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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의 코스튬과 그날의 기억

[누군가의 생존법 ③] 이상민 씨가 들은 션 씨의 이야기

등록 2025.11.03 09:07수정 2025.11.0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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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랜턴'은 10·29 이태원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이후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그 가운데서 느낀 삶의 변화와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폭넓게 듣고 싶습니다. 저희는 그 모든 과정을 '생존'으로 이야기함으로써 10·29 이태원 참사를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경험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션 씨는 그날 이후 옷장 속에 넣어 둔 핼러윈 코스튬을 꺼내 보기로 했다.
션 씨는 그날 이후 옷장 속에 넣어 둔 핼러윈 코스튬을 꺼내 보기로 했다. 박정원

션 씨는 노래를 부르고 키보드와 드럼을 연주하고 직접 가사를 쓴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혹시 그날 어디에 계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션 씨와 처음 연결되었을 때, 나는 수화기 너머로 그에게 물었다. 이윽고 그가 방문했던 클럽의 상호명을 듣고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곳에 가 본 적 있으므로. 해밀톤 호텔 옆 경사진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그 입구가 보인다.

"현장 가까이 계셨군요." 어떤 조심성이었을까. 내가 션 씨의 경험을 완곡하게 표현하자 그는 단호하게 정정했다. "아니요. 현장에 있었던 거죠." 아차. 그렇게 인터뷰 약속을 잡고 나는 그 말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분명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생존자'라고 쉽게 묶이지만, 그 혼란한 가운데서 서로 얼마나 다른 기억을 가지는지 의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차이를 어떻게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여기에 더해 참사는 개인의 삶과 뒤섞이기 마련이다. 지나온 시간 위에 놓여 해석되고, 그날 이후 겪은 무수한 사건에 간섭한다. 션 씨의 이야기는 현대사를 가로지른다. 광주와 홍콩과 세월호와 이태원이 실타래처럼 엮여 그를 관통한다.

기록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션 씨의 라이브 영상을 재생했다. 그가 참사 이후 남긴 메모를 바탕으로 가사를 쓴 곡이다. 그는 그 곡의 제목을 '천사를 위한 응급처치 책'이라고 지었다. 누구든 아끼는 사람을 떠나보내면 망자가 천국에 가기를 바라지 않겠냐고. 그런데 천국에 간 천사들이 너무 아파 보여 응급처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고. 그렇게 그는 응급처치가 될 만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

노래의 후반부에 이르자 션 씨는 절규하듯 부른다. "살자" "살자" 반복되는 그 외침은 다른 누군가를 향하기 앞서 자기 자신을 향한다. 그런 다짐과 바람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온 게 참사 이후의 날들이다. 현장에서 생존한 그는 여전히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옷장 속의 코스튬과 그날의 기억

상민: 먼저 전화로 이야기 나눈 뒤 꽤 시간이 지났네요. 그동안 어떻게 보내셨어요?


션: 그래도 일상을 살아야 하니까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혼자 있을 때 많이 힘들기도 했는데 약 잘 먹고 하면서 그냥 평소랑 다름없이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상민: 생각이 났다는 건 어떤 기억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날의 기억들?


션: 그날의 기억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파생된 일들이 있잖아요. 3년이나 지났으니까. 여러 가지 일들이 꼬리를 물면서 후회하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그런 감정들이 덩어리처럼 뭉쳐져서 복합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상민: 션 씨의 경우 다른 인터뷰이인 현민 씨를 통해 연결이 되셨죠.

션: 현민이가 제 친구예요. 현민이도 그 참사를 통해서 지인을 잃었던 경험이 있으니까 제가 말을 했거든요. 나도 거기 있었다고. 그러다 현민이가 3주기 추모 공연을 해 보자고 했어요. 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일 것 같다고. 그리고 호박랜턴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어요. "인터뷰도 한번 해 보는 게 어때?" 그래서 바로 문자를 드렸어요.

상민: 추모 공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어떠셨어요?

션: 처음에는 반반이었어요. '할 수 있나'랑 '해야겠다'. 진짜 사소한 이유 때문에 하게 됐는데 22년 10월 29일 입었던 게 강시 옷이었거든요. 어쩌다 보니까 그 옷을 계속 못 버렸어요. 처음에는 한 번밖에 안 입었으니까 반품하려고 했는데 너무 죄송한 거예요. 반품하면 또 누군가 이걸 입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버리자니 그 옷을 다시 집어야 하고. 그래서 다음 날 포장해서 옷장 깊숙한 곳에 넣었어요. 그런데 내가 이 옷을 입고 공연한다면 드디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고 싶다고 했어요.

상민: 셋 리스트도 많이 신경 쓰고 계실 것 같아요.

션: 부르고 싶은 노래가 두 곡 있어요. 한 곡은 '천사를 위한 응급처치 책'인데, 그 노래 가사가 참사 이후에 쓴 메모들을 바탕으로 쓴 거예요. 다른 곡은 다른 맥락에서 쓰였지만 어쨌든 모두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에요.

상민 '할 수 있나'와 '해야겠다'를 오간 이유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션: 참사 이후에 광장 공포증이 생겼어요. 그래서 탄핵 시위도 적극적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여의도나 광화문에 가면 사람들이 되게 많잖아요. 숨이 막히더라고요. 그리고 광장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목소리도 꽤 있었잖아요. 그런 일을 마주하는 게 가능할까? 머리로는 그냥 하면 되지 싶지만 막상 그 상황에 던져져 있으면 내가 힘들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게 '할 수 있나'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상민: 동시에 '해야겠다'라고 생각하신 이유는요?

션: 참사 때 일행이 8~9명 됐어요. 저는 그 당시 애인이랑 먼저 빠져나왔는데 나머지 일행은 계속 거기 있었단 말이죠. 군대 갔다 온 형들은 CPR도 하고 그랬는데 3년이 지나도록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조금 더 개인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제가 광주 출신이거든요. 작은아버지가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가셨대요. 그런데 눈앞에서 친구가 찔려 죽는 걸 보고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쳐 산 속에서 한 2주간 있었대요. 그러고 나서 광주를 아예 떠났대요. 아직까지도 광주에 돌아오지 않고 계세요.

저는 맥락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이태원 참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사람이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 비해 너무나도 적잖아요.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고. 계속 기억되고 해결되려면 목소리가 필요한데 보탤 수 있는 거라면 보태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상민: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거나 아예 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은 뭘까요?

션: 저는 그 마음에 대해 확실히 알 것 같아요. 아파서 그래요. 저는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냥 힘들었던 일 중 하나로 덮어버리거나 바라보지 않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적어도 1년 반 전의 저였으면 이 인터뷰도 못했을 거예요.

 2022년 10월 29일 션 씨는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일행들과 이태원을 방문했다.
2022년 10월 29일 션 씨는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일행들과 이태원을 방문했다.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갈 때 가능한 일들

상민: 그럼 지금은 어떻게 가능해졌다고 느끼세요?

션: 아까 그 노래 덕분인 것 같아요. 가끔 그럴 때가 있더라고요. 이태원에서 공연할 때 혹은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노래를 부르면서 참사에 대해 말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구나 느꼈던 것 같아요. 한 발짝 나아가는 게 어렵지 다음 스텝은 쉽게 밟을 수 있더라고요.

상민: '천사를 위한 응급처치 책'을 완성하고 나서 첫 공연은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션: 다행인지 불행인지 첫 공연 때 이 곡을 망쳤어요. 제 의지로 망친 게 아니고 멤버들이 술을 많이 먹고 올라와서 개자식들이. 막 쳐야 할 때 안 치고, 드럼 놓치고. 진짜 난리가 났었는데, 그래서 그 빡침이 힘든 감정들을 덮어버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또 다행일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상민: 3주기 추모 공연만큼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자리에서 공연한 적은 없으세요?

션: 광장에서는 못할 것 같아요. 뻥 뚫린 공간에 사람이 차 있는 그런 장소를 아직 잘 못 가겠어요.

상민: 공연장은 밀폐된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광장과 어떻게 다른가요?

션: 참사 직후에는 공연장도 못 갔어요. 한 번은 제가 되게 좋아하는 밴드의 복귀 공연이 있었는데 매진이었어요. 매진이니까 사람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그 밴드가 시끄러운 음악을 하는 밴드라 힘들 것 같아서 안 갔는데, 제가 하는 음악은 매진이 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공연장에 있어도 빽빽하다 느낀 적이 드물단 말이에요. 또 하루 이틀 그런 공연을 하다 보니까 조금 더 사람이 차도 할 수 있게 되고 공연장을 안전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광장은 같은 뜻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모인 게 아니잖아요. 확성기에 대고 혐오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고 공권력과 대치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일어날 것 같아서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서로 다른 경험을 저울질 할 수밖에 없는

상민: 인터뷰 시작하면서 후회에 대해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션: 첫 번째 후회는 '가지 말 걸'이겠죠. 가지 말 걸. 핼러윈 파티를 즐겨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참사 당일 이태원에 같이 갔던 일행들과 20년에 하우스 파티를 한 적 있어요. 그때 우리끼리 분장하는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저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못 나갔으니까 이번에는 나가 보자고 홍대랑 이태원 투표를 했어요. 제가 이태원을 찍었단 말이에요. 그때 그냥 홍대를 찍었더라면... 그런 생각이 있어요.

상민: 그리고 죄책감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션: 그 당시 그 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정확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어요. 동선이 어떻게 되냐면... (지도를 볼까요?) 네. 아마 밤 11시 10분쯤이었던 것 같아요. A펍 옆에 엄청 긴 계단 있잖아요. 거기 앉아 있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무 데나 들어가자 해서 갔던 게 B클럽이었어요. A펍에서 B클럽까지 가는 데에도 꽤 걸렸어요. 그리고 B클럽에서는 답답하고 힘든 거예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서 나왔는데 그 당시 제가 인지하고 있었던 정보는 '이태원에 마약이 엄청 퍼지고 있다.' SNS에 엄청 돌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 모든 난리가 마약 때문인가? 이게 무슨 상황이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저는 그 당시 애인을 지키느라 거기 정신이 팔린 상태였어요.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사실 모르겠어요. 그냥 그 거리에 내리막길 있잖아요. 그것들 중에 하나로 떠밀려 내려오다시피 했는데, 소방대원들이 인파를 헤치면서 들어오고 사람들이 막 쓰려져 있었단 말이죠. 마약한 사람들인가 싶었어요. 뭐가 잘못된 줄도 모르고 나만 살기 급급해 가지고... 그게 죄책감으로 남았던 것 같아요. 그냥 몇 년 동안 회피했어요. 이제 와서 말하는 게 너무 늦지 않았나 그런 죄책감도 있죠.

상민: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잖아요. 바로 사태 파악을 하는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운이 좋다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제가 엄청 큰 키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보였단 말이에요. 내가 이렇게 흐름을 타면 되겠다, 저기 빠져나갈 구멍이 있겠다. 그래서 저는 막차 타고 집에 왔어요.

당시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나 봐요. SNS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막 써서 올리고 그랬어요. 그리고 저도 SNS를 보고 일행인 형들이 어떤 상황을 겪었는지 알게 됐어요. 새벽 2시 반쯤에 엄청 복합적인 감정이었어요. 사실 저는 CPR까지 했으면 이 자리에 못 나왔을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그 형들은 CPR을 해서 심장 박동을 느끼고 소리를 엄청 질러서 소방대원한테 인계하고 자기가 CPR하던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까지 듣고 그런 경험을 했으니까…

제가 만약 그걸 겪었으면 많이 망가졌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겪지 않았으니까 안도해야 하나? 누가 밀었는지 넘어졌는지 도미노처럼 된 적도 되게 많았거든요. 그러다 한 번 크게 넘어지기도 했어요. 반지하 정도 노출된 가게 계단으로 굴러서 입간판에 박을 뻔한 거예요. 그래서 자꾸 비교하게 되는 거죠. 나의 고통의 무게와 그 형들이 겪었을 혹은 그 형들뿐만 아니라 더 충격적인 것들을 봤던 사람들의 무게를요. 이렇게 말을 하는 게 되게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냥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할지 몰랐어요.

상민: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비교를 하면 끝이 없기도 하잖아요.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션: 저의 기준에서 보자면 뻔뻔한 거죠. 말을 하니까 그래도 후련하긴 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 못한 분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이겨내는 사람일지 모르죠. 저는 그게 혼자 해결이 안 돼서 노래를 만들고 공연을 올리고. 해소의 기분을 느끼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거 자체도 죄책감이에요.

상민: 노래로 푸시기도 했지만 이야기 나눠 보신 적도 있으세요?

션: 있어요. 있는데 진짜 소수의 사람들. 제가 어떤 말을 해도 이해해 주고 어디 가서 퍼뜨리지 않을 사람들한테만 했죠. 그냥 엉엉 울었다가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몇 마디 못하고 그냥 울고.

상민: 인터뷰 하는 동안만큼은 션 씨에게 많이 집중했으면 좋겠네요.

션: 해소되기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요. 완벽하게 이해해 줄 사람도 없고, 사실 참사의 기억도 다 달라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그 당시 애인이 만취해 있었어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여서 제가 거의 운반하다시피 안고 갔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사람이지만 이야기를 못 했어요.

그런 일이 계속되다 보니까 브레인 포그가 심하게 왔어요. 22년 가을부터 24년 초까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제 몸이 잊기를 선택했던 거겠죠. 제 자신에 집중하고 싶어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누구를 붙잡고 따질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한때는 잊으려고도 많이 했고. 자세한 일들에 대해서는 아직 바라볼 용기가 없는 것 같아요.

 션 씨의 사진
션 씨의 사진

하나의 뿌리에서 파생된 수많은 여파

상민: 지금 이야기하시면서는 괜찮으세요?

션: 아주 괜찮진 않죠. 그런데 각오하고 오긴 했어요. 10월 25일에 추모 공연하거든요. 그날 아예 말 못할 정도로 울 거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우는 게 나을 것 같아 인터뷰 신청하기도 했어요. 개인적인 욕심이기도 했죠.

상민: 그날이 하나의 기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션: 사실 참사 당시에 입었던 옷을 버림으로써 조금... 이제 조금 벗어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요. 개인적인 일들이랑 너무 많이 엮여 있다 보니까. 그래서 원망스럽죠 되게.

상민: 천천히 말씀하셔도 돼요. 잠깐 휴지 가져다 드릴게요.

션: 밉죠. 3년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제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게. 이태원도 놀러 가고 일부러 핼러윈을 챙겨 봐도 그런 것 같아요.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때 있었던 일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당장 저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그날에 대해서 끊임없이 회피하기도 하고, 오늘 좋은 의미로 인터뷰 한다고 생각하면서 왔지만 결국 너무 개인적인 이유로 이런 상황을 이용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모든 게 미워지는 것 같아요. 저 자신까지도.

상민: 나 편하자고 이러는 건가 이런 마음이랑 비슷할 것 같기도 하네요.

션: 그런 것 같아요. 탓할 사람이 없으니까 저한테 화살표를 향하고. 힘든 사람만 있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상민: 저는 그 힘듦을 소화해 나가는 원 스텝 투 스텝을 마련해 보고 싶어요.

션: 그 원 스텝 투 스텝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대한 참사에 비해서 사람들은 다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극복해 낼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고 지금도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그냥 회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3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 이야기하면서 막 울고.

이런 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나의 약함을 드러내면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일차원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참사라는 원인으로 인해 파생되는 갈래가 너무 다양한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해결할지 막막한 것 같아요.

상민: 일부러 핼러윈을 챙기셨다는 이야기도 더 듣고 싶어요.

션: 참사 1년 뒤 그 당시 애인이랑 코스튬 맞춰 입고 집에서 놀았어요. 그런 시선도 많이 봤거든요. '지들이 놀러 가서 죽은 건데 왜 우리가 애도해야 되냐.' 조금 힘들었던 댓글 중 하나는 그때 핼러윈이 월요일이었잖아요. 유치원 애기들한테는 핼러윈이 되게 큰 행사인가 봐요. 그래서 엄청 기대했는데 너네가 뭔데 거기 가서 죽어서 우리 애기 슬프게 하냐고… 핼러윈과 엮여서 걸리적거리는 사람이 된 기분이 너무 싫었어요. 참사 이전 핼러윈처럼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일부러 챙기고 평소처럼 행동하고.

상민: 이태원에 다시 가신 건 언제였어요?

션: 알바였나 면접이었나. 하여간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는데 낮이었어요. 되게 달랐어요. 너무 조용하고 내가 아는 동네가 아닌 것 같아서 안 힘들었던 것 같아요. 공연이 잡혀서 이태원에 가기도 하고 친구가 클럽에서 음악 틀어서 놀러 가기도 하고 아니면 부모님 거취 때문에 대사관 간 적도 있고. 자연스럽게 마주치다 보니까 그것도 마찬가지로 원 스텝 투 스텝 거치면서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상민: 평소에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어려워하시는 편이에요?

션: 힘들다고 말해봤자 없었던 일로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이태원 다녀와서 쓴 메모 중에 하나가 더 있거든요. 그 노래는 발매되긴 했어요. 그런데 밴드 멤버들한테 이런 일 때문에 쓰게 된 노래라고 하니까 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더라고요. "나 거기 있었던 사람 처음 봤어" 이렇게밖에 못하고. 말을 하면 할수록 공허해지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위로해 주려고 하는 리액션에 상처받는 일도 있다 보니까 말을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상민: 가령 어떤 리액션이 상처가 되었어요?

션: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비슷한 시기에 자기가 겪었던 일을 말해준 친구가 있었어요. 나도 너처럼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좌절하고 힘든 적 있다는 식으로. 물론 좋은 의도였겠지만 그게 되게 공허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결되는 일도 없고, 네가 겪은 일과 내가 겪은 일은 분명 다를 텐데 가벼운 일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고. 모난 생각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야기하면 할수록 제가 너무 그들의 삶의 궤적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외로웠어요.

상민: 광주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아요.

션: 광주 초등학생들은 5월 18일마다 망월동에 있는 묘지에 가요. 가면 전시관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죽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여과 없이 다 나와요. 5월 되면 제사를 하는 집도 한 반에 엄청 많았거든요. 그렇게 유년을 보내고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월호가 터졌어요. 그게 되게 무력했던 것 같아요. 나랑 같은 학년의 친구들이 이렇게 죽어가는 게 믿기지 않았고. 그다음 홍콩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그때는 민주화 시위가 있었죠. 제가 일상적으로 다니던 길에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그랬어요. 아직도 소식을 모르고 행방불명된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이태원을 마주하게 됐는데 저는 이 네 가지 사건을 이만큼 가까이에서 바라본 사람이 적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말해야겠다는 용기도 생긴 게 아닐까. 내가 이 사건들을 더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아파하지 않았을까. 저는 계엄 때도 너무 무서웠어요. 홍콩에서 경찰과 군인이 시민을 때리는 걸 직접 봤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남일이 아닌 거예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이런 지점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요.

상민: 사건을 해석하는 힘이라고 할까요? 그게 그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겠구나 싶고요.

션: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게 다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날 얼마나 사람이 많았어요. 통일될 수 없는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무력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 이후 진행된 추모 공연에서 션 씨가 읽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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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놓친 발화의 골든타임 뒤로

상민: 통일될 수 없이 다양한 경험이라면 공감은 불가능한 거 아닐까요?

션: 공감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건 믿고 있거든요. 누구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를 원치는 않을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그 마음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런 일들을 다 겪고 나서 딱 한 생각밖에 없거든요. '내 친구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까지만이라도 갔으면 좋겠어요,

상민: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기억이 서로에게 있는 거잖아요. 그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션: 잔인한 말이지만 혼자서 해결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적어도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왜 무리를 지어서 사회를 만들어요. 비록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개인적인 슬픔이 있겠지만, 낭떠러지에 있다면 팔 한 쪽 내어줄 수 있고 늪에 빠진 것 같다면 다리 한 쪽 내어줄 수 있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정부가 폭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생존자들이나 유가족들을 돌보는 측면에서요.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면 같이 울 수도 있고. 그냥 발산하듯이 자기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런 사회적 활동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못 찾았던 걸 수도 있겠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

상민: 지금은 어때요? 만약 그런 자리가 생기면 나가 보고 싶을 것 같으세요?

션: 너무 멀리 온 것 같아요. 말을 타다 떨어지면 바로 다시 말을 타야지 낙마한 채로 있으면 무서워서 말을 계속 못 탄대요. 직후에 해결해야 하는 감정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너무 많은 것들이 얽히고설켜서 덩어리가 되었어요. 내밀한 것들이 많이 쌓였어요.

상민: 그날로 다 끝난 게 아니니까요. '생존자'라는 말은 어떻게 느껴지세요?

션: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한 번씩 해봤을 질문인 것 같아요. 나는 생존자인가? 비행기가 추락해서 몇 십 명이 죽었는데 몇 명 살아남았다든지 그럴 때 생존자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생존자라고 칭할 만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스스로 생존자라고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자기한테 과분한 호칭인 것 같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맞거든요. 저는 그 당시에 거기 있었고 저랑 같은 시각에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 중에 죽으신 분들도 있을 거고 제가 거기서 살아남았다는 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생존자라는 단어에 담긴 사회적 맥락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생존이란 단어 자체의 뜻으로 보면 맞는 것 같아요.

상민: 션 씨가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피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션: 무형의 것이에요. 제가 물질적으로 잃은 건 없거든요. 그런데 정신과 약을 증량했고 관계적인 트러블도 있었고 광장 공포증이 생겼고. 할 수 없게 된 것들도 많죠. 눈에 보이지 않아요. 제가 내밀한 이야기라고 한 것 중 하나가 그 당시 애인 때문이에요. 많이 싸웠어요. 제일 가까운 사람인데 이해를 못 해 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이태원 때문에 일어난 일인가 하면 어려운 거예요. 내가 오버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성격적인 변화 때문에 옛날처럼 친구들을 못 대한 시기가 있었죠.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런 느낌이라서. 확실한 건 어느 정도 걸쳐져 있는 사건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완전히 이태원 탓을 할 수는 없는 일들이에요. 분명 저의 잘못도 있고 다른 환경 잘못도 있겠죠.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자꾸 참사가 있는 거예요.

상민: 그날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할 때, '그날 거기'란 언제 어디를 의미하는 걸까요?

션: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 같아요. 이런 애매함 때문에 주춤하게 되는 거죠. 아예 확실히 구분을 해 주면 나을 텐데.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많았잖아요. 그 행렬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수사하는 분들이 집계한 게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거기 있었던 사람은 그걸 육안으로 가늠할 수가 없어서 교차 검증이 안 되니까 너무 말하기 힘든 것 같아요.

이후의 날들을 함께 감당할 수 있어야

상민: 참사 이후 달라진 일상이 있는지 여쭙고 싶어요.

션: 지금 기억났는데 제가 영화관을 되게 좋아했거든요. 2시간 동안 그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도피처처럼 느꼈어요. 그래서 이태원을 겪고 나서 일부러 영화를 더 많이 보러 갔어요. 그런데 이야기 속에 못 들어가겠는 거예요. 참사를 기점으로 좋아했던 것들을 많이 잃었어요. 그때 이후로 모든 것에 망설여지게 된 것 같아요.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겠어요.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까 봐.

상민: 최근에 소방대원의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잖아요. 접하고 어떠셨어요?

션: 사실 엄청 힘들지 않았어요. 마음은 아픈데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소방대원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계실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번에 가시화된 것뿐이지. 힘드셨겠구나. 많이 힘드셨겠구나.

상민: 참사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다는 간극이 느껴져요.

션: 그 기억을 지워 버리거나 혹은 그때 거기 없었던 사람이고 싶어요.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에요. 제가 믿는 건 주변인들의 도움이에요.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건 나도 그랬어라는 다른 사람의 한마디일 수도 있고, 지나가다 만난 이태원 부스일 수도 있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하나씩 쌓이다 보면 많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요.

상민: 피해자 인정 신청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시나요?

션: 알고는 있는데 섣불리 못하겠는 게 5·18 유공자처럼 될까 봐요. 광주 사람들은 광주 사람이라는 걸 숨겨요. "그렇게 떳떳하면 5·18 유공자 명단 공개하면 될 일이잖아" 이러면서 정신적으로 힘들게 해요. 그런데 만약 제가 이태원 피해자라고 인정이 됐어요. 그래서 지원을 받으려고 하면 너네 놀러 가서 멀쩡히 살아 돌아왔는데 무슨 자격이 있다고 돈 받으려고 하냐 그럴까 봐요. 저는 그게 피곤해요. 그냥 안 받고 안 하려고요. 그럴 때마다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또 해야 하는데, 저는 그것도 싫어요.

상민: 내 경험에 대해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우선 필요해 보이네요.

션: 친구랑 이야기하면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공개적으로 말을 하는 자리가 있으면 저는 조금 더 각오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한테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상민: 이번 3주기 추모 공연이 끝나고는 어떠실지도 궁금합니다.

션: 반점이 됐든 온점이 됐든 잘 찍고 넘어가고 싶어요. 그래야지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아요. 사회적인 의례들 있잖아요. 결혼식, 장례식 아니면 역할 놀이를 하는 것 같은 행사들을 옛날에는 왜 하는지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느슨한 연극 속에 자신을 던져 놓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있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상민: 그러네요. 연극에는 이야기의 끝이라는 게 존재하잖아요.

션: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연극단을 꾸려서 순회 공연을 한 게 '장기자랑'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그걸 보면서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준비하는 과정은 지난하겠지만 무대 위에서 뭔가 하잖아요. 연극이라고 하면 대사를 뱉을 거고 결혼식이라고 하면 성혼 선언문 같은 거를 읽을 거고. 그런 행위를 함으로써 뭔가 바뀌더라고요. 그렇게 전환점이 필요한 일이 있는데 사회적으로 전환점을 만들어 주지 않으니까... 세션분들한테는 제가 울든 노래를 못하든 절대 연주를 멈추지 말아 달라고 할 예정이에요.

션 씨의 기록은 그가 참여하는 3주기 추모 공연이 끝난 뒤 발행된다. 그는 어떻게 공연을 마쳤을까. 마침내 코스튬을 버릴 수 있었을까. 나는 모른다. 다만, 상상해 볼 뿐이다. 참사 이후 누군가의 삶에 대해 떠올릴 때도 다르지 않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 있었던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지금 이 순간 각자 나름대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참사를 둘러싼 경험은 그렇게 분화되어 왔다. 그렇다면 서두에 던진 질문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과연 그 차이를 어떻게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션 씨와 나는 '멍석'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후에 홀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짊어져야 하는 무게를 견딜 만한 것으로 바꿔줄 수 있는 멍석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런 자리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발화를 돕는 인터뷰 작업이 될 수도 있고, 말없이 마음을 보태는 추모 공연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생존자'라는 집단이 단일하지 않은 만큼 다층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션 씨의 이야기 속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그런가 하면, 참사 직후 골든타임을 이미 한 번 놓쳤다는 안타까움도 있다. 기억은 늘 상대적이라 오롯이 혼자 재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서로가 무엇을 겪었는지 폭넓게 맞대는 가운데서 모종의 후회와 죄책감도 걷어 낼 수 있다. 스스로의 기억 또한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한 프로그램이 드물 뿐더러 사회적 지지보다 비난이 훨씬 거셌던 게 지난 삼 년의 시간이다. 물론 지극히 사적인 관계망에 기댈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은 경우 고립은 심화된다. 참사는 개별 삶 속에서 끊임없이 파생되고 그나마 연결을 가능케 했던 공통분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편, 기록에 전부 담지 못했지만 션 씨는 두 팀의 밴드에서 활동하며 상호보완적으로 힘을 얻는다. 이때, 음악적인 자아 역시 그를 살게 하는 중요한 축이다. "살자" "살자" 나는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어디론가 나아가는 션 씨를 그리면서 참사를 깊이 이해해 본다.

글 : 이상민

* 기사를 검토하며 션 씨는 추모 공연 영상을 보내 왔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 활동은 재단법인 숲과나눔의 2025 풀씨 사업이 지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에도 실립니다.
#1029이태원참사 #이태원참사 #이태원 #핼러윈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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