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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시전형 불합격한 고3 딸이 울며 찾은 것

'괜찮아'라는 말도 아끼며 김치찌개 계속 끓인 일주일... 지금 바라는 건 단 하나

등록 2025.11.07 18:00수정 2025.11.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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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안 일어나면 어떡해? 학교 안 가?!"

오전 7시엔 나긋한 모닝콜, 7시 30분엔 중저음 그리고 7시 40분이 되면 결국 고음이 터진다. 눈이 관자놀이까지 치솟은 딸은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남기며 욕실로 들어간다. 10분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다. 참다못해 이 구역의 금기를 깨며 욕실 문을 향해 2단 고음을 발사한다.


"빨리 씻어! 이러다 지각하겠어!"
"내가 알아서 갈게! 그만 좀 해!!"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해도 모자를 판에 늦잠으로 지각을 하게 생겼다. 속이 타다 못해 누룽지가 되어 바닥에 달라붙는 심정이다. 잠시 후, 딸은 퉁퉁 부은 얼굴로 욕실에서 나온다.

곧 이어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젖은 머리, 대충 걸친 교복 차림. 자동차 키를 든 나를 향해 "혼자 갈게!"를 외치며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간다. 지금이라도 따라 나갈까. 머릿속에서 시소가 오르내리지만 멈추기로 한다. 아무리 최고 높은 벼슬인 '고3'이지만, 나도 자존심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몰랐다, 합격 발표일이라는 걸

물 한 컵을 시원하게 원샷하는데 뭔가 스쳐간다. 다이어리를 본다. 10월 30일이다. 예고를 다니고 있는 딸은 지난 9월, 6개 대학 수시전형에 원서를 넣었고, 9월 27일 첫 시험을 시작으로 수능 전까지 예정된 5개 시험을 모두 치렀다. 그날은 그 중 한 대학의 합격 발표날이었다. 아무리 발표 시간이 미정이었다 해도, 아무리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수험생 부모라지만 이걸 놓치다니.


창피함과 죄책감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휴대폰을 연다. 두근두근. 심장이 가슴을 두드린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아이 이름, 수험번호, 주민번호를 입력한다.

'OOO 학생은 불합격입니다.'


그냥 검은색으로 써도 될 텐데 빨간색으로 진하게 강조된 '불합격'이 쿵-하고 가슴에 박힌다. 9월부터 주말마다 동서남북을 달려 시험 본 다섯 개 대학 중 네 번째 불합격이다. 올해는 '황금돼지해' 2007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수능을 보는지라 경쟁률은 '역대급'이었다. 아이가 넣은 학교마다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이 걸려 있었고, 원서비로만 70만 원이 들었다.

그래서였구나. 이날 아침 아이가 유난히 무기력했던 이유가. 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불합격 소식을. 침대 위에서 미적거리던 모습, 호빵처럼 부풀었던 입술, 퉁퉁 부은 얼굴. 그 모든 장면이 나의 고음에 묻혀 지나갔다. 속도 모르고 소리를 질러댄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지금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미안하다고 빌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아이 방을 청소기로 밀고 닦았다. 휴대폰에 '우리 딸' 이름이 뜬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학교에 있을 때는 절대 전화하지 않는 아이였다.

"엄마...김치찌개 있어?"

맥락 없는 질문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미 아이의 목소리 속엔 눈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김치찌개, 당연히 있지."
"엄마... 나 너무 힘들어...급식도 못 먹겠어. 엄마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아이는 정규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온다고 했다.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가서 특강 수업을 들어야 한단다. 사실 김치찌개는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김치통을 꺼낸다. 딸은 참치도, 햄도 아닌 두부만 넣고 끓이는 깔끔한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두부를 푸짐하게 얹는다.

김이 피어오르는 냄비를 보다, 문득 나의 고3 시절이 떠오른다. 가스레인지 불을 줄이며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짧은 안부에 이어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는 나 고3 때 잔소리를 안 했던 것 같아. 그냥 밥만 해줬던 기억만 나. 엄마는 속 타지 않았어?"
"왜 안 탔겠니. 이건 비밀인데, 너 고3 때 나 엄청 점 보러 다녔어. 용하다는 곳마다 찾아다니면서 좋은 대학 갈 수 있냐고 물었지. 마음에 안 드는 말 들으면 또 다른 데 가고. 그러다 절에 가서 기도를 했지."

"난... 전혀 몰랐어."
"그게 엄마 역할이지. 내 불안을 너한테까지 보일 필요 없잖아. 누가 뭐래도 제일 힘든 건 우리 딸인데.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은 우리 손녀야."

김치찌개로 한 '조용한 응원'

삐삐삐삐--- 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 아이를 꼬옥 안는다. 아이의 떨림이 내 품으로 번진다. 얼마나 울었는지 백만 불짜리 쌍꺼풀을 무쌍으로 만들었다. 갓 지은 밥과 김치찌개, 달걀찜을 차리고, 숟가락을 아이 손에 쥐어준다. 호로록 김치찌개 국물을 들이키는 아이를 바라본다.

딸의 최애음식 '두부김치찌개' 불합격 통보를 받은 딸이 찾은 엄마표 김치찌개. 너에게 위로가 된다면 365일 삼시세끼 김치찌개를 끓여줄 것이다.
▲딸의 최애음식 '두부김치찌개' 불합격 통보를 받은 딸이 찾은 엄마표 김치찌개. 너에게 위로가 된다면 365일 삼시세끼 김치찌개를 끓여줄 것이다. 정현주

"엄마 김치찌개 먹으니 이제 살 것 같아."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이 아이일 것이다. 내 속이 타들어 간다면, 이 아이 속은 이미 재가 되어 흩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함께 가는 길이라 믿었지만, 어쩌면 내 욕심이 연료처럼 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믿어주기보다, 내 안의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한 건 아니었는지. 나는 채워주며, 생색 내며, 합격이라는 보상을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그날로부터 일주일 동안 나는 김치찌개만 끓였다. "힘들지?", "괜찮아", "파이팅" 이런 말조차 아끼며, 아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로 '조용한 응원'을 했다.

D-300, 100, 50이던 수능 일은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 나의 목표는 단 하나, 아이 컨디션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 감기에 걸리지 않고 좋은 컨디션으로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무리없이 꺼낼 수 있도록.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기'로 하니 마음이 잔잔해진다. 어떤 결과든, 어떤 길이든, 잘해낼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거겠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수능 #입시 #불합격 #김치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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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공중파 방송작가, 카피라이터, 광고홍보 프로덕션 운영. (현)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 2025 국민이 함께하는 저작권 글 공모전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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