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사지와 월정사의 무릎 꿇은 보살상 강릉 신복사지와 월정사에는 탑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보살상이 있다. 월정사 보살상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월정사 박물관에 있다.
이병록
평창의 옛 모습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일부 엿볼 수 있다. 그는 14살에 강릉 부사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횡성에 붙어있는 방림면 운교역에서 대관령까지 숲 속에서 해를 보지 못한 채 무려 나흘 동안 걸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지 않아서, 개간 되어 촌락이 이어지고 산에는 한치의 나무도 안 남아 있었다고 쓰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는데, 농목축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상전벽해가 될 수 있다. 대관령 양떼목장은 오늘날 관광지이지만, 옛날에는 산이었을 뿐이다. 산비탈을 일구며 그 땅의 본질은 고랭지 목축의 역사에 있다.
미탄면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볍씨 육백 말을 뿌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평원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축구장 여섯 개 정도를 합쳐 놓은 넓은 초원이다. 화전민이 정착 농민으로 변한 대표적인 곳이다. 해발 1200미터에 사람이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감자와 배추, 메밀을 심고, 그 속에서 마을을 이루었다. <메밀꽃 필 무렵>은 척박한 농업 현실을 낭만적인 문학으로 만들어 버렸다.
평창 아리랑은 곡조나 가사가 인근의 정선 아리랑과 남매처럼 닮았다. 미탄면 청옥산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화전 터전에서 불렀던 노래다. 성마령을 넘나들던 정선의 선비들에 의해 옮겨져 평창 아라리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월정사의 보살상과 강릉 신복사지의 보살상 비교를 위해 월정사에 왔다. 탑을 향한 자세, 무릎을 꿇은 몸짓은 명주(강릉)권 지방 불교 미술의 한 흐름을 이룬다. 월정사 보살상은 더 후대의 변화 요소가 섞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을 보고는 신복사지 보살상이 더 예술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했다. 진부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검색을 하니, 월정사 보살상 진품은 국보로 승격되었고, 월정사 승보 박물관에 있다.
다음날 정선에서도 아리랑 박물관을 못 보고, 오후 늦게 영월에 넘어가서도 닫힌 장릉을 담 너머로 봐야만 했다. 휴일과 월요일을 포함한 여행이 딱 좋은데, 월요일의 덫에 단단히 걸리고 말았다. 퇴직한 사람이 많아지는 고령화 사회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관광지 근무 체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함을 느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이 이곳을 세계에 알렸지만, 평창의 진짜 얼굴은 평창강과 오대산, 대관령 사이를 지켜온 사람들이다. 자연과 사람이 오랫동안 공존해 온 삶의 현장이다. 대관령을 넘는 바람, 메밀꽃 향기, 올림픽 시설에 남아 있는 현대의 흔적까지 모두 평창이라는 지역과 시간 속에서 문화 지층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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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해군 제독
정치학 박사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전)서울시안보정책자문위원
전)합동참모본부발전연구위원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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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인 문화지층, 평창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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