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이면 감나무가 안부를 묻는다

감 수확을 위해 온 가족이 총출동 한 날... 벌써 10년째 연례행사네요

등록 2025.10.27 09:42수정 2025.10.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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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을 수확하는 날은 하늘이 더 파랗고 맑다. 저 빛깔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고운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아직은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보다 정확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잘 익은 감을 보고 감흥을 느꼈을까 구름조차 탐스럽게 열렸다. 작은 감 안에 한 해의 태양과 노을이 층층이 담겼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다 들어있다.

가을하늘 감나무 산에서 올려다 본 푸른 하늘
▲가을하늘 감나무 산에서 올려다 본 푸른 하늘 전둘진
감을 수확하는 손놀림 속에 땀방울이 맺히고 가을은 절정 속을 내달렸다. 깊어가는 계절에 누군가는 캠핑을, 낚시를, 단풍놀이를 간다지만 우리는 온 시댁 일가가 총출동해서 미로 같은 감나무 산에 서 있었다.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하늘이 달라질까. 일상 속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무심한 표정이었는데 잘 익은 볕 아래서 바라본 하늘은 인자한 얼굴이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지치지 말라며 구름과 구름 사이로 하트 모양 하늘을 보여주기도 했다. 쉬고 싶은 마음, 나들이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게으름과 귀찮음을 핑계로 일을 미뤘다면 마음은 더 불편할 게 뻔했다. 몸은 고되더라도 가족과 결실의 기쁨을 누리는 편이 나았다.

신이 난 햇살은 대지를 조명 비추듯 내리쬐고 빈 과일운반상자는 하나 둘 감으로 차기 시작했다. 낯선 벌레와 마주하고 비명을 지르는 나보다 더 놀란 풀벌레가 줄행랑을 쳤다. 고요하던 산이 북적북적해지자 단잠에 빠졌던 감나무도 깨어났다. 졸린 눈 비비는 나무와 박치기도 수십 번 했다.

대낮인데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별이 보였다. 감을 따다가 방심하면 감나무 표 미끄럼틀 타기는 덤이다. 노동 현장이 순식간에 스릴 넘치는 감나무 산 놀이동산으로 변했다. 밀린 일상과 소음은 잠시 묻어뒀다. 소원했던 친척과 근황을 주고받고 톡톡 튀는 농담으로 지친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다.

수확한 대봉감 한 해의 햇살과 바람, 비가 알차게 여문 대봉감
▲수확한 대봉감 한 해의 햇살과 바람, 비가 알차게 여문 대봉감 전둘진

매년 가을이면 마주하는 감나무 산은 30대에 처음 만났다. 10년을 보고 살았더니 낯선 감나무 산이 가족만큼 친근한 얼굴이 되었다. 매년 가을이면 안부를 묻는다. 무탈하게 지냈냐며, 한 해 동안 고생 많았다며.

감나무 팔에 매달린 묵직한 열매를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 많은 열매를 한 몸으로 다 품고 있다. 마음 하나 품고 사는 것도 힘든데 감나무는 열매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볕과 바람, 비를 골고루 나누며 품는다. 어떤 순간도 포기하지 않으나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에는 미련 없이 내려놓기도 한다.


황금 주말을, 짧은 가을을 노동으로 보낸 것만은 아니다. 감 수확은 올해도 최선을 다해 살아낸 감나무에 대한 경의이며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이자 가을 날 잊지 못할 일기이다.

"작은 아가, 이것 봐라. 빛깔이 얼마나 고우냐."


어머니 손에 들린 고운 주홍빛 전구를 바라보았다. 햇살 머금은 감은 감탄이 나올 만큼 곱고 탐스러웠다. 온 가족이 손을 보태니 빈 과일 운반 상자가 금세 붉게 찼다. 적당히 잘 여문 감은 우리의 밥이 되고 일찍 물러진 감은 짐승과 개미의 식량이 된다. 그마저도 되지 못한 감은 나무의 양분이 된다.

대봉감은 나무에 달려서도 떨어져서도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의 뱃속으로 땅속으로 들어가 양분이 되는 일에 스스럼이 없다. 감의 일생은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기도 한다.

오늘의 삶은 아직 푸릇한 감에 불과하다. 모진 비바람과 뙤약볕을 견디다 보면 햇살의 따뜻함과 빗물, 바람의 소중함도 깨우칠 것이다. 시월 바람 속에 하루가 묵묵하게 익어간다. 언젠가는 붉은 감처럼 삶에도 농익은 가을이 올 것이다. 쓴맛 짠맛 떫은 맛 매운맛 신맛이 어우러진 삶도 언젠가는 단맛으로 열릴 테니까.
덧붙이는 글 브런치스토리와 블로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감수확 #가을 #대봉감 #가족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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