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주기 추모대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재영 씨의 손
한재영
재영: "(3주기 때는) 추모제에 갈지, 이태원에 갈지 아직 생각을 안 해봤어요.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 이제 (숫자를 헤아리며) 하나, 둘, 세 번째니까 계속 해야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참사가 생각이 안 날 때 '나 이제 좀 괜찮나'라고 생각이 든다고 말씀드렸지만, 아예 잊거나 없던 일처럼 하고 싶지는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도리가 그 날을 기리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뭔가 해야겠다'는 있는데, 아직 그게 구체적으로 뭐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정원: "계속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되게 강하신 것 같아요. 사실 계속 기억하는 일 자체가 되게 괴로운 일일 수도 있는데, 재영님께서 그런 말씀을 당연하게 하시는 게 '어디서부터 비롯된 마음일까' 궁금해요."
재영: "그러게요. 이유를 표현을 하면… 참사 당시에 제가 도리를 못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마저 할 수 있는 방법은 '잊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저 외에 다른 더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유가족들이 제일 그렇고. 그분들한테 힘을 보태기 위해서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는데 우리가 다 까먹으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이게 사실 가닥가닥 뻗어 나가면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 사람들 힘을 다 합치면은 그래도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저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그게 뭔가 본능적으로 나오는 사람인 것 같아서, 일단 첫 번째는 기억하는 거라고 그냥 그렇게 아는 것 같아요. 그냥 너무 당연하게."
정원: "1주기 때 같이 시간을 보낸 친구들 중에는 그때 현장에 같이 가셨던 친구분도 계셨어요?"
재영: "독서 모임 할 때 책도 읽고 다큐멘터리도 같이 봤었는데, 추모제는 못 갔었던 것 같아요. 그쯤에 저랑 그 친구랑 그때 영상을 처음 봤거든요. 그전까지는 저희도 소식은 찾아볼 수 있어도 영상이나 사진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저는 그걸 보면서 '이제는 생각보다 괜찮은데?'라고 했는데 친구는 '너무 힘들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추모제는 친구가 아마 일부러 안 갔던 것 같아요. 추모제를 갔을 때 저도 그냥 앉아서 계속 울기만 했거든요, 있는 내내. 굉장히 힘들었던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한테는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참사 피해자에 대한 걱정과 선입견
재영: "그 일에 계속 죄책감 같은 걸 가지고 있다고 했었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그건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라고 말해줬어요. 그 말을 제가 스스로 체화하기 위해서는 (참사에 대해서) 남들한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꺼냈을 때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과만 앞으로 같이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아요."
민애: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마주하셨나요?"
재영: "사실 그런 건 아니긴 해요. 보통 다 깜짝 놀라고 아무 말도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제가 부러 그 이야기를 꺼냈던 상대들은 사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의 이런 부분까지 알고도 날 좋아해줘'라는 욕심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나 이런 일을 겪었었어' 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봐요."
민애: "그런 말을 했을 때 좋아하는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거예요?"
재영: "변하기보다는, 저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려나? 제가 넘겨짚는 거긴 한데, 사실 그런 큰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 하면 으레 볼 것 같은 시선들 있잖아요. 좀 조심스러워 한다거나 그런 게 생길까 봐. 그래서 이전의 관계 같지 않아질까 봐. 그걸 낙인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데, 이 이야기가 제가 생각해도 가볍지 않기 때문에, 다음에 또 저를 보면 '어, 얘 이태원에 있었던 애지' 라고 계속 생각하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민애: "'참사 생존 피해자야', 혹은 '힘들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선입견들인 거죠."
재영: "네. 제가 예전에 친구들에게 '10월이 되면 힘들다'라고 고백을 했는데, '안 그래도 10월만 되면 재영이 괜찮은지 걱정된다'라고 했을 때 너무 고마웠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10월 힘든 거 나만 힘들면 되는데, 괜히 너네까지 10월을 신경 쓰게 했나, 이런 생각도 했기 때문에, 좀 미안한 것도 있었고. 저는 힘든 걸 그렇게 내색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좀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아요."
정원: "다른 사람들이 이태원에서의 재영씨의 경험을 알게 되었을 때, 재영씨를 걱정하는 마음이나 선입견으로 이어지는 것을 신경 쓰시는 것이네요."
재영: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혼란이 아직 계속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내릴까 말까 고민하다 지금은 '계속 유지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기는 했는데, 막상 또 누군가랑 개인적으로 얘기하게 될 일이 있으면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될지 계속 생각할 것 같고요. 제가 말했던 '같이 슬퍼하고 싶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내가 슬퍼하고 싶다는 거고, 내 이야기에 누군가 슬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같아요."
과거에 대한 후회로부터, 변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정원: "참사 당시에 구조 활동을 하실 때 한 사람을 맡아서 CPR을 하는 상황에서, '내가 이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지 못했다'는 감정이 되게 크셨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소화하고 계세요?"
재영:"(참사 직후에는) 죄책감이라고 명명을 해 주신 게 딱 제가 생각하던 감정이었고, 그게 누군가의 생존 여부를 가른 잘못이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책임이 나한테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너무 힘들었고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해줬을 때 그걸 다 튕겨냈었던 것 같거든요. '그럼 누구 잘못이야?' 이렇게 되어 버리고. 제 스스로가 용서가 안 됐기 때문에 남들이 용서를 해준다고 제가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고, 그 당시에 연락 왔던 위로들을 다 아니꼽게 봤던 것 같아요. '너는 살아 돌아와서 행운이야'라는 말도 '그럼 그 사람들은 다 불운해서 죽은 거야?', '왜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지' 하면서 참 예민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없어진 건 아니지만 제 자신을 괴롭힐 정도의 죄책감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그 죄책감이란 게 과거에 묶여 있는, 과거에 대한 후회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후회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죄책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가려는 것 같아요. 그래서 1주기 때 제가 애써 이것저것 했던 게, 혼자 자책하기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점점 바뀌었던 것 같아요."
정원: "어떤 계기가 있을까요? 혹은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변했던 걸까요?"
재영: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좀 컸던 건, 한 1년 정도는 저 혼자 '내가 잘못했다', '진짜 내가 죽어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1주기 북토크에서 유가족 분들 처음 만났을 때 그분들이 '그렇게라도 애써 줘서 동생이나 딸이 그래도 편하게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얘기를 해주셨을 때였어요.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도 여전히 너무 미안하고, 이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조금 바뀐 것 같아요. 그 일로 아픈 사람들이 저한테 그렇게 얘기를 해 주니까 좀 용서받았다고 생각을 했나 봐요.
그리고 1주기 추모대회 갔을 때도 그 자리에 유가족들도 다 모이고, 어떤 것들을 원하고 어떤 식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되는지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보고 나니까 '이거에 더 힘을 쓰는 걸 이 사람들도 원하는구나, 그러면 그때 세상을 떠난 분들도 이런 걸 원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아직 나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닿는다면

▲ 1주기 추모대회 때 재영씨가 남긴 포스트잇
한재영
민애: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접하게 되시는 분들한테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혹은 이 인터뷰를 응하게 되었던 기반에 있던 생각이라도 좋을 것 같아요."
재영 :"사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 중 외부로 드러난 것이 많이 없잖아요. 제가 거기서 본 사람이 몇 명인데. 그 사람들이 나오기 힘든 것도 분명히 알고, 저도 그 마음이 이해가 돼요. 근데 사실 이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이 아닌데… 그래도 제가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 이야기를 듣고 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마음이 좀 있었어요. 제 인터뷰가 너무 개인적이지 않았나라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참사에 얽힌 그런 개인적인 경험들이 엄청 많이 있을 건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듣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희생자분들의 마지막 모습을 봤던 사람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면, 제 이야기가 그분들을 잘 배웅할 수 있는 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인터뷰가 꼭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는 있더라도,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 쌓여서 나중에는 큰 의미로 남게 되면 좋겠습니다."
재영씨는 블로그 글 말미에 이렇게 썼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합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을 힘이 된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우리가 똑바로 다시 이태원을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그 말과 같이, 아직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참사를 경험한 개개인의 삶이 기어코 빛을 낼 수 있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빛이 머지않아 또다른 누군가의 삶에 가닿기를. 그날의 일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그리고 계속 기억하고자 하는 재영씨의 단단한 마음을 전해 받는다. 사람과 사람을 건너 그 기억의 물결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 재영 씨는 1주기 때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포스트잇에 '마주하겠습니다, 살아가겠습니다'라고 썼다.
박정원
글 : 박정원
* 이 활동은 재단법인 숲과나눔의 2025 풀씨 사업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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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고민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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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편히 갔을 거예요" 이태원 생존자가 스스로를 용서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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