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새우와 나무 사다리' 기초디자인 같은 주제로 내가 5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이며 직접 그린 그림.
이신유
5분 만의 정답, 5시간 그림이 던지는 질문
AI가 5분 만에 만들어낸 완벽한 결과물과, 내가 5시간 동안 망설임과 실수를 거듭하며 그린 시범작의 차이는 무엇일까? 창작의 고통, 지우개 자국, 그리고 한 선을 긋기 전의 망설임 같은 '느린' 것들이 과연 여전히 교육에서 의미가 있을지...
사실 AI가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미드저니 같은 생성형 AI는 수많은 이미지와 텍스트 설명을 바탕으로 '패턴'을 배운다. 사용자가 단어를 입력하면, AI는 그 단어에 맞는 픽셀 관계를 '계산'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조합해낸다. 이는 사람의 감정이나 직관, 경험이 아닌, 차가운 '계산의 결과'일 뿐이다. AI는 사람의 손끝을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왜 그런 구도를 골랐는지' 그 의미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학원은 곧 이 기술을 본격적인 경쟁력으로 내세웠다. 이른바 '합격 알고리즘' 프로젝트였다. AI가 수많은 합격생의 그림을 배워서, 어떤 색을 어떤 순서로 칠할 때 합격 가능성이 높은지 통계적으로 분석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떤 구도와 배치를 활용해야 호감가는 그림이 나오는지도 분석한다. AI는 단순히 그림을 따라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데이터로 해석해 '효율적인 합격공식'을 찾아내는 도구가 된 셈이다.
학생들은 이제 강사의 감각 대신, 인공지능이 계산한 최적의 과정을 따른다. 스케치 단계, 밑색 단계, 묘사 단계별 이미지를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이다. 겉보기엔 체계적인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사람다운 실수의 흔적'이다. 붓의 압력, 물감의 농도, 종이의 질감 같은 손의 감각이 빠진 자리에 남는 것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이미지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살아 있는 교육의 과정이 아니라, 얼마든지 복제 가능한 정답일 뿐이다. 학생들은 내게 종종 물어본다. "쌤, 어떻게 하면 저렇게 그릴 수 있어요?" 나는 조화, 비례, 대비, 공간 구성, 시선의 흐름 같은 디자인의 기본을 설명해 준다. 그림은 기술이 아니라 '생각의 결과'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는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AI는 결과만 보여줄 뿐,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학생들은 "배경은 어둡게 칠한다"는 규칙만 외우고,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대로 따라 하게 된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사라지고, '정답을 외우는 그림'만 남게 되는 것이다. 디자인 교육의 핵심은 생각하는 과정인데, AI는 그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만 툭 내놓는다. 학생들이 AI의 이미지를 생각 없이 따라 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을 배우는 대신, '그림을 복제하는 법'만 익히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미술 교육의 질문은 'AI보다 잘 그릴 수 있느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AI를 얼마나 슬기롭게 활용할 수 있느냐'로 바뀌어야 한다. AI가 내놓은 결과물 속에서 사람의 논리를 찾아내고, 그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앞으로의 교육이 길러야 할 힘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AI 시대의 미술교육은 금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을 고민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학생들이 단순히 AI를 쓰는 사용자가 아니라, 기술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기 언어로 다루는 창작자가 되어야 한다.
몸으로 직접 익히는 비례와 조화의 감각, AI를 새로운 재료로 다루는 상상력, 그리고 데이터 속에서 사람의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 이것이 AI가 줄 수 없는, 사람 강사만이 줄 수 있는 가치일 것이다.
AI가 합격생의 그림을 배우는 시대에, 내가 붓을 드는 이유는 단지 잘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AI를 가장 사람답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붓을 드는 그 '무거운 손'의 의미를 잊지 않도록 돕는 것. 그 손끝의 무게 속에서, 사람의 창의성과 기술의 미래가 다시 만난다고 믿는다.
AI가 아무리 완벽한 '합격공식'을 제시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과거의 데이터를 모아놓은 평균값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5시간 동안 망설이며 그린 그림에는, 비록 서툴지라도 '지금, 여기'의 고민과 세상에 없던 새로운 시도가 담겨 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정답을 베끼는 법이 아니라, 그 무거운 손으로 자신만의 정답을 만들어나가는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결국 한 가지다.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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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5분, 나는 5시간… 내 '숙련도'가 데이터가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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