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남항진해변 일렬로 설치됐던 잠제 구조물이 시공과 관리부실로 이리저리 흩어져 원래 형태를 잃은 모습.
진재중
강원도 동해안에는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된 수중방파제, 이른바 '잠제'(submerged breakwater)가 길게 이어져 있다. 한때 해변을 지키는 방패로 기대를 모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기능이 약화되고 변화하는 해양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실효성과 필요성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수중방파제인 잠제는 해빈 전면부에 설치돼 외해에서 유입되는 파랑 에너지를 감소시켜 배후지의 침식을 줄이는 구조물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해류의 흐름을 왜곡시켜 오히려 침식을 가속화시키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드론과 수중카메라로 강원도 동해안을 취재한 결과, 고성에서 삼척까지 총 16개 해변에 잠제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구조물의 형태와 규모가 제각각이었고, 상당수는 관리 부실로 방치된 상태였다.
부서진 방패, 잠긴 구조물... 바다에 버려진 잠제
고성 봉포해변 앞바다에는 연안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된 세 개의 잠제가 있다. 드론 촬영 결과, 중앙 잠제는 일시적으로 파도를 완화하지만, 우측 잠제는 절반가량이 묻혀 기능을 잃어가고 있고, 좌측 잠제도 파랑을 제대로 막지 못해 해안으로 직접 파도가 밀려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침식은 인근 천진해변까지 확산됐고, 모래는 바다로 쓸려나갔다. 해안도로에는 절벽이 형성됐고, 도로와 해변을 연결하던 사다리는 녹슬어 쓰러진 채 방치돼 있다.
천진해변 주민 함홍렬씨는 "이대로 방치하면 올겨울에 방벽이 무너질 수도 있다. 천진해변 잠제를 보강하거나 새로 설치해야 하는데, 왜 그대로 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관계기관에 불만을 제기했다.

▲고성 천진해변 잠제 너머로 깎여 나간 천진해변. 녹슨 난간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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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봉포 모래에 파묻힌 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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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카메라로 바닷속을 확인한 결과,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잠제 구조물은 갈라지고 부서진 채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시멘트 조각들은 오히려 위험 요소가 돼 있었다. 원래 파도를 막아 해안을 보호해야 할 방패였던 잠제는 바닷속에 잠긴 채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해안 침식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어민들의 안전과 어업 활동에도 위협이 되는 상황이다. 구조물이 본래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해안선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지역 주민들은 하루하루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다.
흩어진 구조물, 잃어버린 기능... 남항진 잠제
강릉 남항진 해안은 한때 해안 침식으로 마을 일부가 위협받았던 지역이다. 너울성 파도와 잦은 태풍으로 피해 우려가 커지자, 강릉시는 2002년 '연안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대대적인 해안 정비에 나섰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총 3년에 걸쳐 도류제와 돌제를 설치하는 연안정비사업이 추진됐다. 당시 사업 관계자는 "공사가 완료되면 하시동리와 남항진리 일대가 예전의 해변으로 복원되고, 태풍으로 인한 침식 피해도 사라질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침식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구간에서는 모래 유실이 가속화되며 해안선이 후퇴했다. 가시적인 복원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정부는 2010년부터 잠제 6기를 추가로 설치하며 해안 안정화에 다시 나섰다.

▲강릉 남항진 김 조각처럼 부서져 있는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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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남항진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된 구조물이지만, 모래 속에 묻히면서 제 기능을 잃은 채 방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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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25년 11월, 현재 잠제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일부는 모래에 묻히거나 파손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돌덩이들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한국해양대학교 도기덕 교수(해양공학과)는 "남항진 잠제가 피복재 이탈과 침하로 인해 파랑 완화 효과를 거의 잃었다"며 "이로 인해 침식 저감 기능도 미미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블록이 파손되고 일부 구간이 단절된 상황에서는 파랑이 한쪽으로 집중돼 특정 지역의 침식을 가속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남항진 해안의 지형적 특성상, 이러한 잠제 손상이 구조적 문제를 넘어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남항진 어촌계의 한 어민은 "해안을 보호하겠다며 설치한 잠제가 이제는 오히려 흉기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흩어진 구조물에 그물이 걸리거나 어선 스크루가 파손되는 일이 잦아, 바다에 나갈 때마다 불안하다"고 말했다.
퇴적과 침식의 갈림길... 반암해변, 잠제의 명암

▲고성 반암 설치된 잠제에도 불구하고 북쪽 해안은 여전히 침식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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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반암해변 잠제 설치에도 불구하고 해안의 침식과 퇴적이 반복되며,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해변으로 변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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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반암해변은 잠제 설치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는 곳이다. 잠제 남쪽 해변에는 모래가 쌓여 퇴적이 증가한 반면, 북쪽 해변은 모래가 유실돼 침식이 심해졌다. 침식이 진행된 구간에서는 1m 이상 높이의 절벽이 형성돼 안전 위험이 커진 상태다.
한 마을 주민은 "잠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설치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고, 오히려 침식이 더 심해졌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사라진 모래, 드러난 구조물... 교암해변의 역설
고성군 교암해변은 잠제 설치 이후 해안 지형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주민들의 불만이 가장 큰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한태동 어촌계장은 "잠제 설치 이후 해변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이대로 방치하지 말고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제까지 이런 불편한 해변에서 살아야 하느냐"며 조속한 개선을 촉구했다.
현재 교암해변의 바다 모래는 사라지고, 대신 돌과 자갈이 해안을 뒤덮고 있다. 해변을 걸을 공간조차 없어졌다.

▲고성 교암해변 "구조물 설치 이후 북쪽 해변에는 모래가 쌓이는 반면, 남쪽 해변은 침식이 가속화되어 해안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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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교암해변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돌과 자갈로 임시 복구했지만, 효과는 없고 침식만 더욱 심화되고 있는 해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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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된 잠제 3기 중 북쪽 구조물은 모래에 묻혀 제 기능을 잃었으며, 파도를 막기는커녕 해류의 흐름을 왜곡시켜 침식을 가속화하고 주변 도로까지 위협하고 있다. 육안으로도 북쪽 잠제의 일부가 하얗게 드러나 있는 모습이 확인된다. 해변에 쌓인 모래가 잠제 주변까지 이어져, 그 위를 따라 걸어갈 수 있을 정도다.
한국항만협회 강윤구 박사는 "잠제 자체가 나쁜 구조물은 아니지만, 해류 방향과 파랑의 입사각, 해저 지형 등을 정밀하게 계산하지 않으면 잠제가 침식을 막기보다 오히려 가속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해안을 지키려다 잃은 해안... 삼척 원평의 역설

▲삼척 원평해변 일부 잠제가 모래에 묻혀있고 침하돼 파도를 막는 본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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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원평해변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잠제와 이안제가 설치된 해안. 그러나 인공 구조물에 의한 해류 변화로 인근 해변에 새로운 침식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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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원평 일대는 궁촌항 건설 이후 해류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심각한 해안 침식이 발생한 지역이다. 해변 모래가 유실되면서 레일바이크 선로가 바다 쪽으로 무너지고, 일부 구간에서는 주민들이 심은 소나무가 뿌리째 드러난 채 방치됐다. 침식을 막기 위해 모래포대와 자갈을 투입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원평해변에 설치된 잠제 3기의 안정성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일부 잠제는 기울거나 모래에 묻혀 있고, 주변의 이안제 등 인공 구조물로 해안 경관이 훼손됐다. 반복적인 구조물 설치로 해안의 자연 복원력도 약화된 상태다. 잠제가 끝나는 초곡해변에서는 침식이 심화돼 파도가 해안도로까지 밀려 들어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임시로 설치된 옹벽도 불안하게 기울어 있다. 주민들은 "해변이 해마다 좁아지고 있다"며 근본적 대책을 요구한다.
이대로 방치될 경우 잠제를 다시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다. 해안 침식과 안전 위험이 지속되는 가운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원대학교 김인호 교수는 "항만을 건설할 때는 주변 해양 환경을 면밀히 고려해 해안침식이나 이후 발생할 여러 해안 문제까지 예측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속초 해변, 바다 속에 묻힌 600억 원의 구조물

▲속초 해변 속초해변과 인근 외옹치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5기의 잠제가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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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해변에는 해안을 감싸듯 5기의 잠제가 설치돼 있다. 당초 3기만 설치됐으나, 인근 외옹치 해변의 침식이 계속되자 2기를 추가로 세웠다. 1기의 길이는 약 150~200m로, 총 5기 설치에 약 600억 원이 투입됐다. 대형 육상 건물 공사에 맞먹는 규모다.
설치로 끝난 잠제, 관리의 사각지대
잠제는 대부분 200억 원 이상의 대형 예산이 투입되는 공사여서 주로 중앙정부가 주도해 시행된다. 그러나 준공 이후 관리 책임은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면서,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지자체가 정기 점검과 유지보수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설치만 하고 관리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라며 "지자체에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거나 정부가 직접 사후 관리를 맡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데 비해 사후 관리 체계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 또한 이어지고 있다. 잠제 시공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잠제는 설계부터 유지관리까지 전 단계에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사업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러한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잠제는 단순히 '설치'로 끝나는 구조물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설이다. 바다는 날마다 변한다. 파도의 방향, 계절별 해류, 해저 지형이 조금만 달라져도 잠제의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한국해양대학교 도기덕 교수는 "잠제는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해안의 변화를 반영해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살아 있는 장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한 보수보다는 잠제의 재설계와 기능 진단, 그리고 정밀한 연안지형 모니터링을 통해 동해안 전역의 유지·보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주목받는 인공지능(AI) 기반 연안침식 예측 기술이 이러한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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