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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교사의 자책 "우리는 모두 위대한 소설가다"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중요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실태... 학생 활동 중심 기록으로 바꿔야

등록 2025.10.31 13:52수정 2025.10.3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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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기록할 때 '과장'과 '창작'이 흔히 이루어진다.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 것인가?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기록할 때 '과장'과 '창작'이 흔히 이루어진다. 그대로 두어도 괜찮을 것인가? 이준만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마치고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과장'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의 '과장'은 대부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와 관련되어 있다. 학생부 종합 전형이 대학 입시에서 주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되면서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 '과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 버렸다. 특히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란과 '창의적 체험활동'란은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현실

이 중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자. 이 사항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업 중 활동을 직접 관찰하고 평가하여 기재하는 영역이다. 그러려면 학생들의 활동이 수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는 학생 중심 수업이 거의 없었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예전 관행에 따라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가만히 앉아 교사의 설명을 경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써야만 한다. 그것도 제한 글자 수까지 꽉꽉 채워서 잘 써야만 한다.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은 대부분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서울의 주요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교사 입장에서는 과장과 창작이 자연스러운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13년으로 기억한다. 어떤 과학 교사가 내가 담임한 한 학생의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초롱한 눈망울로 수업에 집중함"이라고 적었다. 아마도 그 교사는 교사 주도의 강의식 수업을 했을 터이고, 그러다 보니 적을 내용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교사가 수업 중 관찰한 사실에 충실히 근거하여 기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을 충실하게 지킨 정직한 교사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당시 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을 충실히 지킨 교사는 없었다. 나 또한 그랬다. 모두 최선을 다해 과장하고 창작해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썼다. 해가 갈수록 학생부 종합 전형의 비중이 커지면서, 교사들의 과장과 창작은 점점 심화되었다. 2020년쯤, 어느 후배 교사가 자괴감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토했다.

"우리는 모두 위대한 소설가다."


교사들이 과장과 창작을 일삼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신들의 제자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조금 꺼림칙하지만, 눈 딱 감고 과장과 창작에 일로매진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본다면 옳은 일이 아니지만, 관행적으로 묵묵히 행한다.

옳음을 가르쳐야 할 학교라는 공간에서 옳지 않은 일이 횡행하는데도, 이를 막는 사람도, 장치도 없었다. 내가 교직에서 은퇴한 2024년까지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장과 창작을 줄일 방법

그렇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교사들이 대오각성하지 않는 한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겠지만 방법은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반계 고등학교의 수업 방식을 '학생 활동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학생 활동이 수업의 중심이 되어야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정직하게 작성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는 모든 교사가 담당 과목의 학기별 수업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던 시절에도 '교과 진도 계획'을 제출했지만, 이를 단원별로 어떤 학생 활동을 할지까지 구체적으로 담은 '수업 계획서'로 내실화해야 한다. 학기말에는 작성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제출된 수업 계획서에 명시된 학생 활동을 충실히 반영했는지 검토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과장과 창작을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방안이 쉽지 않다. 교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일부에서는 과장과 창작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묵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중요한 전형 자료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과세특 #과장 #학생부종합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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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지방 소도시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2년을 제외하고 일반계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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