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옥 시집 『꽃밥』 김종옥 신작 시집 『꽃밥』
정병진
그는 시 '밥꽃'에서 "배고픔 설음 달래주는 밥꽃 / 배고픔 멸시 천대 모멸감 설워 서러워 / 목매단 아낙네의 순정"을 노래한다. 또한 "치매로 할멈만 찾는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지쳐 있는 할머니의 '미운 정'도 읽어낸다. 그 할매는 "때론 확 죽고 싶다가도 / 미운 정도 정이라고 / 자신만 바라본 할아범 곁으로 또 가는" 속정 깊은 분, "적막강산 시골"을 지키는 고목나무 같은 존재다.
사실 시인 자신도 기회만 있으면 도시로 나가고 싶었다. 백발의 노인들만 남은 시골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떠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선배의 조용한 조언이 그의 마음을 붙잡았다.
"목사로서 진실하게, 사랑으로 살면 되지. 뭐 다른 게 있겠나. 너도 그저 시골 어르신들이랑 재밌게, 항꾸네 잘 살아라."
그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도시 목회에서 교인들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이제는 "가난한 신부처럼 / 그저 그분 향한 한없는 사랑과 성실뿐"인 선배의 진심 어린 말이라 그 들뜬 마음을 다잡게 하였다. 시인은 다시 마을로 돌아와 자신을 바라본다.
"우두커니 큰 당산나무 앞에 서 있는 / 나 자신이 더욱 작아 보인다 / 비뚤비뚤 살아온 내 삶의 발자국 / 동네를 지켜내지도 못한 부끄러운 족적 / 저들의 작은 그늘 가리진 않았나 싶다" - '선배 시인' 중에서
그는 시골 "진흙 논 댕기면서 모를 심던 엄니 아부지"의 "무릎 관절통"을 느낀다. 그 통증은 "몸에 비해 비어진 뼛속"에서 나오고, "날씨예보 가늠"하는 "아리고 쓰린" 고통이다. "매듭매듭 속빈 대나무 속울음 서글픈" 고통이다. 시인은 그 '관절통'을 이렇게 노래한다.
"다리 끌고 밭에서 논에서 무너진 집 살림 / 세우려고 얼마나 많이 달아졌으면 / 삐그덕 삐그덕 녹슬어 맷돌같이 / 윗짝 아래짝 덜컹 소리만 난다 / 물렁뼈 속 인대 끊겨 덜컹 물컹거린다 / 물컹한 흙덩이 돌리는 기름칠도 다 됐다" - '관절통' 중에서
시인이 시골살이의 설움과 고통을 신파처럼 늘어놓는다고 섣불리 단정하지 말기 바란다. 그는 "밤낮 먹거리 입거리 밥그릇까지 / 다 훔쳐가고 영혼까지 도굴해" 가는 탐욕의 시대를 목도하며, 이제는 "하늘의 상상력"을 지닌 시인이 "상상으로 다시 되찾아오겠다"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우리네 신화, 민담, 판소리, 민요와 서민들 풍습, 놀이판 / 신명나고 멋들어진 우리네 살림과 음식들"을 시어로 버무려 한 상 푸짐하게 차려, 온 세상 배부르게 만들 '밥상'을 준비한다. 그의 시 쓰기는 강탈당한 복락원의 잔치 마당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다.
그는 또한 "빨간 씨앗들, 마귀 새끼들"로 내몰려 생매장당한 "죽지 못한 산 유령들"을 주목한다. 그들은 "사람도 짐승도 아닌 중간 동물 / 천하도 천상도 오갈 수 없는 / 숲도 아니고 산도 아닌 그저 유령일 뿐"('고시래' 중에서)이다.
1948년 10월, 그 수많은 유령을 만든 자들이 2024년 "계엄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 "헛된 쿠데타 / 허수아비 춤"을 춘다. 하지만 시인은 외친다.
"허수아비 춤에 새들 속은 적 없다."
참새를 쫓는 허수아비의 헛춤에도 끄떡없는 새떼들처럼, 시인은 '계엄령 놀음'에 맞서 촛불 들고 저항한 시민들의 힘과 지혜, 그리고 깨어 있는 반란의 정신을 노래한다.
김종옥 시인의 새 시집 <꽃밥>은 고통 속에서도 피어난 삶의 향기, 슬픔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민초들의 숨결을 판소리의 가락처럼 진하게 풀어낸다. 한 끼 밥처럼 따뜻한 그의 시어는, 읽는 이의 가슴속에서도 '꽃밥'처럼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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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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