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에서 생리양이 많아 곤란했다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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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힘듦과 슬픔에 잠겨 서로를 보지 못했던 우리 가족. 엄마는 일을 하느라 우리와 소통하지 못했던 걸 후회하고 있었다. 오빠랑 나 때문에 아플 수 없었고 우리 때문에 일을 했고 또 우리 때문에 후회하는 엄마...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 시기에도, 나만 바라보며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따로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몰라준 게 서운하지 않았어?"
"너희가 어렸을 때니까. 너희한텐 별로 바라지 않았어. 근데 보일러 안 틀어주고 그런 건 그렇게 서러웠어."
갱년기 엄마가 가장 서러웠던 건
기억을 떠올려보면 엄마는 자주 추워했다. 추우면 몸이 더 아파서 오빠와 나에게 보일러 틀어 놓으라고 종종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도 깜빡 잊고 틀어 놓지 않으니, 엄마는 집에 들어오는 순간 화부터 냈다. 온화한 성격이었던 엄마가 변했다고 느꼈던 때도 이때쯤부터였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했다.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보일러를 틀어주지 않아서'와 같이 조금만 더 신경 써주었다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것들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대화했더라면,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12년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그때의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었다. 나의 무심이, 무지가 뼈저리게 아파왔다. 사라지지 못한 채 남아있던 묵은 감정들이 이제야 서로를 비추게 했다.
엄마의 갱년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tvN '어쩌다 어른' 10주년 특집에 나온 산부인과 전문의 김지연 원장은 "갱년기는 끝이 있는 게 아니라, 완경을 기점으로 여생 동안 계속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것"(2025년 8월 12일에 방영)이라 말했다.
12년간 엄마 혼자서 외로이 감내했을 고통, 남은 갱년기는 이제 같이 이겨내려 한다. 가족이란, 그렇게 함께 나누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서로를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 그 아픈 마음을 이제는 함께 치유해 나가려 한다. 그 시작이 질문이었다.
새로운 시작, '나'를 위해서
처음 기사를 시작하게 했던 궁금증, '엄마는 왜 갱년기를 비밀로 했을까?'에 대한 답은 '비밀이 아니었다'였다. 6년 전 쯤, 지나가듯 얘기를 하셨었다고 했다. 언제인지 엄마도 기억을 못하고, 들은 나 역시 기억하지 못한 채 흘러가버린 대화였다.
이제야 제대로 물었다. 지난 5일, 완경 이후 변화를 물어봤다. 엄마는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누군가의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왔기에 항상 자신은 보지 못했던 우리 엄마.
어쩌면 갱년기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변화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아플 수 없어 자신을 돌보지 못해 멍든 몸을, 이제야 토해내듯 아파하고 자각하게 되는 시기. 가족의 관계에서 모든 의무와 채무를 지고 살아왔음에도 항상 을이기를 자처했던 엄마가 이제야 자신을 보게 되었다는 말에, 나는 차마 답장을 할 수 없었다.

▲ 엄마와의 카톡 대화 내용
안성연
갱년기. 한자어를 찾아봤다. 更 고칠 경(다시 갱)에 年 해 년, 期 기약할 기. 고칠 경에는 바뀌다, 새롭다의 의미도 있다. 이제야 자신을 바꾸는, 새로운 자신을 기약하는 경년을 맞이한 엄마. 엄마의 새로워질 해들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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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안 틀었다고 무섭게 화낸 엄마, 왜 그런가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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