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문화지층, 평창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이병록의 신대동여지도, 대관령 안쪽 마을 평창

등록 2025.11.05 11:26수정 2025.11.0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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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 방문한 평창은 나에게 '겨울 올림픽의 도시'라는 표상보다 먼저, 산과 산 사이 바람이 드나드는 길목으로 다가왔다. 평창은 전국 군 단위 중 세 번째로 넓은 면적을 가진 곳이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고원지대라 벼농사를 짓는 마을은 농경지 10%도 안 되는, 넓지만 살만한 땅이 드문, 그래서 더 귀하게 살아온 고을이다.

평창은 강릉과 대관령을 사이에 두고 "대관령 안쪽 사람들", 혹은 "대관령 바깥쪽 사람들" 사이의 관계인 것이다. 강릉단오제는 평창군에 있는 대관령에서 시작된다. 산신당과 국사성황당에 제사를 올리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평창은 기도의 땅이고, 강릉은 축제의 땅이다. 나는 사당이 있는 대관령면이 강릉 지역인 줄 알았는데, 평창이 대관령 이름을 차지했다.


횡성과 홍천에 연한 봉평면에 전하는 판관대(용평면 백옥포리) 전설에 의하면, 율곡 이이의 부친이 강릉으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주막에서 하룻밤을 쉬게 되었다. 용꿈을 꾼 주모가 잠자리를 같이할 것을 요청했으나 뿌리치고, 강릉에 도착해 역시 용꿈을 꾼 신사임당과 잠자리를 같이해 율곡을 잉태했다는 이야기다.

평창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만들어진 얘기다. 여기를 지나면 예부터 강릉 길목이었던 진부면과 대관령면이 나오는 길이다. 진부는 대관령을 넘던 상인과 마부들이 하룻밤을 묵던 진부 객주 거리가 있었다. 지금은 '하진부' 마을 이름 속에 그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평창의 독특한 자연환경은 평창 사람들의 삶을 규정했고, 문학과 종교, 그리고 근현대의 개발까지 겹겹이 쌓아 오늘의 평창을 만들었다.

자연과 사람의 오랜 공존

신복사지와 월정사의 무릎 꿇은 보살상 강릉 신복사지와 월정사에는 탑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보살상이 있다. 월정사 보살상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월정사 박물관에 있다.
▲신복사지와 월정사의 무릎 꿇은 보살상 강릉 신복사지와 월정사에는 탑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보살상이 있다. 월정사 보살상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월정사 박물관에 있다. 이병록

평창의 옛 모습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일부 엿볼 수 있다. 그는 14살에 강릉 부사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횡성에 붙어있는 방림면 운교역에서 대관령까지 숲 속에서 해를 보지 못한 채 무려 나흘 동안 걸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지 않아서, 개간 되어 촌락이 이어지고 산에는 한치의 나무도 안 남아 있었다고 쓰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는데, 농목축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상전벽해가 될 수 있다. 대관령 양떼목장은 오늘날 관광지이지만, 옛날에는 산이었을 뿐이다. 산비탈을 일구며 그 땅의 본질은 고랭지 목축의 역사에 있다.


미탄면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볍씨 육백 말을 뿌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평원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축구장 여섯 개 정도를 합쳐 놓은 넓은 초원이다. 화전민이 정착 농민으로 변한 대표적인 곳이다. 해발 1200미터에 사람이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감자와 배추, 메밀을 심고, 그 속에서 마을을 이루었다. <메밀꽃 필 무렵>은 척박한 농업 현실을 낭만적인 문학으로 만들어 버렸다.

평창 아리랑은 곡조나 가사가 인근의 정선 아리랑과 남매처럼 닮았다. 미탄면 청옥산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화전 터전에서 불렀던 노래다. 성마령을 넘나들던 정선의 선비들에 의해 옮겨져 평창 아라리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월정사의 보살상과 강릉 신복사지의 보살상 비교를 위해 월정사에 왔다. 탑을 향한 자세, 무릎을 꿇은 몸짓은 명주(강릉)권 지방 불교 미술의 한 흐름을 이룬다. 월정사 보살상은 더 후대의 변화 요소가 섞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을 보고는 신복사지 보살상이 더 예술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했다. 진부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검색을 하니, 월정사 보살상 진품은 국보로 승격되었고, 월정사 승보 박물관에 있다.

다음날 정선에서도 아리랑 박물관을 못 보고, 오후 늦게 영월에 넘어가서도 닫힌 장릉을 담 너머로 봐야만 했다. 휴일과 월요일을 포함한 여행이 딱 좋은데, 월요일의 덫에 단단히 걸리고 말았다. 퇴직한 사람이 많아지는 고령화 사회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관광지 근무 체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함을 느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이 이곳을 세계에 알렸지만, 평창의 진짜 얼굴은 평창강과 오대산, 대관령 사이를 지켜온 사람들이다. 자연과 사람이 오랫동안 공존해 온 삶의 현장이다. 대관령을 넘는 바람, 메밀꽃 향기, 올림픽 시설에 남아 있는 현대의 흔적까지 모두 평창이라는 지역과 시간 속에서 문화 지층을 이루고 있다.
#평창 #월정사 #육백마지기 #판관대 #대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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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해군 제독 정치학 박사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전)서울시안보정책자문위원 전)합동참모본부발전연구위원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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