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고교학점제가 도입되었다. 시행하고 한 학기가 지났음에도 고교학점제에 대한 찬반 논쟁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교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를 보완하여 고쳐 쓰기에는 적합한 제도가 아닌 듯하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한 취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학생의 진로 선택권 확대이고, 또 하나는 기초 학력 성취이다. 학생의 진로 선택권 확대와 기초 학력 성취는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근원적인 목표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인공 지능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이다.
고등학교 1학년 대부분의 학생은 아직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기꺼해야 학교에서 일주일에 하는 1~2시간의 '진로와 직업' 수업이 전부이다. 그런데 2학년 교과목을 선택하라고 한다. 이 수업으로 학생들의 정체성을 찾아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라는 것은 부모의 말을, 주변의 말을 따라가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학교 현실에 맞춘 안내에 따라 교과목을 선택해야 하기에 그 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들에게 진로 선택권은 중요하다. 하지만 인공 지능 시대에 그것은 고등학교 기간 내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로 학생의 진로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시대 변화에도 어긋난 것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는 어제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융합적으로 변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는 하나의 직업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없는 시대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몇 차례 직업을 바꿔야만 하는 시대이다. 진로의 개념이 다양해지고 심지어 무너지고 있다. 오늘의 직업을 내일에는 바꿔야 하는 시대에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로를 서둘러 결정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자기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 정체성이 어디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찾고 확인해야 한다. 대학에 입학한 뒤 자신의 진로를 찾아도 늦지 않다. 삶의 시간은 길어졌는데 교육의 시간을 구태여 앞당길 필요가 있을까.
학생들의 기초 학력 성취 문제도 다시 생각하여야 한다. 예전에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있어도 아예 하지 않는 학생은 적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공부하지 않으려는 학생들도 많다. 그런 학생들에게 학업 시간을 늘리고, 반복한다고 해서 기준 학력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를 학교에서 해결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편법을 동원하여 학생의 기본 학력을 인정하려 할까?
지금 학생들은 학업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인공 지능에 물어보면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꼭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기의 삶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이전보다 많이 열려있다. 대학도 자기가 원하는 대학은 아닐지라도 가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고교학점제로 학생들의 기초 학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이에 따른 부작용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인공 지능 시대 교육의 본질을 생각한다
다시 교육을 생각한다. 교육은 학생들의 삶의 방향을 열어주는 데 있다. 학생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그 정체성이 공동체 발전을 이끄는 힘이 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잊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잊어야 했다. 입시지옥, 입시전쟁이란 말이 한때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 전쟁과 지옥에서 본진을 근원적인 물음에 답할 수 없다. 아직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공 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과감히 산업화 시대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시간을 학교에 다니는 내내 가져야 한다. 나는 무엇을 하면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하면 잘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에 흥미가 있는가를 끊임없이 탐색하여야 한다.
자기의 정체성을 먼저 찾고 그것이 직업으로 경쟁력이 있는가, 경쟁력이 있다면 어디에서 경쟁력이 있는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영어 발음이 좋은 미국인이 미국에서는 경쟁력이 없지만, 아시아로 오면 엄청 경쟁력이 생긴다.
인공 지능 시대에 맞도록 교과서의 내용을 바꾸고, 수업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인공 지능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물음과 평가이다. 정확하게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묻고, 인공 지능에서 제시한 답변을 평가할 수 있는 사고력과 판단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다양한 지식, 깊은 지식보다 각 교과에서 학생의 호기심을, 사고를 끌어낼 수 있는 물음을 만들어 수업을 진행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자기의 호기심에, 교사의 물음에 답하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수업은 학생들로부터 외면받지 않는다. 학생 중심이 되면 수업 시간은 살아있다. 수업이 살아 있으면 기초 학력을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이다. 하지만 고등학교도 의무교육 가까운 수준에 와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공감할 수 있는 그 공동체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공동체 교육에서 나눔과 배려가 중요하다. 이제 이 지구상에는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은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기존의 것을 융합하여 새로운 창조물을 만드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나눔과 배려가 없으면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 휴대전화는 전화, 사진기, 녹음기, 컴퓨터 등의 다양한 전문 기술이 융합하여 휴대전화라는 하나의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나눔과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나눔과 배려는 공동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교육도 필요하다. 그 자긍심을 바탕으로 어울림이 있어야 한다. 내 것 없는 세계화는 식민지화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우리 고전 작품인 <심청전>도 중학교에서 읽을 때는 '심청'을 중심으로 읽었다면, 고등학교에서는 '심학규'에 중심을 두고 읽도록 하는 것이다. '심학규'를 초점으로 작품을 읽으면 <심청전>은 '세상 사람들아,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하루빨리 깨닫고 눈을 뜨기 위해 노력을 다하라'라고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철학적이고 현실적인 작품이 우리 고전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 문화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은 학생들의 삶을 이끌어 주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 방향은 개인에게 희망을 제시하여야 하고,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 가운데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이기주의로,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 정체성과 공동체는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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