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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앞둔 고3 교실의 '취침모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주장] 만신창이가 된 우리 공교육... 교육 정책의 목표는 '아이들의 행복'이어야 한다

등록 2025.11.09 11:14수정 2025.11.0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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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D-10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수능 D-10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부작용이 없는 완벽한 제도란 있을 수 없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긍정적인 효과 뒤에는 예상하지 못한 폐해가 드러나기도 한다. 단지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제도가 도입된 취지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느냐 여부다. 평가와 판단의 주체가 국민임은 물론이다.

제도의 도입과 시행 과정은 흡사 '두더지 잡기 게임'을 연상시킨다. 운영하다 부작용이 생기면, 그걸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제도가 만들어진다. 새로 도입된 제도 역시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생겨나고, 또다시 그것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가 도입되는 '무한 루프'다.

그나마 대증요법일지언정 개선책이 이어지면 다행이다. 대개 부작용은 부나방 같은 언론에 의해서 과장되어 제도의 무용론이 제기되고, 급기야 '구관이 명관'이라는 여론까지 조성된다. 결국엔 교육개혁의 동력이 상실되면서, 전진도 후진도 못하는 '기능부전' 상태에 빠진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조변석개의 대입 제도다. 역대 정부마다 교육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국민의 뇌리에 '성공'의 기억은 없다. 오죽하면 '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우리나라 교육 정책엔 교육이 없다'는 조롱이 난무할까.

정권마다 '계륵'처럼 여겨진 교육 정책

교육 정책에 관한 한, 역대 정부 예외 없이 실패와 좌절의 역사가 반복됐다. 정권 초기엔 거창한 청사진을 내걸었지만, 말기엔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를 슬그머니 내렸다. 정권마다 교육 정책은 '계륵'처럼 여겨졌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도 교육 공약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기실 교육 공약은 '표'로 연결되기 어렵다. 교육 정책은 아이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지만, 정작 그들에겐 투표권이 없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커녕 광역자치단체의 교육감조차 제 손으로 뽑을 수 없다. 부모 세대가 선택한 교육감이 자녀 세대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다.


온 국민이 모두 '교육 전문가'를 자처하는 나라에서, 정치인들이 유독 교육 정책 분야에 관심을 쏟지 않는 건 그래서다. 과거의 성공 사례가 드물다는 경험칙과 선거 때 '표'가 안 된다는 현실 인식이 포개진 결과다. 정치인들에겐 나름의 '합리적' 판단과 선택인 셈이다.

교육 정책만큼 여와 야, 진보와 보수의 이념 구분이 어려운 분야는 없다. 정치와 외교, 경제와 사회 분야의 정책은 정권에 따라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는데, 교육 정책은 도입 취지조차 모호한 게 수두룩하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이 정권의 입맛에 부화뇌동한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역대 정부의 교육 목표는 부박한 여론을 홀리는 '말 잔치'가 대부분이었다. 시대정신은 고사하고 당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사안을 슬쩍 끼워 넣는 식으로 대응했다. 우리 교육의 근본 문제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부족하다 보니 문제 해결은 요원해지고 온갖 폐단만 누적되어 갔다.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 넘게 반대

전국의 고등학교를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한 고교학점제도 도입 취지를 제대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 넘게 반대한다는 통계까지 나온 마당이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 공교육에 대한 총체적 불신의 결과다.

단언컨대, 고교학점제로 우리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할 수는 없다. 선후 관계가 틀렸을뿐더러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익히 경험했듯, 공교육에 대한 신뢰 회복 없이는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온갖 편법과 불법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만신창이가 된 우리 공교육. 징후는 이미 뚜렷하다.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10대의 자살률은 이미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아이들의 학교생활 만족도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는 통계도 더는 새삼스럽지 않다. 최근 교실의 극우화는 그 후과다.

교육의 양극화도 우려스럽다. 계량화된 지표로 평가되는 성적의 양극화는 단순히 볼 사안이 아니다. 소수의 상위권과 대다수의 하위권으로 대별 되는 양상은 학교가 공부하는 아이들과 아예 공부에 담을 쌓아버린 아이들이 물과 기름처럼 생활하는 공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10대 학창 시절 동안 공부라는 단어를 아예 마음속에서 지워버린 아이들이 태반이라는 이야기다. 교과서 내용의 맥락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도 대학 진학엔 어려움이 없다. 대학의 입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자 수보다 많아져서다.

교육개혁이 아니라 '교육 혁명'이 필요하다

수능 전 마지막 전국연합학력평가 2025학년도 10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14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효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답안지에 이름을 적고 있다.
▲수능 전 마지막 전국연합학력평가 2025학년도 10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14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효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답안지에 이름을 적고 있다. 연합뉴스

수능을 채 일주일도 남겨놓지 않은 지금 고3 교실은 열에 한두 명을 제외하곤 전원 '취침 모드'다. 지난 수시 모집 때 일찌감치 대학에 합격한 아이들도 있지만, 어차피 수능 점수가 당일 컨디션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라서 일말의 긴장감도 없다. 금쪽같은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다.

학교가 미래세대를 길러내는 교육 공간이라면,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은 소수의 상위권에게만 부합하는 정의다. 나머지 대다수는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오갈 뿐이다. 대학 진학 말고는 학교가 자신에게 무슨 의미인지 답하는 아이가 거의 없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남 이야기하듯 첫 단추가 잘못 꿰였다고 푸념한다고 바뀔 건 없다. 지금은 첫 단추를 새로 꿰여야 할 때다. 교육개혁이 아니라 '교육 혁명'이 필요하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제도 개혁만으로는 '예정된 실패'만 반복될 뿐이다.

27년째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직 교사로서 제안한다. 지엽적인 제도에 매몰되지 말고 우리 교육의 목표부터 재설정하자.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정해진 뒤라야 실효적인 방안이 모색될 수 있다. 적어도 교육의 영역만큼은 제도와 기술이 아닌, 철학의 문제다.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후 경험한 역대 정부의 교육 목표를 살펴봤다. 죄다 산업의 고도화에 맞춤한 인재의 양성, 창의성과 인성 교육의 강화, 교육 기회의 평등 추구 등을 첫머리에 뒀다. 요약하면, 공정한 대입 관리와 착실하고 유능한 노동력을 육성하는 게 핵심 목표라는 거다.

교육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본 것이다. 과거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과학기술부'를 거쳐 '교육부'로 이름을 바꾼 지 10년도 더 지났지만, 사람을 그가 가진 재능과 기술로 재단하려는 발상은 여전하다. '인적자원'을 뺀 건, 사람은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철학의 소산이었다.

'인재 양성'에 혈안이 된 사회

교육 정책의 목표는 '아이들의 행복'이어야 마땅하다. 전가의 보도처럼 수십 년째 사용된 '인재 양성'이라는 표현부터 삭제하자. 특별한 재능과 기술을 지닌 인재를 상찬하는 건, 다수의 '쓸모없는' 이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다. '인재 양성'에 혈안이 된 사회에서 대다수의 '낙오자'는 필연이다.

'인재 양성'에 대한 강박은 무한경쟁을 당연시하고, 대다수의 10대 학창 시절을 좌절과 열패감에 휩싸여 보내게 만든다. 아예 공부에 담을 쌓은 채 등교하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아이들은 그렇게 양산된다. '한 명의 엘리트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야만의 경구를 폐기해야 한다.

아이들은 행복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미래 사회를 선도하는 창의 융합형 인재'는 특별한 재능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에 길들어 10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인재'가 과연 공동체에 어떤 보탬이 될까.

곧 수능이 치러진다. 끝나면 언론마다 수능 성적을 지역별, 학교별로 비교하는 경마식 보도가 이어질 테다. 서열화한 수능 성적은 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되고, 학교 현장에는 분발을 촉구하는 채찍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안타깝게도 부박한 여론은 '관행'의 편이다.

굳이 교육의 질을 평가하고 학교를 한 줄 세우고 싶다면, 수능 성적과 명문대 진학률 따위가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생활 만족도를 기준 삼으면 어떨까. 지표를 개발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GDP(국내 총생산) 대신 GNH(국내 총행복)을 우선시하는 나라도 있잖은가.
#교육개혁 #고교학점제 #교실의극우화 #대학수학능력시험 #역대정부의교육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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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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