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4월 양주의 동물구조협회에서 만난 토리.
나혜영
갑자기 피똥을 싸서 응급실에 가기도 했고, 살인진드기 때문에 바베시아에 걸려서 무지개다리 초입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산책하다 동네 백구에 물려 온 힘을 다 해 혼비백산 도망치는 바람에 줄을 놓쳐 토리를 영영 잃어버려 패닉에 빠진 적도 있다. 토리 이름을 외치며 돌아다니다가 절망감을 안고 집에 와 보니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구석에서 등에 피를 흘리며 앉아 있었다. 마치 '죽어도 집에 가서 죽을 거야.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10층에서 안 서서 계속 여기 있었어'라고 말하듯.
봄이면 함께 벚꽃길을 걸었고, 여름이면 함께 바다 수영을 했고, 가을이면 단풍길을 걸었고, 겨울이면 눈밭을 뛰어 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15년의 계절을 함께 하며 같이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자며 그렇게 함께 살았다. 그리고 같이 늙어갔다. 아니 토리는 우리보다 빨리 늙어버렸다.
어느 새 토리의 털은 점점 바래서 진한 갈색 사이 사이 베이지색 털이 자라더니 나중에는 원래 베이지색이었나 싶을 만큼 털 색깔이 옅어지고 성겼다. 그리고 털 아래 피부에는 검버섯이 참 많이도 생겼다. 걸음이 느려졌으며, 산책이 조금이라도 길었다 싶은 날은 여지없이 오른쪽 앞다리를 절룩였으며, 기침을 자주 했다.
더 이상 장난감을 찾지 않았고, 더 이상 뛰지 않았으며, 잠 자는 시간은 점점 늘었다. 귀도 어두워졌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소리에 대한 반응이 약해졌고, 눈에도 염증이 자주 생겼다. 다리의 근육도 다 빠져 버렸고, 허리가 휘어서 등이 구부정해졌다.
"이렇게 튼튼한 근육질 푸들은 처음 봐요." 불과 7년 전에 수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 말은 정말 그랬던 적이 있었을까 싶게 토리의 노화 속도는 우리가 예상하기 힘들 만큼 빨랐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냥 귀엽고 조금 얌전해진 토리였다.
지난 추석 연휴 초만 해도 송편을 내 놓으라고 왼쪽 앞발로(우리 토리는 왼발잡이다) 나를 톡톡 치던 아이가 연휴 끝날 쯤에 갑자기 식음을 전폐했다. 소화 불량인가 싶어 병원에 갔더니 간에 암으로 의심되는 매우 큰 종양이 있고, 다른 장기에도 종양들이 퍼져 있으며, 신부전이 심하다고 한다. 노견인데다 신부전도 심해서 수술이나 항암도 무의미하고,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마지막을 준비하란다. 어떻게 이렇게 마지막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지?
토리는 2025년 10월 말 결국 16살의 나이로 강아지별로 떠났다. 강아지 때부터 노견이 될 때까지 토리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이렇게 극적이고 슬프게 다가올 수 있을까? 누군가 성장하고 늙어서 죽는 과정까지 생생하게 옆에서 본 적은 처음이다. 그래서일까, 그 슬픔이 참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힘들다.
문득 우리가 우리의 부모님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다행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온전히 목격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애착을 더 크게 만들어 이별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식구들을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며 따랐던 토리는 그렇게 늙고 병들어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 식구들이 세상 여행 끝나고 다시 어디론가 돌아갈 때, 토리가 마중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늘 현관에서 꼬리를 흔들며 온몸으로 반갑게 맞아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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