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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며 살고 있었을까

일본 아랍문학 연구자 오카 마리 지음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을 번역하며

등록 2025.11.03 08:59수정 2025.11.0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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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을 번역하게 된 때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 불리고 있는 그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정도가 지날 무렵이었다(이 전쟁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알 아크사 홍수 작전'이라 명명된 대규모 공격으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된다).

개전 당시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인들의 이미지가 언론을 뒤엎었지만, 이어서 도저히 그에 비할 수 없는 가자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참상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그 광경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전장, 아니, 그 자체가 거대한 학살 현장이 된 가자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물음에 응답한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전쟁에 관여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가자로 들어가, 학살당하는 이들과 함께 죽어 간 이들, 군중이 되어 거리를 깃발과 함성으로 뒤덮은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팔레스타인과 가자의 참상을 다룬 책들이 적지 않게 쓰여지고, 번역되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난 대재앙(나크바)의 기원과 그 이후에 벌어진 장절한 억압과 투쟁의 역사를 다룬 책들,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가자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는 학살의 참상을 고발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것이기도 했다.

거기에는 민족의 역사와 대규모 학살이 있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이야기 이전에, 그리고 그 거대한 이야기 아래에 팔레스타인 사람들, 가자의 사람들, 국경지대와 국경지대의 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었는가.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은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일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의 아랍문학 연구자 오카 마리가 3년여에 걸친 글들을 엮어 2018년에 펴냈다. 저자는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들의 '난민으로서의 문학', '증언으로서의 문학, 그리고 평범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그들의 못다 이룬 꿈과 일상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로써 풀어냈다.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 》 표지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 》 표지 마르코폴로(2025)

저자가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고, 거기에서 죽을 현지의 사람들, '외부인'이었으나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죽어간 이들, 이직도 경계에 놓인 이들을 아우른다. 이미 죽은 이들과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이 공명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과 가자의 이야기는 민족 단위의 대서사시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밀착한 일차원의 시선으로 되살아나 독자들과 눈을 마주한다.


가자의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병원비를 내는 대신 딸의 대학 학비를 내기로 선택한 어머니, 각각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 사람인 부모의 피를 이어받은 경계인, 그리고, '사막의 연옥'인 국경 사이의 난민들까지. 그들이 바라던 것은 팔레스타인의 해방이라는 대의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그들이 영위해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위하고자 하는 현재와 미래의 일상이기도 하다.

가자를 달리는 지하철. 그것은 팔레스타인 예술가 모하메드 아부살의 전시 작품 중 하나였다. 가자에는 지하철이 달리지 않으며, 그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투쟁 수단뿐만 아니라 생필품이 오가는 지하 통로의 비유일 뿐이었다. 그는 지하철이 달리지 않는 가자에 지하철역 안내 표지판을 세움으로써, 지하철이 달리는 일상의 가자라는 꿈을 현실로 이끌어낸다.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나크바)로 본격화된 '인종청소', 수 차례의 중동전쟁과 인티파다 , 70년이 지난 후 가자에서 펼쳐진 대규모 집회인 2018년 '귀환의 대행진', 나아가 2023년 이래의 '가자 학살'이란, 팔레스타인이라는 압도적이고도 거대한 서사시로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어,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난다.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 번역 제안이 들어왔을 때,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만약 번역이 하나의 연대일 수 있다면 그 또한 내가 연대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가자의 일상과 꿈을 번역하는 것. 그럼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한국어로도 기록하고 싶었다.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을 통해, 전장과 학살의 현장, 죽음의 공간으로서의 가자만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서의 가자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

오카 마리 (지은이), 박용준 (옮긴이),
마르코폴로, 2025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서안지구 #이스라엘 #가자에지하철이달리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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