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소영씨의 생일을 맞아 묘지에 다녀왔다며 희진씨가 보내온 사진
유희진
정숙: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길 들어보신 적 있으셨나요?"
희진: "할머니 생신 때였나, 한 번은 친척들이랑 다 같이 대화하고 있는데 삼촌이 이태원 참사 이야길 꺼내시는 거예요. 그냥 거기 왜 가서 변을 당하냐... 삼촌께 크게 소리를 내서 이야긴 못 했고 그냥 놀러 갈 수도 있지, 이렇게만 말했어요. 속으로는 어른들도 가을에 단체로 단풍 축제 구경하러 가시지 않느냐, 만약 거기서 사고가 났어도 이렇게 욕할 수 있냐고 화내긴 했지만요. 엄마한테는 그날 이태원에 다녀왔다고 말씀드렸는데, 아직 아빠는 모르시거든요. 아마 지금 말씀드리면 거길 왜 갔었냐고, 이 정도로만 끝나겠지만 저희 아빠는 안전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 혼날 게 뻔해서 그땐 얘기 안 했어요."
정숙: "언니랑 형부 반응은 어떠셨어요?"
희진: "언니랑 형부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다만 이후에 이태원에 대해 이야기 나눴을 때 언니도 당시에 저처럼 빨리 이 골목을 벗어나야겠다고만 생각했다고 그랬어요. 너무 무섭고, 놀랐다? 저랑 같은 반응이었어요. 형부는 그때 현장에서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는데 언니랑 제가 빨리 집에 가자고 해서 돌아왔다고. 그리고 제 친구가 희생자인 것도 알아서 괜찮냐고 위로해주기도 했어요."
정숙: "이태원 참사 전후로 희진씨에게 생긴 변화가 있을까요?"
희진: "그런 일 있고 나서 그냥 안정적이고 평범하게,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안정적인 삶, 언젠가는 가정을 꾸려서 화목하게 소소하지만 별 탈 없이 지내고 싶다는 마음? 어렸을 때는 막연히 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평범한 미래가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죠. 그 전에는 사람 많은 곳, 시끌벅적한 곳에 가서 친구들이랑 노는 걸 되게 좋아했는데 참사를 기점으로 사람이 많이 몰린 현장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서울 지하철도 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정말 많잖아요, 그때마다 저도 모르게 그 골목에서 봤던 모습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잦고, 무서워서 놀라게 되고. 그래서 이전처럼 시끌벅적하고 사람 많은 곳에는 잘 안 가게 됐어요."
정숙: "신체에도 트라우마 반응이 남아 있는 건데, 희진씨는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셨나요?"
희진: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피해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이전까지는 제가 직접적인 부상을 입지도 않았고, 그 골목 중심에 있던 것도 아니라서 피해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책임을 외부로 돌리기보다) 내가 더 조심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가끔, 가끔은 그때 골목에서 본 사람들 얼굴이 생각이 나요. 생각 안 하려고 하는데도 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이 생각나서..."
정숙: "상담을 받아보실 생각은 없으셨어요?"
희진: "참사에서 목숨을 잃었던 친구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잖아요. 다른 친구들 무리가 있는데 실제로 다른 친구 한 명은 상담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고로 친구를 잃은 게 본인에게 너무 큰 충격이라서 상담을 받았다고.
저도 당시에는 충격이 컸고 말씀드렸듯 그날 본 광경이 생각나긴 했거든요. 그때 상황이 생각나서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도 무서웠고요. 무엇보다 저랑 제일 친했던 친구가 그렇게 돼서 슬픔, 우울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가볼까 고민은 했지만 그 슬픔에 계속 매몰돼 있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담을 받지는 않았고 대신 참사 이후로 초등학교 친구들이랑 만나는 빈도가 늘었어요. 그 전엔 자주 못 만나던 친구들이었는데 참사를 계기로 그 관계가 소중해져서 더 자주 얼굴 보고 대화하고 힘든 일 있으면 나누고 하면서 괜찮아진 것 같아요."
서로를 감싸안는 말을 찾다
정숙: "말하자면 새로운 친구 모임이 생긴 거네요."
희진: "맞아요. 원래는 몇 년에 한 번 이렇게 만났던 것 같은데 친구 장례 이후로는 명절 때마다 같이 모여서 만나게 됐어요. 연휴에는 다들 본가에 있으니까. 지금 당진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랑은 더 연락이 자주 돼서 그 친구들이랑은 못해도 두세 달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고요. 많지는 않지만, 한 두 세명? 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들이에요."
정숙: "친구분들과 만나면 보통 어떤 대화 나누세요?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는지."
희진: "일단은 어렸을 때 있었던 추억들 이야기죠. 앞으로 우리들은 연락 자주하고 지내자, 이런 이야기도 하고요. 기억에 남는 얘기는… 참사로 잃은 소영이가 워낙 어렸을 때부터 꾸미는 걸 좋아했어요. 화장품 가게에서 새 화장품 사고 학교에서 화장하다가 선생님께 혼나고. 그때 선생님이 '소영이는 맨날 거울만 본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서 다들 같이 그 얘기하고 웃고…"
정숙: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희진씨가 위로 받거나, 회복하는 데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희진: "위로가 됐죠. 이제라도 소영이 있는 데 같이 가서 이야기도 한번 하고, 한번 보고 오자고 그렇게 자주 이야기하고. 다른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연락하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그전처럼 똑같이 사는 얘기 하면서...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자주 나누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가끔 친구들 통해서 소영이 부모님 안부를 전해 듣기도 하고.
소영이네 집은 당진 안에서도 더 시골에 있었거든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가끔 골목에서 부모님 마주치면 부모님 만났다, 이런 이야기 전해주고 했죠. 저는 1년에 한 두 번씩 어머님께 잘 지내시냐고, 어떻게 지내시냐고 문자 보내드리기도 하고요."
정숙: "어머님께 처음 연락드렸던 날 기억나세요?"
희진: "그 사건 있고 나서 바로 그 해에 한번 연락드렸고, 2023년 되는 새해에도 연락드렸던 기억이 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드리면서 요즘은 괜찮으시냐, 아프신 데는 없냐, 나중에 괜찮으시면 한번 찾아뵙겠다 이렇게 연락드렸어요. 어머니께서 엄청 힘들어하셨어요. 당시에는 대인기피증처럼 밖에도 잘 못 나가시고 힘들다고 그러셨었어요. 꿈에도 가끔 소영이가 나온다고, 이런 이야기도 나눴던 기억이 있네요.
그러고 나서 한 번은 또 저한테 먼저 연락을 주셨던 적도 있었어요. 2023년 4월 말. 이때는 제가 소영이 산소에 가서 편지를 놓고 왔던 때인데 그 편지를 어머니께서 보셨나 봐요. 편지 잘 봤다고, 잘 지내고 있냐고 그리고 어머니 기운 차리셔야 한다고 이런 연락을 주고 받았었어요. 어머니는 소영이 어렸을 적 추억 속에서 지내고 계신 것 같아요. 이후론 연락 못 드린 지 꽤 됐고요. 올해는 연락을 못 드렸네요."
안부를 묻는 일 너머에 필요한 마음
정숙: "소영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또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게 희진씨에겐 큰 위로가 됐겠어요. 희진씨는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조건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희진: "이태원 참사가 있던 날 현장 상황이 정말 무질서했어요. 그렇게 인파가 몰리는데 안전을 위한 경찰 인력 배치나 질서 유지를 위한 지원이 체계적이지 않았잖아요. 거기 있던 사람들은 핼러윈을 즐기려고 이태원에 간 건데 압사로 돌아가셨으니 너무 안타까운 사고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행사가 있으면 안전 방침이 위에서부터 내려와서 당일 어떻게 할 건지 사전에 계획하고 하잖아요. 그날 이태원엔 그런 과정이 없었던 거고요.
저도 공무원이지만 행사를 진행하는 주체일 때면 늘 행사가 있기 전에 사전 회의를 하거든요. 인파가 몰릴 걸 대비해서 참가 인원에 맞는 안전 요원들을 현장에 배치하고 행사장 내부에 구급 처치를 할 수 있는 인력도 배치하고. 통신 체계도 갖추고요. 사고가 있을 경우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게끔 경찰, 소방 같은 유관기관들에 연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요. 순찰대나 자율방재단 등 시민들의 도움을 받는 일도 있고요. 설령 용산시에서 주최한 행사가 아니었더라도 핼러윈 당일 이태원에는 전국 각지, 또 외국인들까지도 몰리잖아요. 전례가 있다면 당연히 시에서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죠."

▲ 참사 이후 추모 포스트잇이 붙은 골목 풍경
이상민
정숙: "올해로 이태원 참사 3주기인데요. 시민들에게 이태원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희진: "올해는 안전 요원들도 잘 배치돼서 통제가 가능한 환경 아래 핼러윈 행사가 진행되면 좋겠어요.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대해선 복합적인 마음이 드는데요. 이태원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이태원에 놀러가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그 공간에서 참사가 있었는데 마치 없었던 일처럼 신나게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이태원에 가고 싶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어요. 그런데 그 마음 아래엔 이태원에서 있었던 참사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애도, 추모하는 마음이 있어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아직 뉴스 댓글 중에는 '누가 놀러가라고 했냐', '우리나라 전통도 아닌 외국 전통 파티에 가서 죽은 건데' 이런 식의 희생자를 모욕하는 댓글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돌아가신 분들은 정말 안타깝게 희생된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 있었던 안타까운 사고로 받아들이고 앞으론 이런 참사가 없도록 예방 방안을 마련하는 데 생각이 모였으면 좋겠어요."
<끝>
부끄러운 일이지만 대학 동기인 희진이 이태원 참사에서 겪은 상실을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졸업 이후론 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묵혀둔 슬픔을 꺼내보이기란 부담스러웠을 것도 같다. 어떤 이유에서든 퍽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희진은 평소 불만이나 아쉬움, 분노, 슬픔 같은 감정을 안으로 삼키는 성향의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에 참사 이후 홀로 무언갈 버티며 지내왔을 모습이 그려졌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희진의 곁에 동질의 상실감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고향 친구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친구가 아닌 인터뷰이로 '희진씨'를 마주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한때 참사에 관해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다던 희진씨가 점차 회복되기 시작한 건 고향 친구들과 다시 모이면서부터다. 그건 소영씨의 장례가 있던 날로부터 얼마 뒤의 일. 유년 시절을 공유한 초등학교 동창 여럿과 죽은 친구를 기억하고 철없던 시절 추억을 나누는 자리가 잦아졌다. 처음엔 괴로운 마음이 더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무리와의 대화는 삶을 회복해 나가도록 희진씨를 이끌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참사 이후 회복의 과정에서 '느슨한 연대(weak ties)'가 발휘하는 힘을 보여준다. 이는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가 제안한 개념인데, 고향 친구들 무리와의 '느슨한 연결'이 희진씨 회복의 통로가 되어줬다고 본다.
희진씨와의 인터뷰를 돌이켜보며 생각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슬픔을 말할 공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참사 이후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를 향한 혐오의 말은 여전히 사그라드는 법이 없다. 적어도 그러한 공론장에 상처 입은 이들이 '말할 공간'은 없다. 참사가 야기한 죽음을 이야기하는 일은 물론 늘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 불편한 감각이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차단하게끔 둘 수는 없다. 필연 참사로 인한 고통을 홀로 감당하도록 개인을 내몰게 되기에. 공동체가 함께 그 슬픔을 나눌 순 없는 걸까? 슬픔이 고립되지 않고 서로에게 닿을 수 있도록. 쉽게 풀리지 않을 숙제가 주어진 것만 같다.
글 : 이정숙
* 이 활동은 재단법인 숲과나눔의 2025 풀씨 사업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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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해 고민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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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건, '그날 왜 이태원에 갔냐'는 질책이 아니라 느슨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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