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이후 진행된 추모 공연에서 션 씨가 읽은 글
션
사회가 놓친 발화의 골든타임 뒤로
상민: 통일될 수 없이 다양한 경험이라면 공감은 불가능한 거 아닐까요?
션: 공감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건 믿고 있거든요. 누구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를 원치는 않을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그 마음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런 일들을 다 겪고 나서 딱 한 생각밖에 없거든요. '내 친구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까지만이라도 갔으면 좋겠어요,
상민: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기억이 서로에게 있는 거잖아요. 그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션: 잔인한 말이지만 혼자서 해결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적어도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왜 무리를 지어서 사회를 만들어요. 비록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개인적인 슬픔이 있겠지만, 낭떠러지에 있다면 팔 한 쪽 내어줄 수 있고 늪에 빠진 것 같다면 다리 한 쪽 내어줄 수 있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정부가 폭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생존자들이나 유가족들을 돌보는 측면에서요.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면 같이 울 수도 있고. 그냥 발산하듯이 자기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런 사회적 활동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못 찾았던 걸 수도 있겠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
상민: 지금은 어때요? 만약 그런 자리가 생기면 나가 보고 싶을 것 같으세요?
션: 너무 멀리 온 것 같아요. 말을 타다 떨어지면 바로 다시 말을 타야지 낙마한 채로 있으면 무서워서 말을 계속 못 탄대요. 직후에 해결해야 하는 감정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너무 많은 것들이 얽히고설켜서 덩어리가 되었어요. 내밀한 것들이 많이 쌓였어요.
상민: 그날로 다 끝난 게 아니니까요. '생존자'라는 말은 어떻게 느껴지세요?
션: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한 번씩 해봤을 질문인 것 같아요. 나는 생존자인가? 비행기가 추락해서 몇 십 명이 죽었는데 몇 명 살아남았다든지 그럴 때 생존자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생존자라고 칭할 만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생존자라고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자기한테 과분한 호칭인 것 같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맞거든요. 저는 그 당시에 거기 있었고 저랑 같은 시각에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 중에 죽으신 분들도 있을 거고 제가 거기서 살아남았다는 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생존자라는 단어에 담긴 사회적 맥락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생존이란 단어 자체의 뜻으로 보면 맞는 것 같아요.
상민: 션 씨가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피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션: 무형의 것이에요. 제가 물질적으로 잃은 건 없거든요. 그런데 정신과 약을 증량했고 관계적인 트러블도 있었고 광장 공포증이 생겼고. 할 수 없게 된 것들도 많죠. 눈에 보이지 않아요. 제가 내밀한 이야기라고 한 것 중 하나가 그 당시 애인 때문이에요. 많이 싸웠어요. 제일 가까운 사람인데 이해를 못 해 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이태원 때문에 일어난 일인가 하면 어려운 거예요. 내가 오버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성격적인 변화 때문에 옛날처럼 친구들을 못 대한 시기가 있었죠.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런 느낌이라서. 확실한 건 어느 정도 걸쳐져 있는 사건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완전히 이태원 탓을 할 수는 없는 일들이에요. 분명 저의 잘못도 있고 다른 환경 잘못도 있겠죠.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자꾸 참사가 있는 거예요.
상민: 그날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할 때, '그날 거기'란 언제 어디를 의미하는 걸까요?
션: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 같아요. 이런 애매함 때문에 주춤하게 되는 거죠. 아예 확실히 구분을 해 주면 나을 텐데.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많았잖아요. 그 행렬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수사하는 분들이 집계한 게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거기 있었던 사람은 그걸 육안으로 가늠할 수가 없어서 교차 검증이 안 되니까 너무 말하기 힘든 것 같아요.
이후의 날들을 함께 감당할 수 있어야
상민: 참사 이후 달라진 일상이 있는지 여쭙고 싶어요.
션: 지금 기억났는데 제가 영화관을 되게 좋아했거든요. 2시간 동안 그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도피처처럼 느꼈어요. 그래서 이태원을 겪고 나서 일부러 영화를 더 많이 보러 갔어요. 그런데 이야기 속에 못 들어가겠는 거예요. 참사를 기점으로 좋아했던 것들을 많이 잃었어요. 그때 이후로 모든 것에 망설여지게 된 것 같아요.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겠어요.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까 봐.
상민: 최근에 소방대원의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잖아요. 접하고 어떠셨어요?
션: 사실 엄청 힘들지 않았어요. 마음은 아픈데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소방대원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계실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번에 가시화된 것뿐이지. 힘드셨겠구나. 많이 힘드셨겠구나.
상민: 참사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다는 간극이 느껴져요.
션: 그 기억을 지워 버리거나 혹은 그때 거기 없었던 사람이고 싶어요.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에요. 제가 믿는 건 주변인들의 도움이에요.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건 나도 그랬어라는 다른 사람의 한마디일 수도 있고, 지나가다 만난 이태원 부스일 수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나씩 쌓이다 보면 많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요.
상민: 피해자 인정 신청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시나요?
션: 알고는 있는데 섣불리 못하겠는 게 5·18 유공자처럼 될까 봐요. 광주 사람들은 광주 사람이라는 걸 숨겨요. "그렇게 떳떳하면 5·18 유공자 명단 공개하면 될 일이잖아" 이러면서 정신적으로 힘들게 해요. 그런데 만약 제가 이태원 피해자라고 인정이 됐어요. 그래서 지원을 받으려고 하면 너네 놀러 가서 멀쩡히 살아 돌아왔는데 무슨 자격이 있다고 돈 받으려고 하냐 그럴까 봐요. 저는 그게 피곤해요. 그냥 안 받고 안 하려고요. 그럴 때마다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또 해야 하는데, 저는 그것도 싫어요.
상민: 내 경험에 대해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우선 필요해 보이네요.
션: 친구랑 이야기하면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공개적으로 말을 하는 자리가 있으면 저는 조금 더 각오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한테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상민: 이번 3주기 추모 공연이 끝나고는 어떠실지도 궁금합니다.
션: 반점이 됐든 온점이 됐든 잘 찍고 넘어가고 싶어요. 그래야지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아요. 사회적인 의례들 있잖아요. 결혼식, 장례식 아니면 역할 놀이를 하는 것 같은 행사들을 옛날에는 왜 하는지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느슨한 연극 속에 자신을 던져 놓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있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상민: 그러네요. 연극에는 이야기의 끝이라는 게 존재하잖아요.
션: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연극단을 꾸려서 순회 공연을 한 게 '장기자랑'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그걸 보면서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준비하는 과정은 지난하겠지만 무대 위에서 뭔가 하잖아요. 연극이라고 하면 대사를 뱉을 거고 결혼식이라고 하면 성혼 선언문 같은 거를 읽을 거고. 그런 행위를 함으로써 뭔가 바뀌더라고요. 그렇게 전환점이 필요한 일이 있는데 사회적으로 전환점을 만들어 주지 않으니까... 세션분들한테는 제가 울든 노래를 못하든 절대 연주를 멈추지 말아 달라고 할 예정이에요.
션 씨의 기록은 그가 참여하는 3주기 추모 공연이 끝난 뒤 발행된다. 그는 어떻게 공연을 마쳤을까. 마침내 코스튬을 버릴 수 있었을까. 나는 모른다. 다만, 상상해 볼 뿐이다. 참사 이후 누군가의 삶에 대해 떠올릴 때도 다르지 않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 있었던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지금 이 순간 각자 나름대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참사를 둘러싼 경험은 그렇게 분화되어 왔다. 그렇다면 서두에 던진 질문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과연 그 차이를 어떻게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션 씨와 나는 '멍석'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후에 홀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짊어져야 하는 무게를 견딜 만한 것으로 바꿔줄 수 있는 멍석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런 자리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발화를 돕는 인터뷰 작업이 될 수도 있고, 말없이 마음을 보태는 추모 공연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생존자'라는 집단이 단일하지 않은 만큼 다층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션 씨의 이야기 속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그런가 하면, 참사 직후 골든타임을 이미 한 번 놓쳤다는 안타까움도 있다. 기억은 늘 상대적이라 오롯이 혼자 재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서로가 무엇을 겪었는지 폭넓게 맞대는 가운데서 모종의 후회와 죄책감도 걷어 낼 수 있다. 스스로의 기억 또한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한 프로그램이 드물 뿐더러 사회적 지지보다 비난이 훨씬 거셌던 게 지난 삼 년의 시간이다. 물론 지극히 사적인 관계망에 기댈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은 경우 고립은 심화된다. 참사는 개별 삶 속에서 끊임없이 파생되고 그나마 연결을 가능케 했던 공통분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편, 기록에 전부 담지 못했지만 션 씨는 두 팀의 밴드에서 활동하며 상호보완적으로 힘을 얻는다. 이때, 음악적인 자아 역시 그를 살게 하는 중요한 축이다. "살자" "살자" 나는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어디론가 나아가는 션 씨를 그리면서 참사를 깊이 이해해 본다.
글 : 이상민
* 기사를 검토하며 션 씨는 추모 공연 영상을 보내 왔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 활동은 재단법인 숲과나눔의 2025 풀씨 사업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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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고민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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