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시 포남동에 위치한 '소동산 봉수대'. 주변을 정비한 이후 봉수대 일대가 마을의 축제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준수
삼주 연속 도전기, 어달산 봉수대를 향하여
어달산 봉수대를 처음 방문한 날은 일주일째 비가 주룩주룩 내린 직후였다. 등산로는 진창이 되어있었다. 산에서 크고 작은 물줄기가 계속 흘러나왔다. 강릉에서 동해까지 내려온 고생이 아까워 등산로 옆 산길로 올라가 보았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이 계속 미끌거렸다. 봉수대는 고도가 높은 곳에 세워야 하니 길이 험한 것은 당연하다. 도저히 진행이 불가해 다음 주말을 노리기로 했다.
그러나 비는 그다음 주에도 계속 내렸다. 나는 봉수대에 근무교대를 해야만 하는 고려시대 병사의 심정으로 다시 봉수대에 도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길의 상황은 더 심각해져 있었다. 소형 굴착기가 힘으로 밀고 올라갔는지, 진흙 길 깊이 무한궤도 자국이 뚜렷했다.
전문 등산화를 착용하고 왔건만 100미터를 채 올라가지 못하고 바지만 엉망으로 만든 채 내려왔다. 봉수대는 험지에 세워야만 적에게 쉽게 점령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공감하며 다음 기회를 노렸다.
천만다행으로 비는 완전히 그쳤다.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다. 일주일의 시간이 흐른 어느 주말, 나는 아이들을 양손에 잡고 어달산 봉수대에 다시 도전했다. 물기가 날아간 등산로는 화성 표면(영화에 나오는 메마르고 기괴한) 같았다. 2022년 산불에 봉수대도 피해를 입었다는데 지금은 괜찮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안고 정상에 올랐다. 연기를 피우면 선명하게 잘 보일 것 같은 맑은 날이었다.
봉수대는 기단만 남아있고 봉화를 올리는 시설은 없었다. 봉수대를 설명하는 안내판의 글자도 지워져 있었다. 산불에 그을려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1996년도에 만든 돌로 된 안내석은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풍경이 탁월해서 실망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봉수대 기단 옆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바다를 관찰하고, 다른 산의 봉수대와 연락하기에는 최적의 입지라는 확신이 들었다. 과거에는 밤낮으로 연기와 불을 피워 올렸을 것이다.
안내석에 따르면 어달산 봉수대는 강릉의 오근산과 삼척 광진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문득 강릉의 '소동산 봉수대'처럼 복원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수는 안전의 연결고리를 상징한다.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재산을 지키는 연대의 시설은 현대에도 보존할 가치가 있지 않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났다. 강릉의 소동산 봉수대 일대는 공원처럼 꾸며져 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달산 봉수는 고려시대에 처음 세워졌으므로 '소동산 봉수대' 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는 재조명받지 않을까 싶다.

▲ 정동심곡바다부채길 옆 '투구바위'. 강감찬 장군이 육발 호랑이를 쫓아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이준수
사실과 믿음 사이, 전설이 만든 바위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는 강감찬 장군의 전설이 깃든 '투구바위'이다. 투구바위는 '국가유산'도 아니고 '강원도기념물'도 아니다.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을 열심히 걷다 보면 코스 중간쯤에 등장하는 해안가 바위다. 그런데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옆에서 보면 꼭 투구를 쓴 장수처럼 보인다.
강릉에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과 관련한 설화가 여럿 전해 내려온다. 그중 하나가 밤재라는 고개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육발호랑이'를 강감찬 장군이 도술로 물리쳤다는 이야기다.
"아빠, 진짜로 강감찬 장군이 강릉 부사였어? 변신한 호랑이도 물리치고?"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겠지. 강감찬 장군은 고려의 영웅이었거든. 귀주대첩으로 거란족을 깨부순."
"그럼 투구 바위는 그냥 강감찬 장군이라고 믿는 거야?"
"응, 때로는 진짜가 아니어도 믿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니까."
강감찬 장군을 닮은(혹은 믿고 싶은) 바위가 우뚝 서서 동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든든했다. 외적을 막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는 존재도 필요하다. 바다부채길을 걷던 많은 관광객이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바위를 지켜보았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드물지 않았다. 투구바위는 여전히 호국의 전설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은 누군가의 피로 지켜낸 곳이다. 성벽과 봉수대와 투구바위에서 나는 옛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목숨을 걸고 살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감사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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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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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라 하기엔 너무 위대했다... 강원도에 남은 천년의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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