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부터 청년의 노동은 사회의 동네 북이 되어 너덜너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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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청춘들이 같은 밤을 견디고 있다. 강남, 여의도, 성수.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으로 낮과 밤을 혼동하는 곳. 누군가는 야경이 예쁘다며 셔터를 누르지만, 좀 더 앵글을 확대하면 모니터 앞에서 삼각 김밥 하나로 야근을 버티는 청춘들이 있다.
도시 숲을 지나 조금 더 외곽으로 앵글을 옮기면, 안전 장비 없이 현장을 뛰어다니는 청춘들이 있다. 손이 잘리고, 시력을 잃고, 허리가 꺾여도. 상사의 지시를 순수하게 따르는 어린 청년들이 있다.
지옥을 버티다 못해 사직서를 꺼내 들면 "요즘 MZ들은 회사를 쉽게 그만둔다"며 손가락질 한다. 오냐 오냐 커와서, 제대로 힘들어본 적이 없어서, 나약해 빠져서. 그러니 버틴다, 누군가의 배를 불리려 나의 청춘이 봄을 잃어도.
끝내 견디지 못해 스스로 삶을 끝내면 똑같은 비난이 돌아온다. 퇴사할 용기도 없다며, 부모 맘 찢어지는 줄 모른다며, 멘탈이 약하다며. 언젠가부터 청년의 노동은 사회의 동네 북이 되어 너덜너덜해졌다.
요즘 청년들의 노동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은 '잡플래닛'이다. 주로 젊은 층이 이용하는 만큼 솔직한 취업 후기들이 줄이어 있다. 일부 기업들은 리뷰에서 절규와 고통, 울분, 분노가 동시에 읽힌다. '야근이 당연시되는 회사', 버티지 못하면 나약하다고 욕하는 회사', '신입 직원에게 잡무 몰아주는 회사'… 런던베이글뮤지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 존재하는 수 많은 일터들이 청년의 눈물을 갈아 넣으며 운영되고 있다.
그 회사를 선택한 청년들에게 잘못을 묻는 어른들이 없길 바란다. 회사 규모나 형태를 떠나서 노동은 어디서나 존중 받아야 한다. 법망을 피해 법정 노동 시간을 뻔뻔하게 어기는 회사들. '무조건 견뎌야 한다', '야근은 당연하다' 등의 말로 청년을 벼랑 끝으로 몰고, 노동의 가치를 에어컨 필터 만큼이나 소모품으로 전락 시키는 대표들.
이미 많은 젊음이 일터에서 스러졌다. 일주일에도 두 세 건 씩 청년의 죽음이 읽힌다. 스크린 도어를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죽은 19살. 빵 공장에서 안전장치 미비로 기계에 끼여 사망한 23살. 오픈 마켓 플랫폼 배송 기사로 야간 근무를 거듭하다 죽은 27살. 베이글 만들며 주 80시간 노동하다 과로사한 26살.

▲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31)가 30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에서 청년 노동자 과로사 의혹이 불거진 런던베이글뮤지엄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지영
사람은 왜 이 세상에 왔을까
사람은 왜 이 세상에 왔을까. 나는 자주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를 벅찰 만큼 사랑하고, 후회 없이 도전도 하고, 종착점까지 달려도 보라고. 사람이니까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이 세상에 발을 디뎠다.
'일'은 세상을 살아가는 수 많은 방식 중 하나다. 일 이외에도 한 번의 생에서 경험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니 일 때문에 그 누구도 스스로 삶을 끊어서도, 죽임을 당해서도 안 된다. 우린, 끝까지 살아가려 이 세상에 왔으니까.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 죽었다. 누군가는 질병을 얻었고, 누군가는 유산을 했으며, 누군가는 우울증을 앓았다. 모두가 연말을 기다리고 축하하는 와중에도,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조차 지옥인 사람들이 바로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다.
감히 이름 모를 윗분들께 당부하자면. 노동이란 단어가 가진 무게를 제발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어떤 가치보다 귀하고 숭고하게 여기길 바란다. 특히 청년들이 일터에서 말라 죽는 게 아닌, 만개한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업무 량이 많으면 인력을 추가 배치하거나 균등한 업무 분담을 통해, 위험한 현장이면 보조 인력을 붙이거나 안전 장비의 철저한 구비를 통해, 부당한 상황이 생기면 사내 불만함 접수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분위기 조성을 통해.
노동자가 없으면 일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번드르르한 브랜드 가치를 주창하고, 회삿돈 아끼려 아등바등해도. 노동자가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노동자는 노동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노동자가, 아니 사람이 뒷전으로 밀린 일터는 존재해선 안 된다.
더 이상 일하다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그냥 견디라'는 말로 또 한 번의 고통을 떠안기지 않게. 모두가 끝까지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일터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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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없다고 그냥 견디래" 이게 청년 노동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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