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형무소 망루 사진: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된 대전형무소의 감시 망루가 문화유산으로 보존되어 있다
여경수
지금 대전형무소 자리는 도심지 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으나, 감시 시설인 망루와 우물 같은 시설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대전형무소의 일부는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적법 절차 없이 학살된 수천 명
해방 이후 제주 4.3사건과 여순 10.19사건과 같은 정치적 사건 이래, 사상범이나 무고한 이들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문제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수천 명의 재소자들이 적법 절차 없이 학살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학살된 장소는 대전에서 옥천으로 넘어가는 골령골(원래 곤룡골)이다. 학살된 자리에서 유해가 계속 발견되자, 사람들은 곤룡골을 골령골로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골령골로 더 알려져 있다.
주한미국대사관 소속 육군무관 에드워드 중령은 1950년 9월 '한국에서의 정치범 처형'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학살 현장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 보고서에는 미 극동사령부 주한연락사무소 총책임자였던 애버트 소령이 촬영한 여러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에드워드 중령의 보고서에는 7월 첫째 주 3일간 1800여 명이 학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는 이곳에서 발생한 대전 산내 집단학살사건을 '국가공권력에 의한 불법 학살'로 규정했다. 또한 전체 골령골 학살 희생자는 최소 1800명에서 최대 7000명으로 추정된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대전을 점령한 인민군도 퇴각하면서 대전형무소에서 1400여 명을 학살했다. 이처럼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우리나라 군경 뿐 아니라 북한군에 의해서도 반복되었다.

▲ 골령골 사진: 한국전쟁 당시 수천 명이 학살된 골령골 현장
여경수
'진실과 화해의 숲'을 꿈꾸며
10.19연구소가 이번 답사지로 산내 골령골을 선정한 이유는 명확하다. 여순 10.19사건으로 상당수 인원들이 대전형무소로 투옥되었으며, 그들이 전쟁 과정에서 학살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유해는 신원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골령골 현장에 서니, 오랜 세월 동안 여전히 이름 없이 묻혀 있는 이들의 존재가 가슴을 무겁게 했다. 함께 답사에 참여한 한 분과의 대화 중에 그의 친척이 여순 10.19사건으로 투옥된 이후 지금까지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은 자신의 친척도 골령골에서 학살되었을 것 같다고 했다. 학살의 과거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와 유가족들은 이곳을 '진실과 화해의 숲'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추모 공간 조성을 위한 활동도 계속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길 바란다. 골령골이 비극의 장소에서 진실과 화해의 공간으로 거듭나는 그날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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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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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령골' 현장에서 바라 본 여순사건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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