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우는 엄마와 딸들, 그 연대를 바라보며

[서평] 심미섭 <사랑 대신 투쟁 대신 복수 대신>

등록 2025.10.30 13:22수정 2025.10.3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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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청년 그룹 페미당당을 알고 있다. 단체명이 그들의 활동상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추모하는 '거울 행동'은 내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젊은 여성들의 조직 없는 조직력에 놀라고 감탄하며 여성 운동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고 예감했다. 이 페미당당의 핵심 멤버인 심미섭의 글이 이 역시 그 다운 제목 <(사랑) 대신 (투쟁) 대신 (복수) 대신>으로 나왔기에 기쁘게 집어 들었다.

책은 저자가 지난 20대 대선 정의당 캠프에서 활동했던 117일간의 기록을 담고있다. 언뜻 공적이고 딱딱하겠거니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공식적 정당 활동 이력이 없던 저자가 대선을 돕기 위해 캠프에 합류했지만, 저마다 눈 돌아가게 바쁜 조직에서 저자에게 차근차근 일머리를 알려 주는 사람은 없었다. 공적 내적 갈등을 담은 에피소드는 저자의 놀라운 솔직함과 MZ스러운 해학으로 흥미롭고 진실 되게 전해진다. 무엇보다 백미는 저자가 실연 후 끊임없이 데이팅 앱을 구동해 자아낸 연애 스토리인데, 독자를 당혹 어쩌면 매혹시킨다.


 책표지
책표지 반비

저자는 공공연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다. 커밍아웃을 하든, 아웃팅을 당하든 성소수자성을 가시화한 후 불이익을 보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계엄 정국을 일기로 기록한 황정은의 <작은 일기>에는 저자가 탄핵 집회장에서 성소수자성에 대해 발언하는 일화가 나온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모인 집회장이지만 윤석열을 비판하는 데까지만 열려있는 적지 않은 시민들이 저자의 발언을 대놓고 불쾌해하는 모습이다. 이 장면은 진보를 연호하는 사람들 일부 역시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갇혀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처럼 공기처럼 스며있는 성소수자 차별이나 혐오는 제법 '쎄'보이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조차 때때로 주눅 들게 만든다. 19대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문재인 후보에게 '1분 찬스'를 써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을 때, 처음으로 어른을 만난 감동을 받지 않았겠는가. 당연한 메시지였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팬심이나 봉사 정신으로 대선 캠프에 합류한 것이 아닌 바에야 대선 후보에게 100% 만족할 수는 없었을 터다. 중간 중간 드러나는 대선 캠프의 난맥상이 심 후보와 전혀 관련 없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선 캠페인 중 있었던 후보의 갑작스러운 잠적과 이후 행보에 적잖은 실망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책은 대선 '디데이' 하루 전까지의 기록이기에 심 후보의 실패와 이에 대한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지지하고 헌신한 대선 후보가 낙선했다고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애쓴 마음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이자 성소수자이며 활동가이며 배우는 사람 등, 저자가 해내는 여러 역할 중 내 마음을 가장 잡아 끈 것은 딸이라는 위치였다. 이는 내가 그처럼 MZ인 딸이 있고, 그가 겪은 엄마와의 길항이 내 모녀 관계에도 비슷하게 전개되었기에 강하게 이입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심리 상담을 통해 받은 진단(당신의 문제는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는 말)에 눈물을 쏟아내며 던진 항변 '나를 키운 사람은 엄마인데 아빠보다 엄마가 해원의 대상이라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구태의연한 모녀 갈등을 탈각시킬 가능성을 보이며 뭉클함을 안긴다.

저자의 엄마는 비 오는 날 우산을 가져다 달라는 딸의 부탁을 "그냥 비 맞고 와"라고 답하는 엄마였다. 어쩌겠는가. 다행인지 '애늙은이' 기질이 있던 저자는 비를 맞고 귀가하며 울지는 않았다. 엄마의 각박한 현실을 어느 정도 이해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엄마와 다정히 우산을 나눠 쓰고 가는 또래들이 부럽지 않기야 했겠는가. 이 쓸쓸한 동경은 슬그머니 침잠해 그의 마음 밑바닥에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으로 남았을 테다.


저자처럼 우산이 없어 기어이 비를 맞고 가는 아이를 보면 딱한 마음이 드는가. 일기 예보에 신경 쓰며 아이 우산을 챙겨도 비 맞는 날은 반드시 온다. 어쩌겠는가, 맞는 수밖에. 그런데 비 좀 맞는다고 큰일이 생기겠는가. 딸애와 나도 사춘기를 겪으며 참 많이 다퉜다. 딸애는 크면서 나의 모성을 종종 의심했고 심문했다. 아이의 불만에 내 탓이 눈곱 만큼도 없던 것은 아니겠지만, 주로는 보여지는 '엄마 상'을 배반하는 나의 자애롭지 못함이 비난 대상이었다. 나는 어떤 사랑도 당연한 것은 없다고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갈등이 해결된 것은 딸의 각성 덕분이었다. 어쩌다 외국에서 몇 년을 보내며 관찰하게 된 다른 엄마들은 알고 있던 '엄마 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다행이고 고맙게도 이 모순을 깨달은 딸애는 엄마를 한 인간으로 바라봐 주기 시작했다. 저자처럼 말이다. 그는 모녀의 상호관계성을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나를 키우고 나는 '엄마'를 키운다"고.


저자는 자신을 키운 사회적 엄마들을 생각하며 조금 더 나아간다. 엄마 대신 다정함과 격려와 카드(겨울 코트를 사주는)를 주는 이모(엄마의 절친). 용기와 정의를 가르친 페미당당의 동료들, 성소수자를 위해 '1분 찬스'를 써 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준 대선 후보, 불안해 울고 있으면 달려와 안아주는 친구들, 이 모든 여자들이 저자를 키운 엄마들이자 딸들이다. 그러므로 엄마와 딸은 언제나 마주하고 연대할 수 있다. 미진함이 있는 채로 말이다. 그의 결론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게시 예정

사랑 대신 투쟁 대신 복수 대신 - 낮에는 여자 대통령을 만들고 밤에는 레즈비언 데이트를 한 117일

심미섭 (지은이),
반비, 2025


#사랑대신투쟁대신복수대신 #심미섭 #페미당당 #레즈비언페미니스트 #모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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