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0월 29일, 보빈 씨는 오후 5시를 넘겨 이태원에 도착했다.
보빈
상민 : "지금 하는 이야기는 공개되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보빈 :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이런 느낌이에요. '나는 여기 놀러 갔다 온 사람인데 그 상황을 직접... 그 사건이 일어나기 두 시간 전에 있었던 사람이고 밀려드는 걸 직접 본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때 경찰은 3명밖에 없었고(안 보였고) 질서를 정리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여기 정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많이 화가 났고, 즐거워야 했던 핼러윈 파티가 어느 순간 망가지게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다.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나서는 안 됐다.'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긴 해요.
그리고 '나는 그 참사 직후에 임시 분향소에 가서 이야기를 했고 그림을 그렸고 많이 힘들긴 했지만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또 다른 사람들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리고 싶어서 외신 인터뷰를 하면서 거리낌없이 다 알려줬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는데 그게 아쉽다. 하지만 나는 알리는 걸 멈추지 않고 싶다. 지금은 일이 바빠서 깊게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 사람들이랑 같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또 이 사람들이 나한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상민 : "'이 사람들'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보빈 : "그러니까 이태원 참사 때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제가 이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눈물 흘리고 막... 그러니까 이제 슬퍼하지 말라고. 슬퍼하지 말라고. 마냥 슬퍼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 달라고 제가 앞으로 미는 것 같아요. 이렇게. 그래서 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상민 :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에 대해 언제 느끼게 되셨어요?"
보빈 : "글쎄요. 이태원에서 1년 뒤에 어떤 분을 만난 적 있어요. '저는 여기에서 돌아왔습니다. 제가 여기 있었어요' 하니까 저를 안아주시면서 '잘 돌아왔어요.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했어요.) 거기서 약간 힘을... 그래, 무사해서 난 다행이야. 난 다행이야. 그분 덕분에 힘을 얻게 된 것 같긴 해요. 나도 힘을 잃지 말아야겠다. 나만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유가족들도 그렇고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서 다른 분들도 힘을 내서 이렇게 알리려고 하는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러니까 나도 알려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이잖아요"
상민 : "참사 당일 겪은 일을 가족들하고는 어떻게 나누셨나요?"
보빈 : "그때 엄마한테 흥분하면서 이야기했어요. '엄마, 내가 여기 있었어. 진짜야. 여기 사람들 진짜 많이 몰렸어.' 그래서 옆으로 빠졌다고 이야기했고요. 발이 너무 아파서 집에 빨리 왔다고 하니까 '그래, 그게 너를 살린 것 같다' 하면서 가족들이 안심했어요. 천만다행이라고. 천운이라고. 그런데 저도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이잖아요. 한 3개월 동안 관련된 기사가 언급될 때마다 '엄마, 내가 저기에 있었다'고 말하면 엄마는 심각하게 그 광경을 다시 바라보고.
제가 스트레스 받고 살 찐 거는요. 사실 공공기관의 그 태도 때문이에요. 얼마 전에 소방대원분도 돌아가셨잖아요. 참사를 겪은 사람들은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 이름 뭐였죠? 이태원에서 사람들 몰렸을 때 집에 혼자 갔다는 그 사람. (
용산구청장) 맞아요. 그 사람 태도를 보니까 진짜 엄청 화가 나는 거예요. 나는 분명히 기억하는데, 사람들이 몰려서 엄청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그렇게 도망을 갔다고? 그러니까 너무 복장이 터지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 태도 때문에 한 3개월간은 화가 나고.
엄마는 저 보고 '야, 네가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어'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아니야. 엄마 내가 저기 갔다니까? 만약 신발이 괜찮았고 휘말렸으면 어떡할래?' 말이 안 통하겠구나 싶어서 많이 답답했어요.
나는 거기 상황에 있을 뻔했어요. 엄마가 안 알아줘요. 사람들이 저랑 1m 정도 떨어져 있었어요. 위에서부터 파도처럼 밀려오는 느낌 있잖아요. 그래서 여기 더 있으면 압박을 당하겠구나 빨리 벗어나야겠다고 하면서 트인 공간으로 나온 거예요. 그런데 그 길 따라서 사람들이 또 올라가요. 골목길로 계속 쭉. 아무도 통제하는 사람 없고. 신고할 걸 지금 와서 후회해요. 그런데 제가 신고한다고 달라지진 않을 거 같은 거예요. 그게 천추의 한이에요. 그 마음이 계속 들어요. 너무 너무 답답하죠."
상민 : "집에서 조금 아쉽게 느끼기도 하셨잖아요. 어떻게 반응하기를 기대하셨어요?"
보빈 : "'우리 딸 그래도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다. 그때 어땠니? 무슨 상황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엄마가 물어보지 않아요. 그런 게 별로 없으니까 너무 아쉬웠던 거예요. 저번에 이태원 추모하러 가서 어떤 단체분이 저를 안아주셨다고 그랬잖아요. 그 자리에서 정말 창피한 것도 모르고 오열했어요.
'괜찮아요.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계속해서 다행이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또 죄책감이 드는 거예요. 내가 더 행동했으면 어땠을까. 막을 수 있었을까. 저는 사람들이 위험에 처해 있거나 곤란해 보일 일 때 도움이 되고 싶은 그런 게 있거든요. 그런데 가끔 네가 도운다고 저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없었을 거라고 듣기도 해서 김이 새더라고요.
그리고 또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들을 보니까, 처음에는 '왜 이런 상황에 카메라를 꺼내서 찍지' 했어요. 그런데 찍을 수도 있지 않나? 왜냐하면 지금 상황을 기록에 남기지 않으면 나중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말이 바뀔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기록 남겨도 좋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비난하지 말고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은 평면적으로 보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두고 온 인형

▲ 보빈 씨가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추모 공간에 두고 온 인형
보빈
상민 : "(앨범을 넘기며) 이건 또 언제 가셨던 거예요?"
보빈 : "2022년 11월 16일. 지금 여기(이태원역 1번 출구)도 임시 분향소에요. 제가 찍었어요. 나는 이렇게 추모했다고. 이건 11월 5일. 참사 직후에 갔어요. 여기 인형 두고 갔어요. 제가 아끼던 인형인데 제 마음을 두고 온 거예요. 저랑 약간 동기화되었을 거 아니에요. 특이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제 일부 제 영혼을 두고 온 거니까 가는 길 많이 외롭지 않게..."
정원 : "어떤 물건을 두고 온 분들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보빈 : "그래도 제 마음이 거기 잘 닿아서 마음이 괜찮아졌어요. 그러고 나서 화가 나더라고요. 그 즐거웠던 핼러윈 파티가 망가졌어요. 자료 찾아보니까 정부가 진짜 나쁜 짓 저질렀네? 그때부터 알게 된 거예요. 직장을 코엑스에서 명동으로 옮긴 게 지난해 12월 3일이었어요. 화요일 저녁이었죠. 그때가 첫 출근이었어요. 시간이 지나서 대통령 잘못이 드러나다 보니까 그동안 살았던 설움이 있잖아요. 제가 조용히 분노하게 되는 거예요. 얼마나 마음속에 응어리가 졌어요."
상민 : "지난 겨울 집회에도 많이 나가셨어요?"
보빈 : "겨울에는 못 갔어요. 명동에서 일하니까 참 바쁘더라고요. 외국인들도 많이 오고 방한 용품이 많이 팔렸어요. 시위하는 방향이랑 가까워서 토요일 오후쯤이면 사람들이 지나가는 게 보여요. 정문 앞에 메인 매대가 있거든요? 사람들이 어지르면 제가 정리를 많이 해요. 그럴 때마다 깃발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어요. 모두 정말 잘 만들었어요. 멋지다 다들. 제가 직접 나가지는 못해도 SNS에 '저는 지금 일 때문에 못 나가지만 여러분들을 언제나 지지하니까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방한용품 같은 건 우리 매장에 많이 있으니까 들러주세요' 기재했어요.
세상이 그렇게 바뀌고 있구나. 사람들이 바꾸려 하고 있구나. 사고가 일어나도 쉬쉬할 게 아니라 상기하고 서로 아파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는 참석을 못하니까 거기서 또 죄책감도 들고. 제가 명동에서 일을 한다고 했잖아요. 나도 나가고 싶은데 나만 못 가니까 너무... 그냥 마음속으로 응원했어요. 그래도 되나? 그치 그래도 나는 내 방식대로 사람들한테 알리고 있다. 내가 지금 비록 일하고 있지만 나도 응원봉 흔들면서 시위하고 있는 거다.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는 거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진짜 진짜 참여하고 싶었어요."
상민 :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찾아 가면서 하셨네요."
보빈 : "외국 친구들이 저를 알고 있으니까 저를 통해 그런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한국에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서 SNS에 다 인용하고 했어요. 그 여파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된 거 같기도 하고. 제가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또 드네요. 도움이 됐을까요?"
보빈씨는 청각이 예민하다. 주4일 잡화점에서 근무하는 동안 작은 소리도 금세 알아챈다. 유리인지 플라스틱인지 들리는 방향을 따라 움직여 먼저 상황을 정리한다. 또한 보빈씨는 시야가 넓다. 매장에 출입하는 손님들을 살피다 적절히 응대하는 건 언제나 그의 몫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사고를 예방하는 일은 눈에 띄지 않는다. 발생한 문제를 매끄럽게 수습하는 일 역시 주목 받기 어렵다. 때문에 그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은 드문데, 내심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잠시, 보빈씨는 사심 없이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역할을 이어간다.
그래서일까. 그는 참사 이후 사회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주요한 책임을 지닌 사람은 책임을 회피하고 정작 어떻게든 책임을 지고자 애쓴 사람만이 자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그런 보빈씨의 마음은 오히려 과도하다 여겨지기 일쑤다. 나는 기록을 마무리하면서 그가 독백처럼 전한 말에 응답하고 싶다. 보빈씨는 분명 도움이 됐을 거라고.
한편, 여기에는 보빈씨의 위치도 작용한다. 그는 사건을 겪었지만 어쩐지 사건을 겪을 뻔한 사람으로서밖에 입을 열지 못한다. "나 참사에 대해 아는데!" 하고 다가올 때 보빈씨는 목격자가 된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간절하게 알리고자 했던 것들 중에서는 생존자로서의 감각 또한 있다. 그런데 그 역시 살아남았다고 강변하는 데 망설이게 된다. 보빈씨가 머물렀던 자리에 계속 남아 위험을 겪은 사람들이 있으므로. 더군다나 보빈씨의 진심을 일축하는 반응도 왕왕 보인다.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위로에 기대자니 심리적 장벽이 두텁다.
그러고 보면, 참사 피해에 대한 지원은 주로 개인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당신은 생존자입니까?" 같은 질문 앞에 서야만 하고, 그럴 때마다 몹시 난처해지는 입장이 있다. 나는 관점을 달리 하고 싶다. 인터뷰 중간 보빈씨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변과 어떻게 주고받아 왔는지 이야기한다. 사회는 '생존자'에게 어떻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까.
글 : 이상민
* 이 활동은 재단법인 숲과나눔의 2025 풀씨 사업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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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고민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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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 있었어요' 이태원 생존자의 고백, 그를 울린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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