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다시 꺼낸 옷, 아들 덕분입니다

캐나다의 아버지와 한국의 아들, 세대를 넘어 다시 패션으로 이어지다

등록 2025.10.24 15:16수정 2025.10.2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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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현지 시각), 한국에 있는 아들한테서 페이스톡이 왔다. 거의 일주일에 서너 번은 통화를 하는데, 대부분 아들은 출퇴근길 승용차 안에서 통화를 건다. 유난히 얼굴빛도 밝고 목소리에도 생기가 돌았다.

"며칠 전에 가죽 점퍼 하나 샀어요."


그 말이 낯설게 들렸다. 요즘 세대에게 가죽 점퍼라니, 왠지 오래된 단어 같았다. 내 젊은 시절 한창 유행했던 옷이라 오히려 세월이 더 지난 패션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아들은 화면을 돌려 새로 산 옷을 보여줬다. 검정색 가죽이 은은한 광택을 내며 번쩍였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점퍼 하나로 아들의 인상이 한결 세련돼 보였다. 그때 옆에서 아내가 말했다.

"요즘 가죽 점퍼가 다시 유행이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장롱 속 깊이 걸려 있는 내 가죽 점퍼 한 벌이 떠올랐다.

옷장을 열었다

20년도 훌쩍 지난, 거의 새 옷처럼 남아 있는 가죽 점퍼였다. 그 시절 꽤 비싼 돈을 주고 샀지만, 몇 번 입지도 못한 채 유행이 지나버렸다. 몇 해 전 옷장을 정리하다가 한 번 꺼내 입어봤지만, 몸에 너무 몸에 너무 달라붙었다. 버릴까 하다가 비싸게 산 옷이라 아까운 마음에 결국 미련이 남아 다시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들과 통화하면서 가죽 점퍼를 입은 모습을 보니, 왠지 다시 꺼내 입고 싶어졌다.


"그래, 한 번 꺼내서 입어볼까."

옷장을 열고 오래된 가죽 점퍼를 조심스레 꺼냈다. 세월의 흔적이 조금 묻어 있었지만 형태도 색도 여전히 멀쩡했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입어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버리기엔 아깝고, 입기엔 용기가 필요한 옷'이라면 이번 겨울엔 그냥 입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지난 23일(현지 시각), 마침 아내의 여권을 찾으러 나가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가죽 점퍼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여권을 수령한 뒤 바로 옆 패스트푸드 점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 옷 어때?" 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나를 잠시 훑어보더니, "그냥… 괜찮아요" 명쾌하지 않은 대답이었지만, 그 속엔 여러 의미가 섞여 있었다. 그래서 "사진 한 장만 찍어줘 볼래?"라고 부탁했다.

 오랜만에 꺼낸 가죽점퍼를 입고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며 찍은 한 컷. 세월의 흔적이 묻은 옷이지만, 다시 입으니 낯설지 않았다
▲ 오랜만에 꺼낸 가죽점퍼를 입고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며 찍은 한 컷. 세월의 흔적이 묻은 옷이지만, 다시 입으니 낯설지 않았다 김종섭

사진 속 내 모습은 거울에서 본 그대로였다. 멋지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버리지 않고 입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내는 "옷장에 가죽 옷이 있는 걸 미리 알았으면 아들에게 한번 입어보라고 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아내의 그 말에는 '옷 상태가 좋아 아들이 입어도 손색없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독 가죽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내가 입고 있어서 더 눈에 띄었던 걸지도 모른다. 젊은 사람부터 중년, 나이 지긋한 이들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죽 점퍼를 소화하고 있었다.

결국 옷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다만 나이에 어울리게, 나답게 입는 게 중요할 뿐이다. 장롱 속에 묻혀 있던 가죽 점퍼 한 벌이 이렇게 다시 내 일상 속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올겨울엔 이 옷을 자주 입고 다녀야겠다. 그리고 다음에 아들이 캐나다에 오면 "이거, 아빠가 젊을 때 입던 옷인데 한번 입어볼래?" 하고 물어보고 싶다. 아빠의 옛날 옷이 아들의 눈에도 멋지게 보일지, 그 반응이 궁금하다.
#가족이야기 #캐나다일상 #패션에세이 #세대공감 #추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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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거주, 이민자의 삶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기록,다음'브런치'활동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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