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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없었던 심폐소생술, 올해 마지막이길 바랐건만

연이틀 마주한 삶의 끝... 일상과 죽음이 공존하는 일터에서 마주하는 것

등록 2025.11.11 15:45수정 2025.11.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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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캐나다 온타리오 주 시골마을에서 파라메딕(응급구조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911 현장에서 만나고 겪는 이 곳의 삶,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기자말]
11월 초, 쌀쌀한 날씨가 계속 이어진 덕분에 일주일 넘도록 방치된 시신은 그렇게 많이 부패하지는 않았다. 마룻바닥에 맞닿은 부분은 액체처럼 변해 나뭇결 위로 축 퍼지긴 했지만 저 정도면 검시관이 와서 수습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다만 시신을 파 먹고 살이 잔뜩 오른 파리들이 창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었다.

연달아 목격한 죽음 앞에서

시신이 부패하면서 나는 냄새가 몸에 한번 배면 탈취제를 아무리 뿌려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 환자가 살아있을 때 얼마나 깔끔한 성격이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안팎으로 관리가 매우 잘 된 집이었는데, 자신이 썩으며 나는 냄새가 온갖 집기며 가재 도구에 밴 것을 알면 고인은 얼마나 속이 상할까 싶었다. 그 와중에 내 파트너는 계속 시신 옆에 머물러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기에 빨리 나오라고 재촉해서 얼른 데리고 나왔다. 우리가 현장에 머문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았지만 돌아오는 내내 앰뷸런스의 창문을 열고 달려야 했다.

헛된 기대인 줄은 알았지만 저 시신이 올해 보는 마지막 시신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젊은 여성이 심정지로 발견되는 바람에 그 기대가 깨지고 말았다. 아이가 네 명이나 있는 집이었다.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아이 넷 모두 엄마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울고 있었다.

나와 파트너는 심폐소생술을 하고 제세동기와 이것저것 연결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급한 대로 아무 방이나 골라 아이들에게 들어가 있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놀라고 겁을 먹은 탓인지 내 말은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어르고 달래며 두세번 더 말한 끝에 아이들을 겨우 한 방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으나 여전히 한 아이가 계속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아직 걷지 못하는, 아직 너무나 어린 아이였다.

생명이 위독한 모든 환자들이 그렇지만, 아이가 있는 엄마가 심정지로 발견된 경우에는, 그리고 그 모습을 아이들이 직접 목격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 보는 앞에서 이 환자를 꼭 살려내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약물을 다 썼다. 할 수 있는 것도 다 했다. 하지만 아이 엄마의 심장은 끝내 다시 뛰지 않았다.


 삶에서 바라보는 죽음.
삶에서 바라보는 죽음. eugenechystiakov on Unsplash

평범한 일상과 죽음이 공존하는 삶

아마 평소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사망을 선고하고 경찰에게 시신을 인도한 뒤 돌아섰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고 듣는 자리에서 사망 선고를 할 수도, 아이들이 머무는 집에 제 엄마의 시신을 둘 수도 없어서 일단 계속 심폐소생술을 이어가며 아이 엄마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아이들 넷 키우는 집이 깨끗하고 깔끔하게 유지될 수는 없다. 바비 인형의 머리가 레고 바퀴와 함께 뒹구는 게 평범하고, 이 물건이 왜 여기 있지 싶은 혼란 상태가 24시간 이어지는 게 일상이다. 그 평범과 일상으로 되돌려 놓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내 직업의 일상이니 이 젊은 아이 엄마의 죽음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겠지.

연이틀 극단의 환경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견된 두 시신을 떠올려본다. 매일 지겹도록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과 일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자꾸 접하다 보면 양 끝에서 바라보는 서로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삶에서 바라보는 죽음은 내가 아무리 성공 혹은 실패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결국 언젠가는 저렇게 죽을 것임을 일깨워주고, 죽음에서 삶을 바라보면 현재 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일깨워준다. 간단한 듯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간단한 것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무시하며 매일매일을 산다. 마치 절대 아프지도, 늙지도, 그리고 죽지도 않을 것처럼.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그리고 하기 싫은 것의 우선순위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그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느라 노심초사하며 사는 게 우리 삶이다. 하지만 가끔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나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의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을 때는 지금 내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떠올려 보았으면 한다. 아마도 그 고민의 과정에서 내 삶의 가치도 스스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이라기 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알려주고 싶은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캐나다 #캐나다구급대원 #응급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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