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이 집단 사교육이 된 이유 ? 생기부 경쟁의 모순

[주장] 생기부, 경쟁의 언어를 벗고 성장과 생활의 언어로 돌아가야 한다

등록 2025.11.07 14:55수정 2025.11.07 14:55
0
원고료로 응원
고교학점제의 무리한 도입에 따른 부작용이 이어지면서,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 개편 논의 역시 나름대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마도 교육부는 기록 항목을 줄이거나 교사 간 기록의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표준화 방향을 검토 중이지만, 그 이전에 먼저 짚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생기부는 왜 교육의 기록이 아니라, 입시용 경쟁 문서로 기능하고 있는 것인지 물을 필요가 있다. 답은 분명하다. 생기부 바탕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공교육 안에서 벌어지는 학교 단위의 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종은 표면적으로는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과정을 본다고 하지만, 실제 작동 방식은 다르다.

각 학교가 정성껏 꾸민 생기부를 제출하며 대학을 향해 말하는 메시지를 거칠게 요약하면, "우리 학교 학생이 더 뛰어나니, 다른 학교 학생보다 우리 학생을 뽑아달라"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공교육의 집단 사교육화다.

학교는 다른 학교 학생을 떨어뜨리고 '우리 학교 학생을 합격시키기 위한 입시용 실적자료를 생산하고, 교사는 교육의 동반자가 아니라 문장 기술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학생의 활동은 성장의 기록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적 뛰어남을 증명하기 위한 포트폴리오가 될 뿐이다, 수행평가는 기록을 위한 쇼케이스로 변한다. 이 체제에서 과잉기록과 과대포장은 구조적인 필연이다.

제자를 '명문대'로 보내면 자랑스럽다는 착각

이 모순을 깨닫지 못한 일부 교사들은 오히려 생기부 기록 항목을 더 세밀히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제자가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면 그것을 교사로서의 성취로 여기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사교육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내 제자를 더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는 순간, 공교육은 이미 사교육화된 것이다.

사립고의 경우 이런 논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입시 실적을 통해 지원율을 높이고, 이를 학교 홍보와 수익으로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립학교 교사들까지도 이런 구조에 무의식적으로 순응한다는 점이다. 공무원으로서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경쟁을 통해 대학에 진학했던 경험을 근거로 경쟁은 당연한 것이라 정당화한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시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채, 공교육의 이름으로 학생들을 소진시키는 무자비한 경쟁체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교육청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교육행정의 성과 지표가 여전히 '인서울 진학률'과 '입시 실적'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각 지역이 서로 대학 진학 실적과 수능 등급 통계로 경쟁하는 풍경은 공교육이 얼마나 입시 경쟁의 프레임에 깊이 묶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변별의 전제를 깨지 않으면 왜곡은 반복된다


생기부 개편 논의는 대부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집중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록의 목적이다. 대학의 학생에 대한 세밀한 변별 요구 충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제를 깨지 않는 한, 생기부는 계속 왜곡된 입시 도구로 남을 것이다.

대학의 역할은 이미 완성된 인재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기초 소양을 갖춘 학생을 받아들여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 역할을 포기하고 변별을 고집하면 고등학교는 대학의 하청기관에서 벗어날 수 없고, 교사는 교육자가 아니라 입시 산업의 말단 노동자가 된다.

공교육의 존립 근거를 되찾아야

결국 생기부 문제는 기록의 형식이 아니라 공교육의 철학 문제다. 공교육은 누가 더 뛰어난지를 가리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생기부는 경쟁의 언어를 벗고, 성장과 생활의 언어로 돌아가야 한다. 성적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들춰보며 즐겁게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사진첩이 되어야 한다. 학교, 교실, 수업이 학생의 삶과 성장을 진실하게 담아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대학은 '세밀한 변별'이라는 미련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변별은 공정함의 상징이 아니라 불평등의 재생산 장치가 되어 있다. 그 기능을 일부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제도개편도 왜곡을 멈출 수 없다. 대학이 변별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고등학교는 교육을 되찾을 수 있다. 교육이 다시 경쟁의 무대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공간으로 돌아올 때, 생기부는 비로소 기록이 아니라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 #생기부 #입시 #변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배제와 혐오의 논리를 넘어서 개인의 입장이 모두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현직교사로서 교사노조연맹, 부산교사노조, 중등교사노조의 일원으로서 공교육정상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박근혜 팔아 돈 벌더니 집 가압류?"... 가세연의 '비정한 애국' "박근혜 팔아 돈 벌더니 집 가압류?"... 가세연의 '비정한 애국'
  2. 2 검찰, '이 대통령 겨냥' 위례 사건 항소 포기...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이유 검찰, '이 대통령 겨냥' 위례 사건 항소 포기...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이유
  3. 3 이 대통령 "나를 엮어보겠다고 녹취록 변조까지 하더니" 이 대통령 "나를 엮어보겠다고 녹취록 변조까지 하더니"
  4. 4 "수험생이면 다야?" 예비 고3 딸과의 파국 막은 전화 한 통 "수험생이면 다야?" 예비 고3 딸과의 파국 막은 전화 한 통
  5. 5 [단독] 한강버스 '결빙 안전관리계획 문서', 한강 결빙 이후 8일 지나 만들었다 [단독] 한강버스 '결빙 안전관리계획 문서', 한강 결빙 이후 8일 지나 만들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