
2017년: 여기, 희망이 있다
2018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2025년: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 2018년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
청년공동체 나루
벽화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늘 디자인에 담긴 뜻을 나누고 편지를 읽으며 마음을 모았습니다. 청소년들의 참여가 많았는데, 붓을 쥔 손끝에서 그들이 느낀 분노와 실망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강릉에 사는 사람으로서 내가 세월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 질문이 우리를 이 자리까지 이끌었습니다.저는 기획자로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월호라는 이름 아래 모이고 연결되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 힘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동시에 우리 모두가 공유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 2017년 완성한 벽화
청년공동체 나루
기억의 불씨
2023년 봄, 강릉에 대형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경포대 인근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그때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맨 먼저 달려와 주셨습니다. 피해 가족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아이들과 함께 트라우마 회복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주셨습니다.
많은 벽화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그림 앞에 서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되살아납니다. 누군가를 돌보고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힘, 바로 그 힘이 연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어느새 4월은 제게 거울 같은 달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외쳤던 기억과 다짐을 잊지 않고 있는가?"를 묻는 시간입니다. 강릉에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그 질문 속에서 찾아가고 있습니다.

▲ 2025년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
청년공동체 나루
올해는 4·16재단 기억 프로젝트로 추모의 밤, 벽화 프로젝트, 그리고 사라진 벽화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9월에 다시 한 번 전시를 열었습니다. 사라진 벽화를 원화로 다시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그린 그림들과 나란히 걸어둡니다. 이 기억의 연결은 우리를 또 어떤 길로 이끌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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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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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새겨진 세월호참사 추모 벽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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