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김보영, 새파란상상, 2020. 리뷰 도서의 표지 이미지
새파란상상
책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미래의 우주 여행과 남녀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얽어 만든 소설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더욱이 작자는 이 작품을 창작한 동기가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 '청혼 의식(프러포즈)'을 하기 위한 의뢰인의 청탁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처음에는 청혼 의식의 당사자인 두 사람만을 위해 창작한 소설이었지만, 책으로 출간됨으로써 이제 더 많은 독자들이 접할 수 있게 된 작품이다.
결혼식을 앞둔 인물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우주여행을 선택한다는 설정, 그리고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의 시간은 멈춰있는 지구의 시간 흐름과는 다르다는 것이 과학소설(SF)로서 이 작품에 활용된 기법이라고 이해된다. 이 작품은 결혼을 앞두고 우주여행을 떠난 남성이 신부가 될 상대방에게 보내는 편지 15편이 차례로 제시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항해 1일째, 지구 시간으로 1일째'로 설정된 '첫 번째 편지'에서는 결혼식을 앞두고 우주여행을 떠나는 인물의 심정을 연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상세하게 풀어내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항해 1개월 째, 지구 시간으로 4년 4개월째'로 소개된 '두 번째 편지'의 항목에서, 독자들은 그 여행의 결과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결혼식 이후 행복한 삶을 꿈꿨던 첫 번째 편지의 내용과 달리, 다음 편지에서는 결혼식이 과연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인물의 불안감이 조금씩 내비치고 있다. 공간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같을 수 없다는 '상대성 원리'에 입각한 설정으로, 이 작품은 애초 우주여행을 떠난 남자와 상대방의 시간이 어긋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항해 7년 2개월째, 지구 시간으로 (어쩌면) 84년 후'로 설정된 '열 번째 편지'는 이미 결혼식이 불가능하게 되었음을 드러내며, 다양한 상황으로 항해가 지속됨에 따라 지구의 시간마저 '어쩌면'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계산할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시간과 공간의 어긋남'이라는 상황에서도 결혼을 하기로 한 상대에 대한 간절한 감정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적인 주제라고 이해된다.
아마도 청혼에 사용하도록 청탁했던 이들 역시 이러한 주제에 대해 감동을 했을 터이고, 그것은 책의 말미에 붙은 청혼 의식의 당사자 두 사람이 남긴 글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특히 '열 번째 편지'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구절을 제시해 본다.
"20세기에 살았던 무슨 과학자가 그랬는데, 외계인은 분명히 있지만 만날 수 없다고.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별과 별 사이를 막고 있기 때문에. 지구가 45억 년간 우주에 있었다 해도 인류는 겨우 200만 년 전에 태어났고, 식탁에서 지적인 대화를 나누게 된 건 고작 2만 년 정도였다고, 외계인이 우리와 만나 차라도 나누려면 그처럼 먼 거리를 달려와 그처럼 짧은 시간 사이에 멈춰야 한다고."
길어야 100년 정도를 사는 인간이 접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지구 혹은 우주의 역사에서 '고작 2만 년' 전에 인류가 말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시간과 공간의 엇갈림 속에서 누군가 우주 여행을 선택하는 순간 이전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또한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없음을 분명히 제시하는 대목이라고 이해되었다.
배(우주선)를 타고 우주여행을 떠났던 일행들이 지구에 도착하면서 마주친 모습은 미래의 희망찬 풍경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쿠데타)이나 핵전쟁의 결과로 인류의 삶의 현장이 철저히 파괴되어 폐허처럼 변해버린 풍경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설정 역시 작가가 바라보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나름의 설정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끝없이 전개되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미래의 삶에 희망으로 다가오기보다 오히려 더 암울해 질 수 있음을 진단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항해 10년 2개월째, 지구 시간 모름'이라는 설정의 '열네 번째 편지'와 지구의 시간조차 기록할 수 없는 '열다섯 번째 편지'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그리하여 "항구라고 부를 만한 건 더 이상 거기 없"으며, 설령 "당신이 온다 해도 이제는 못 찾아올 거 같"은 환경이 그곳에 도착한 인물의 눈앞에 펼쳐 있을 뿐이다. 아마도 오래 전에 결혼식장에서 기다리며 간절한 마음을 담은 "기다리고 있어 내가 여기 있어"라는 상대방의 쪽지를 발견하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 되는데, 등장인물도 결코 만날 수 없는 상대방의 마음을 접하고 조금은 위안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낭만'과는 다르고 결론 역시 비관적으로 끝 맺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혼 상대방을 향한 마음만은 간직하고 있다는 작품의 설정을 이른바 'SF 로맨스 소설'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듯하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김보영 (지은이),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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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주로 책과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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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포즈를 위해 시작된 소설, '영원한 마음'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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