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손님 된듯 걷는 길, 시름이 절로 사라지네요

대봉대부터 광풍각까지, 담양 소쇄원 여행

등록 2025.11.07 11:08수정 2025.11.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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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광주에서 11월 첫날, 1박을 하고 담양 소쇄원으로 향했다. 40분 정도 달리자 다소 이른 시각에 소쇄원 도착이다. 소쇄원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과일을 파는 노파가 먼저 반긴다. 소쇄원 입구가 정겹다. 대나무 숲길이 감나무에 매달린 감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일행 중 한 분이 자칭 해설사 역할을 한다. 초가지붕으로 된 팔각정이 눈에 띈다. 대봉대(待鳳臺)이다. 소쇄원 주인 양산보(1503-1557)가 손님을 맞이할 때, 손님을 봉황처럼 모시는 장소라고 한다. 대봉대 바로 앞에 벽오동나무가 있다. 봉황은 벽오동나무에만 앉아 쉬어간다고 한다. 소쇄원은 나무 하나를 심어도 인문학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일행은 대봉대를 뒤로 하고, 마치 양산보의 귀한 손님이나 된 듯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가로지르는 통나무 다리 건너편, 계곡 중간에 돌을 쌓아 담장을 두르고 담장에 5곡문(5曲門)을 새겨 놓았다. 휑한 공간이 과하지 않은 담장을 둘러 포근하다. 담장 밑으로 흐르는 물을 보고 있노라니, 시름과 걱정이 절로 사라진다. 차경(借景) 문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소쇄원 5곡문
소쇄원 5곡문 김병모

일행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돌담과 어우러진 풍경에 젖어 떠날 줄 모른다. 오죽하면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소쇄원의 5곡문 주변을 가장 아름다운 정경 중 하나라고 했겠는가.

선비처럼 광풍각 마루에 걸터 앉아 맛보는 차경 문화

필자는 발길을 돌려 제월당(霽月堂)으로 향한다. 제월당은 비 갠 후 상쾌한 달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양산보는 제월당에 거주하면서 손님을 맞고 학문을 정진한다. 제월당 뒤편에 청렴을 상징한 수백 년 묵은 배롱나무가 세월을 가르고 있다. 배롱나무는 소쇄원 주인 양산보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련만, 먼 산만 바라볼 뿐 말이 없다.

일행이 제월당을 뒤로하고, 손님이 묵었다는 광풍각(光風閣)으로 향했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나가는 문이 유난히 작아 보인다. 고개를 한없이 숙여야 한다. 양산보가 광풍각에 묵고 있는 손님 대하는 자세가 엿보인다. 그야말로 여광풍제월(如光風霽月)이다. 비가 갠 후 청아한 바람(광풍각)과 달빛을 기다린 마음(제월당)은 같다는 의미이다. 양산보가 손님 대하는 품격을 보는 듯하다.


소쇄원(국가 명승 40호)은 전남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에 있다. 조선 중종 때 양산보는 스승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년) 시 화순 능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자, 17세의 어린 나이에 과거급제한 양산보는 고향 담양으로 돌아와 세상과 등지고 살아간다. 양산보는 40대 중반에 벼슬길에 천거를 받지만, 출사하지 않고 부친에 대한 효를 다하였다고 한다.

소쇄원은 대학자 양산보가 평생 처사로 살면서 조성한 원림이다. 원림이란 자연 그대로의 자리에 누각을 짓는 차경의 문화의 형태이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일본의 정원과 사뭇 다른 경치이다. 소쇄원이 지어진 연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면앙정 송순의 "종제양언진소쇄정(從弟梁彦鎭瀟灑亭, 1534년)"을 보더라도 1530년대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쉽게도, 정유재란 때 왜적들의 침략으로 소쇄원이 소실되자 다시 복원된 것으로 알려진다.


소쇄원은 선비의 교류와 만남의 장으로도 유명하다. 양산보는 면앙정 송순(1493~1583), 하서 김인후(1510~1560), 석천 임억령(1496~1560) 등과 학문적 교류를 한다. 그들은 걸쭉한 문인이자 정치가 송강 정철(1536~1593)을 배출해 내기도 한다.

일행은 광풍각 마루에 걸터앉아 선비들이 느꼈던 차경 문화를 느끼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필자가 광풍각 편액을 다시 봐도 힘이 넘치고 우렁차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소쇄원을 다녀가면서 우정을 담아 광풍각 편액을 쓴 것으로 알려진다.

소쇄원을 나오는 길목에는 아직도 좌판을 깔아놓고 가을 먹거리를 팔고 있다. 지나치기 아쉬워 일행은 담양 특산물로 유명한 말린 대나무 죽순과 대봉감을 사 들고 소쇄원에서 내려오는데, 대형 버스들이 들이닥친다.
#담양소쇄원 #제월당 #광풍각 #오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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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오마이뉴스, 대전일보 등 언론사나 계간 문학지에 여론 광장, 특별 기고, 기고로 교육과 역사 문화, 여행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따뜻한 시선과 심오한 사고와 과감한 실천이 저의 사회생활 신조입니다. 더불어 전환의 시대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즐기면서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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