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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엄마랑 100km 떨어져 사는 딸이 핸드폰에 꼭 까는 앱

걷기 힘든 엄마에겐 행정복지센터도 천 리 길... 택시앱 이용해 이동을 도울 수 있어 다행

등록 2025.10.30 13:19수정 2025.10.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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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링 띠리리링.'

근무시간에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는 건,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닌 거다. 몸이 불편하신 아빠가 아프시거나, 생각지 못한 일이 생겨 급하게 나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청 기한이 10월 31일까지인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신청하러 은행에 가신다던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내 주민등록증 못 봤어?"
"엄마 거? 난 못 봤는데."

부모님이 연로해지면서 병원을 가시거나, 공적인 업무를 처리할 때 내가 동행해서 가는 일이 많다보니, 부모님의 주민등록증을 내가 지니고 일을 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급한 마음에 엄마는 집에서 100km 떨어진 서울에 사는 나에게 주민등록증 행방을 묻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에 주민등록증을 본 것이 마지막이라는 기억과 함께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거다. 엄마는 운전면허증도 없고, 여권은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이 벌써 오래전이라 기한이 만료돼서 신분증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주민등록증이 유일하다. 그것이 사라졌으니 엄마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80세 엄마는 8살 어린 아이가 된다.

주민등록증 잃어버려 당황한 80세 엄마

"일단 집에 가서 찾아봐. 없으면 다시 신청하면 돼."
"소비쿠폰 이번 주까지 신청해야 되는데 어쩐대."


신청 기한은 아직 며칠 남았다. 그 사이 방법이 있겠지. 이제는 내가 움직여야할 나의 시간이다. 마지막 기억 이후 주민등록증이 있을 만한 곳에 전화를 걸어 분실물을 습득한 게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일단 정형외과, 한의원. 간 곳이 두 곳뿐이라 다행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없단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 행정복지센터로 전화를 걸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생각보다 절차는 간단했다. 일단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신청해서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은 2~3주에 수령하고, 즉시 발급이 가능한 임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30일간 임시로 사용하면 된다.


 나는 부모님과 100km 떨어진 곳에 있지만 엄마의 장거리 외출에는 엄마의 발이 되어주는 택시를 앱으로 부른다.
나는 부모님과 100km 떨어진 곳에 있지만 엄마의 장거리 외출에는 엄마의 발이 되어주는 택시를 앱으로 부른다. Pixabay

엄마가 60대만 됐어도 바로 집 밖을 걸어 나가 해결할 간단한 문제이건만, 아직 커다란 난관이 남아있다. 걸으면 다리며, 허리며 여기 저기 아프다는 엄마는 가까운 거리는 쉬엄쉬엄 갈 수 있어도 성인 걸음으로 10~15분이 걸리는 행정복지센터까지 가는 길이 구만리다. 엄마가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거리다. 나이가 80세가 되면 쉬이 되는 일이 없는가 보다.

나는 웬만해서 택시를 타지 않지만, 내 핸드폰에는 택시앱이 꼭 깔려 있다. 요샌 길에서 택시를 잡는 것이 워낙 어려워, 엄마가 외출할 때마다 앱을 이용해 택시를 부른다. 100km 떨어진 곳에서 엄마가 계신 집 앞으로 택시를 호출하고, 택시비도 내가 지불할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세상인가.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좀 멀다 하는 거리는 택시를 부른다. 이날은 엄마도 놀란 마음에 안 되겠다 싶은지, 택시비로 1만 원 쓰고 소비쿠폰 10만 원 받으면 더 이익이라는 내 논리에 수긍한 것인지, 별 말이 없이 택시를 타겠단다.

"엄마, 택시는 OOOO 번호를 타면 되고,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증 분실했다고 재발급 신청하고, 임시 주민등록증도 받아오고, 소비쿠폰도 신청하면 돼, 알았지?"

나의 마음도 함께 타고 있는 택시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하나하나 짚어주며, 엄마가 해야할 일을 다시 일러준다. 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더니, 손가락을 꼽으며 아이에게 할 일을 알려주는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걸까?

엄마가 탄 택시가 가는 길을 눈으로 쫓으며, 노선도의 길을 따라가는 나의 마음이 왠지 짠하다. 엄마와 동행하고 있는 기분도 들면서, 별 탈 없이 일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나도 택시와 함께 달리고 있다.

'동사무소 가서 잘 하겠지?'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다시 잡아주기 위해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이 조금 심란하다. 다행히 일은 일사천리로 끝나고, 엄마는 운이 좋게도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타셨다고 전화가 왔다. 이제 한시름이 놓인다.

"근데, 나 왜 긴장하고 있었던 거지? 엄마 혼자도 잘하는데."

난 기술이 발전하는 것만이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날로그적 인간이지만, 멀리서도 엄마를 위해 택시를 부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감탄한다. 그 택시에는 엄마의 안위와 평안을 바라는 나의 마음도 함께 타고 있다. 다음에도 또 택시 불러야지. 그때도 버스를 타겠다는 엄마와의 언쟁은 이어질 테지만.
#엄마 #주민등록증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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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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