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속도대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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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껏 20년간 마라톤을 해왔단다. 과연 절로 만들어진 꿀벅지(굵고 탄력있는 허벅지를 이르는 신조어)가 아니었다. 겨울에도 감기 한 번 안 걸린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팔랑귀가 나풀거렸다. 용기내어 지역의 러닝 클럽에 가입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달리기를 하다니. 내향인의 큰 결심이었다.
그나저나 고등학교 체육 시간 이후로 뛰어본 적이 있던가. 당시 100m 달리기도 20초를 기록한 내게 달리기가 두렵고 낯선 건 당연한 일이었다.
러닝 클럽의 감독님께서 백지 상태의 내게 기본적인 달리기 자세에 대해 세심히 알려주었다.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모든 동작에 힘이 들어갔다. 감독님의 말도, 넘쳐나는 러닝 유튜버의 꿀팁도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달리기를 하루이틀, 절대 나아질 것 같지 않던 자세도 차츰 변화를 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달리기 전후 스트레칭이었다. 수영할 때도 강사님이 준비운동을 하고, 강습 후 스트레칭하며 늘 강조하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스트레칭 건너뛰어도 돼요! 하지만 우린 절대 절대 안 돼요."
중년들이여, 새겨듣기를. 엉거주춤 자세를 잡고 달리는 느림보 거북이의 눈에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차림새로 운동장 트랙을 멋지게 달리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폼나게 달리는 사람들 틈에서 제자리걸음 하는 듯한 내 모습에 조바심이 났다.
"절대 다른 사람들 속도에 따라가려고 하지 마세요. 신경 쓰지 말고 내 페이스대로 달려요. 자세에 신경 써요. 페이스는 금방 올릴 수 있어요. 지금 다른 사람 쫓아가면 다쳐요. 부상 오면 못 달리죠."
귓가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감독님의 잔소리가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려는 초보 러너의 발목을 잡아주었다. '내 속도대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보폭과 호흡에 집중했다. 앞서가던 회원이 페이스를 맞춰주었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처음으로 저녁 공기와 바람이 상쾌했다. 사람들이 왜 매일 강변을 달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리발도 아닌 거위발건염?
내 마르고 비루한 몸은 달리기에 적합한 몸이라며 칭찬받았다. 자세도 몸에 익으니 달리기에 욕심과 재미가 붙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나가 뛰었다. 운동장 400m 트랙 한 바퀴도 힘들던 내가 두 바퀴, 세 바퀴를 어렵지 않게 뛰었다. 주변의 칭찬에 우쭐해지고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예정된 마라톤대회 10km 코스에 접수했다. 달리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이었다. 몇 년씩 뛰어온 선배님들과 함께 대회 준비를 하며 나도 마치 그들과 비슷하다 자만했다. 그 대가였을까? 대회 훈련 중 운동장 트랙 20바퀴를 돌다 부상을 입고 말았다.
정형외과를 찾았다. '거위발건염'이란 진단명에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오리발도 아니고 거위발이라니. 무릎 안쪽 부위에 허벅지에서 내려온 3개의 근육 힘줄이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위의 물갈퀴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거위발건이다. 무릎을 과도하게 쓰거나 지속적인 마찰이 원인이라고 한다. 러너에게 흔히 찾아오는 불청객이란다. 귀여운 이름과 달리 통증은 무시무시했다. 걷고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쩔쩔맸다.
몇 차례에 걸쳐 물리치료를 받고 진통소염제를 복용했다. 무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했다. 지긋지긋한 무릎 통증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마라톤 출전은 무마되었고, 3주 동안 달리기를 멈추고 쉴 수밖에 없었다. 무릎이 회복되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러닝 클럽에 나가봤지만, 같이 뛰는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뛰는 것은 무리였다. 그토록 즐거웠던 달리기가 괴로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달리지 않을 것인가? 포기하면 이전처럼 달리기는 나와 상관없는 세계가 된다. 마음을 가다듬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격렬한 러닝은 피하고, 무릎에 무리 가지 않도록 내 속도대로 뛰기로 했다. 기록과 거리에 신경 쓰기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오래 달리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P.259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면, 그는 이렇게 써넣고 싶다고 한다.
원미영
아침잠이 많은 난 새벽 러닝 대신 퇴근 후 시간을 내어 달린다. 오늘은 3km만, 내일은 조금 더, 그렇게 욕심내지 않고 달렸다. 무념무상으로 달리고 나면 왠지 모르게 후련했다. 길고도 짧았던 하루 속에 뒤엉킨 분노와 좌절, 수치와 어리석음, 자책 같은 감정들을 가쁜 숨에 흘러 보냈다.
다이어트가 절실한 배우자는 내게 자극받아 요즘 나보다 더 오래, 더 열심히 달린다. 함께 숨을 고르며 나누는 짧은 대화는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결혼 15년 차 부부에게 신선함과 활력을 준다. 며칠 전에는 남편과 달리다 무작정 맥주집에 들러 생맥주 한 잔을 마셨다. 운동 후 알코올 섭취가 좋을 리 없다는 건 알지만 사람이 몸에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나. 이따금 즐기는 소소한 일탈이 내일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한다.
다치지 않고 즐겁게, 오래 뛰고 싶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대로 달리다 보면 언젠가 42.195km를 완주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달리기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오늘도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나가볼까?
쩨쩨하고 궁핍하지만, 울고 웃고 버티며 오늘도 그럭저럭 어른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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